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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95호 물결 16화

[오아시스] 언제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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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경논총

언젠가부터,

혼자 있을 때면 미래가 부쩍 두려워졌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기에 날 때부터 마치 나를 위해 재단된 듯이 기만하는, 언제 논의되고 정당화되었는지도 알기 힘든 사회의 일원론적인 지향점을 충실히 반영했을 원망스런 곧은 트랙을 달릴 필요가 없다는 점과 그 누구도 내 삶의 방향을 논할 자격을 세계로부터 부여받지 못하여 그러한 나를 향할, 그러나 나를 모르는, 쇄도하는 소리의 파편들이 해석이 무의미한 잡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주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놓인 불확실성과 작지만 때로는 전부로 치부되는 자의적인 세계의 기대를 거스를 수 없어서 누군지도 모를, 궁금하지도 않은, 실재를 확신하지도 못하는 표준적 경쟁자를 제치고 보편적으로 승자라고 여길 수 있는 고차원의 세계에 당당하게 합류하는 개선식을 이전 세계의 시민들에게 보여주겠다는 허구적 목표를 상정하고 달릴 수 밖에 없으리라는 미래가 나의 조용한 방황 속에서 윤곽을 보이게 되었다는 점이 슬프게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분명 기원은 앞으로 지나갈 시간의 흐름에 불을 지르겠다는 광대한 꿈이었으나 달력 속 타오르는, 현재를 태워버리고 말 불꽃들을 소화하며 미래를 수성하다 보면 그 불꽃들은 도대체 언제 나의 꿈으로 연소했는지, 비현실적 세계로 물체를 이끌 열기구의 풍선은 내면을 빼앗겨 바람 빠지고 쪼그라들고 말아 가슴 한 켠에 묻었다가도, 가끔씩 생각에 빠지는 날이면 바람을 다시 부풀리는, 잠시 잃어버린 이상을 갈고리로 끌어오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자니 정말 바람을 채워넣고 비우는 것인지, 사실은 풍선의 안팎이 반대라서 채워넣는 것이 비우는 것인지를 고민하는 근원적 망상들도 함께하는 고차원의 공간이 되어 더 높은 수준의 공간 지각을 필요로 하는 탓에 탈력을 느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다. 다만, 그저 기억 속에만 잠시나마 남아있을 뿐이지 되돌아간 원점은 원래의 진정한 기원이 아닐 것이다.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를 뿐일 것임을 알기에, 한 켠에 묻어두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기호를 새기고 나면 돌아갈 수는 없음을 아쉬워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방해하는 고민과 생각들의 물결을 대신 원망하게 되었다. 몇 갈래의 길이 있는지, 그 길들은 어디로 이어져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비가역적 선택을 465m/s로 강요하는 지구의 일방향 회전을 원망하게 되었다. 세상 사람 전체를 태우고 수많은 사공에 휩쓸리며 눈 감고 배를 산으로 몰고가는 선장이 자신이 조타하는 배가 뗏목인지, 전함인지도 모르고 거스르는 물결을 헤칠 힘이 있는 배인지도 모른다면 어떻게 그 배가 바로 갈 수 있을까. 다만 함께 항해한다고 생각했던 승객들의 실체는 21세기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한 책임 없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진실의 가능성을 목도하여도 선장이 주저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타인의 시선이 파도가 되고 스스로의 항로를 잃은 배는 그 원래의 목적을, 존재의 의무를 달성할 수 있을리 없잖은가.


언젠가부터,

이유를 잊었다.


언제인가,

삶에 물음표가 사라진 순간은. 목적을 잃은 시점은.

Es gibt keine Pflichten des Lebens

삶에는 의무가 없다

es gibt nur eine Pflicht des Glücklichseins

오직 행복해질 의무만 있을 뿐이다

Dazu alleine sind wir auf der Welt

우리는 오직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우리의 의무라는 헤르만헤세는, 누군가는 선과 사랑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음을 가정해봤을까? 가만히 있으면 뒤로 밀려나는 트레드밀 위의 세계에서 행복이나 고민하는 태도는 안일하고 나약하게 평가받진 않을까?


언젠가부터,

행복을 고민한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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