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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Dec 02. 2024

드디어 어학당 수업 시작, 그런데...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01

2021년 9월 2일. 드디어 그날이 왔다. 여름 내내 그토록 꿈꿨던 언어중심(語言中心, 외국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어학당) 수업이 시작되는 날. 


원어민인 대만인 선생님에게 중국어 잘한다고 칭찬받는 모습, 같은 반 친구들과 중국어로 조잘조잘 떠들고 웃는 모습, 지겨운 혼밥 대신 매일 친구들과 즐겁게 점심 먹는 모습. 그 설레는 상상은 나를 수업 시작 시간인 10시 20분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하는 성실한 학생으로 만들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언어중심 수업 첫 등굣길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듯 현실과 이상(理想)의 차이는 컸다. 첫 수업을 마친 내 머릿속에는 신남 대신 절망감으로 가득 찼다. 가장 큰 문제는 같은 반의 친구들 10명 중 나를 포함한 4명이 한국인이라는 것이었다. 아, 이곳은 강남 해커스인가요?


언어중심을 알아봤을 때 한국인 많은 곳은 피하라는 조언을 무수히 많이 봤었다. 수업은 중국어로 하겠지만 수업 외 시간에는 결국 언어가 잘 통하는 한국인들과 자주 만나게 되니 중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내가 선택한 대만 사범대 언어중심에 원래 한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코로나 시국이니 한국인이 몇 명이나 되겠어?'라고 생각했던 건 우리의 굳센 한국인을 얕잡아 본 실수였다. 


거기에다 수업도 생각보다 진도가 느리고 (주관적으로) 쉽게 느껴져서 ‘아,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혼자 빨리빨리 공부하는 게 익숙한 내게 중국어가 미숙한 다수의 외국인을 상대로 한, 아주 배려심 넘치는 수업은 ‘이래서 어느 세월에 중국어를 배워?’라는 조급함을 불러일으켰다. 두 달 반짜리 코스에 100만 원이나 넘는 등록금을 내돈내산했으니 얼른 뽕을 뽑아야 하는데 이렇게 느려서야 되겠냐 말이다.


물론 3년이 지난 지금 보기엔 그저 헛웃음만 나오는, 가당치도 않은 자만심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이왕 온 거 중국어라도 배워가야 부모님 앞에 면이 선다는 '도망자'로서의 강박이 심했고, ‘나는 왜 중국어를 잘 못 할까?’라고 생각하면서도 혼자서 이만큼이나 중국어를 익혔다는 우쭐대는 심보도 있었다. 어차피 죽을 생각하고 왔으면서 왜 그리도 중국어 공부에 목숨을 걸었었나 싶지만, 누구나 당장 눈앞의 상황만 볼 뿐이라는 진리는 홀로 타지에 온 이에겐 더 강하게 적용되는 법이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대학교처럼 언어중심도 수업 첫 주 안에 다른 반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두 번의 수업을 더 들은 후에 반을 바꾸기로 굳게 결심하고 다른 반에 청강을 하러 갔다. 며칠 만에 친해진 통쉐(同學, 같은 반 친구)들이 자기들 두고 어디 가냐고 붙잡는 목소리가 아른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반에 가서 수업을 들은 한 시간 뒤, 나는 다시 한번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원래의 반으로 돌아가자! 청강했던 수업의 내용 자체는 나의 중국어 수준(이라는 말 외에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과 맞았지만, 수업 분위기는 전~혀 맞지 않았다. 혼자 열심히 진도를 나가는 선생님과 가끔 던져지는 질문에도 대답 없는 통쉐들. 차분함을 넘어서 고요한 그 분위기는 한때 ‘말 많은 교사’였던 이에겐 견디기 어려웠다. 옮기기 전에 청강부터 해본 스스로가 기특하고 이런 기회를 준 사범대에 고마운 순간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원래 있던 반으로 달려갔다. 수업 듣는 내내 원래 반 통쉐들의 눈빛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겨우 두 번 본 사이지만 탈주하려는 나를 붙잡으려던 그 따뜻한 눈빛이. 난 정에 약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다. 그것도 MBTI가 F로 끝나는 극 감성주의 한국인. 


한 시간 반 만에 다시 돌아간 교실에는 나보다 더 정 많고 따뜻한, 이틀만에 가까워진 통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뜸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타난 나에게 통쉐들은 어디로 도망갔었냐고, 당장 짐 싸들고 돌아오라고 귀엽게 따졌다. 다른 반 수업이 어떤지 묻는 통쉐들에게 짧은 중국어로 할 수 있는, 하고 싶었던 말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다들 보고 싶었어(我很想你們)!”


대만 워홀 두 번째 시즌을 함께 할 나의 첫 통쉐들, 잘 부탁합니다!


원래의 반 교실에서 보이던 타이베이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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