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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Oct 14. 2024

주문하지 않은 햄치즈 토스트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24

‘운이 좋은 날’이었다. 주문하지 않은 햄치즈 토스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곧 어학당 개강이라 카공하러 루이사에 왔다. 탁 트인 하늘과 작은 공원이 보이는 1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늘 경쟁이 치열해서 탐만 내던 자리였는데 웬일로 비어있다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서둘러 가방을 내려놓고 카운터에 주문하러 갔다. 지금 시각 11시 반.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기 위해 아침도 안 먹고 왔다. 배에서 천둥이 친다. 얼른 시키자.


먹고 싶었던 샌드위치

카운터 앞에 서서 무슨 샌드위치를 먹을까 고민하던 중에 까만 칠판에 적힌 샌드위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먹고 싶었던 신선한 야채가 들어간 샌드위치였는 데다 가격도 고작 50위안(한화 약 2,000원)이라니 오늘은 이거다.


그런데 앞에 적힌 ‘義式(이탈리아식)’는 읽을 줄 아는데 뒤에 있는 글자는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다. 파파고를 켜고 사진을 찍어 병음을 확인한 뒤 긴장되는 마음으로 카운터에 갔다.


“리치 홍차 한 잔이랑 이탈리@#$^$ 하나 주세요.”


손가락으로 카운터 뒤편의 까만 칠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나 못 알아들을까 봐.


"리치 홍차 한 잔, @@#$^#$^!#! 하나 맞아요?"


아? 못 알아들겠다. 어쩌지... 일단 맞다고 했다. 손으로 샌드위치 그림을 콕 찍어줬으니 맞겠지, 뭐.




그로부터 5분 뒤, 멘붕에 빠졌다. 시키지 않은 뭔가가 나왔다. 받아온 샌드위치 포장지에 적힌 이름이 ‘法式(프랑스식)’로 시작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샌드위치(三明治)가 아닌 ‘토스트(吐司)’였다. 아무래도 음식이 잘못 나온 것 같다. 가서 뭐라고 해야 되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말의 희망을 안고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겼다. 주문한 대로라면 신선한 야채가 들어있어야 했다. 그런데 내 '토스트'에는 달랑 햄과 치즈만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주문이 잘못 나온 것 같다.


내가 가리킨 건 왼쪽 칠판, 직원이 본 건 오른쪽 사진


아까 그 까만 칠판 있는 곳으로 다시 가봤다. 그제야 알았다. 원래 주문하려고 했던 샌드위치 그림 옆에 다른 그림이 있었다. 바로 내가 받은 햄과 치즈가 든 '프랑스식 토스트(法式 土司)'. 분명 손가락으로 왼쪽 칠판을 가리킨다고 가리켰는데 직원은 오른쪽 걸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직원이 주문 확인할 때 '火ㅇ'이라는 단어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火腿', '햄'이었구나.


난 왜 이렇게 쪼다 멍청이일까. 며칠 전에도 옌수지(鹽酥鷄, 닭튀김) 사러 갔다가 주문 잘못해서 버섯 튀김만 받아와 놓고선 또 이런다. 도대체 주문하는 게 뭐라고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걸까? 저번에 다른 카페에서 어떤 직원이 내 중국어 듣고 비웃었던 기억 때문에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못 알아들었으면 다시 물어보면 되는데 그것도 못하다니, 진짜 한심하다. 한국인이 중국어를 못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생각보다 맛있었던 '프랑스식 토스트'


보이지 않는 이불을 뻥뻥 걷어차며 자리로 돌아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맛있게 먹자 생각하며 포장지를 다시 펼쳤다. 이제 보니 빵도 일반 식빵이 아니라 프렌치 토스트다. 노르스름한 게 제법 맛있어 보였다. 고소한 계란 냄새가 풍기는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아, 맛있는데?'


따뜻하고 달콤했다. 계란물 머금은 촉촉하고 포근한 식빵을 먹으니 어릴 때 종종 프렌치 토스트를 만들어 줬던 엄마 생각이 났다. 특히 안에 들어있는 치즈가 킥이다. 한국에서 먹어본 치즈보다 더 달콤하고 감칠맛이 있었다. 그래, 야채 못 먹은 건 아쉽지만 이것도 맛있으니 됐다. 덕분에 굳이 사 먹지 않았을 메뉴를 먹어봤으니 오히려 좋다. 



2021년 8월 12일 오늘의 일기

"모든 걸 포기하고 마지막 기회로 온 건데 자꾸 혼자 겁먹고 소심해져서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주문도 똑바로 하고, 말 걸어보고 싶으면 말 걸어보고,
의기소침하게 혼자 있다가 돌아가면 안 되잖아?!
어차피 내가 중국어 잘 못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혼자 쫄아서 그럴까.
나중에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 진짜.

내일부턴 적극적으로 중국어 말하고 다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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