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끼미 Oct 21. 2024

마라 먹고 염라 앞에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26

2021년 8월의 어느 날, 어학당 개강을 기다리고 있던 나와 J는 저녁을 먹으러 공관역에 갔다. 저녁 메뉴는 마라 돼지갈비면. 매운맛이 그리운 대만살이 5개월 된 사람의 선택이었다.


"언니, 무슨 맛 먹을래요?"

"난 무조건 트어라(特辣, 제일 맵게)!"


마라 돼지갈비면의 매운맛은 5단계가 있었는데, 아주 약간 매움(微辣), 조금 매움(小辣), 중간 매움(中辣),  많이 매움(大辣), 아주 많이 매움(特辣) 이 다섯 가지 중에서 아주 많이 맵다는 '트어라(特辣)'를 골랐다. 나는야 청양고추 농사꾼의 딸이자 신전과 엽떡 모두 제일 매운맛으로 먹는, 불닭볶음면 정도는 맵지도 않은 사람이니까.


"트어라 진짜 매운데 괜찮겠어요?"


우리의 주문을 받은 직원 분이 걱정되는 눈길로 물어보셨다. 마음 약해지면 안돼! 대만 사람들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 우리나라의 신라면도 맵다고 귀여운 엄살을 부리는 이들에게 옴팡 속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괜찮아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속으로 '저 한국인이에요!'를 외치면서.


그로부터 15분 뒤... 나는 가게 앞 벤치에 앉아 염라대왕과 독대하고 있었다. 염라대왕이 내 명치를 꽉 움켜쥐고 물었다.


"트어라의 맛이 어떠냐?"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살려주세요...."


염라대왕을 만나게 해 준 '트어라(特辣)' 돼지갈비면


일회용 종이 그릇에 담겨 나온 나의 특별한 돼지갈비면은 조금 매움(小辣)을 선택한 J의 것과 국물 때깔부터 달랐다. 검붉은 핏빛의 국물은 공기 중으로 매운맛 입자를 미친 듯이 뿜어내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J도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그제야 약간의 두려움이 밀려들었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체면 구기게. 내 온몸에 쌓인 이 스트레스가 트어라를 이겨내 줄 거다.


호기롭게 국물부터 떴는데 금세 빨갛게 물드는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을 보니 겁이 났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한술 들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겁을 내려놓고 면을 건져먹고 갈비를 뜯어먹었다. 면발은 탱글 했으며 푹 삶긴 고기는 아주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그리고 내 위장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한 다섯 젓가락 먹었을 때였던 것 같다. 명치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하고 기도가 좁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맵긴 맵네'라고 생각하며 말없이 우육면을 먹었다. J가 진짜 괜찮냐고, 억지로 먹지 말라고 했지만 "국물만 안 마시면 괜찮아."라며 꾸역꾸역 먹었다. 한 입 먹고 한 입 숨쉬고를 반복하면서 힘겹게 도전을 이어나갔지만 결국 다 먹지 못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바깥공기를 쐬자마자 나도 모르게 앞으로 고꾸라졌다. 숨이 안 쉬어지고 심장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온몸의 세포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고통이었다. 벤치에 앉아 만취한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았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옆에서 J가 무슨 말을 하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내 귀에선 애국가마저 끝난 TV에서 나오던 삐- 하는 소리만 들렸다. 의학 드라마에서 들었던, 심장이 멈추면 으레 나오던 기계 소리 같기도 했다.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았는데.


여전히 고꾸라진 상태로 손으로 심장을 움켜쥐고 들숨과 날숨만 겨우 반복하고 있는데 뒤통수 위에서 중국어인지 외계어인지 웅얼웅얼하는 말이 들렸다. J가 뭐라 뭐라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눈앞에 분홍색 부직포 가방이 나타났다.


"언니, 이 분이 여기에 토하라고 줬어요."


J의 말에 아주 무거운 고개를 겨우 들어 올려다보니 포니테일을 한 어떤 여성분이 서 계셨다. 혼미한 정신 속에서 알아들은 건 "괜찮아요?"라는 한 마디뿐이었지만 그분의 눈빛에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대답 대신 꾸벅 인사를 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다시 우웩 하는 자세로 돌아왔다. 차라리 토하고 나면 괜찮을 것 같은데 토가 나오진 않았다. 하얀 글씨로 'POYA(우리나라의 올리브영 같은 대만의 드럭 스토어)'라고 적힌 분홍색 가방 위로 어떤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워홀 온 한 한국인, 어리석게 트어라(特辣)에 도전했다 사망해...>


그러고도 한참을 수그리고 있다가 J가 편의점에서 사다준 흰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니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던 위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속이 엄청 쓰리고 따가웠지만 그래도 숨을 쉴 수는 있었다. 택시 타고 집에 가라는 J의 걱정에 그 와중에 돈 생각하느라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흐릿한 뇌 안에서 쉐하 주소를 기억해 내어 우버 택시를 호출했다. 돈도 살아있어야 쓸 수 있다.


집까지 같이 가주겠다는 J가 고마웠지만 이미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보여줬다.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혼자 택시를 타고 쉐하로 돌아왔다. 택시에서 내려서 어떻게 4층까지 걸어 올라왔는지, 어떻게 방까지 걸어갔는지, 옷은 언제 갈아입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맵다 못해 뜨끈뜨끈해진 몸을 침대에 뉘이며 했던 다짐은 아직도 기억난다.


'멍청하게 맵부심 부리지 말자. 죽어도 한국 가서 죽자.'



이전 25화 반쪽짜리 대만 사람 되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