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02
어느덧 3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대만에서의 어학당 수업. 뭘 배웠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먼 옛날의 일이 되었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 반 친구들인 통쉐(同學)들이 좀, 아니 상당히 귀여웠다는 사실.
같은 반에 나 말고도 한국인들이 많고 생각보다 진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반 변경을 위해 청강까지 했지만, 결국 원래 반 선생님과 통쉐들이 그리워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 생각해도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우리 반 수업은 늘, 언제나, 항상 웃음이 넘쳤다. 뻔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2시간이 정말 20분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것도 매 수업마다. 사실 몇 달 동안 하는 일 없이 놀기만 하던 백수가 주 5일 오전 10시 20분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심지어 저녁에 알바하고 집 가면 밤 10시였다), 통쉐들 볼 생각에 신나는 마음으로 정문을 통과했었다.
우리 반 통쉐들은 총 9명으로, 나 포함 한국인 3명과 미국인 1명, 터키인 2명, 콜롬비아인 1명, 일본인 1명, 스페인인 1명이 함께 했다. 국적만큼이나 연령대도 20대 초반부터 70대까지 다양했지만, 우리 반 통쉐들은 전부 다 귀염둥이들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다들 중국어 초보였는데, “음...” 하면서 서툰 중국어로 더듬더듬 말하는 것도 귀여웠지만 특히 선생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ㅇ_ㅇ?”하는 표정을 짓는 통쉐들은 정말이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도 피차일반이었지만 마치 엄마가 되어서 이제 막 말 배우는 아기를 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통쉐들 모두 귀여웠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최애(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귀요미’ 통쉐는 바로 미국인 할아버지였다. KFC 할아버지처럼 푸근한 인상의 미국인 할아버지 통쉐는 미국에서 대만 여자분과 결혼해서 지내다 대만으로 건너온 지 몇 년 되었다고 했는데, 그동안 아내분과 영어로만 대화하다가 얼마 전부터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미국에서 컴퓨터 회사를 다니다 정년퇴직했다던 이 미국인 할아버지 통쉐에게는 별명이 있었는데, 바로 ‘개미(螞蟻)’였다. 많고 많은 곤충들 중에서 하필 ‘개미’인 건, 바로 이 통쉐가 매일 아침마다 들고 온 홍차 때문이었다. 우리의 ‘개미’는 매일 아침 교실 앞 자판기에서 뽑았다는, 멸균우유 같은 팩에 든 달달한 홍차를 마셨는데,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대만인 선생님이 연속으로 3일째 홍차가 출석한 날에 ‘개미’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대만에서는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을 ‘개미’라고 부른다고 하면서.
그 얘기를 들은 이 할아버지 통쉐는 역시나 귀여운 중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개미입니다(我是螞蟻).”
호탕한 웃음과 함께 본인의 정체를 밝히던 ‘개미’ 통쉐의 미소는 30년 후에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개미 통쉐는 매일 아침 홍차와 더불어 다른 것도 같이 들고 왔는데, 바로 ‘수첩’이었다. 나와 함께 출석 1, 2등을 다투었던 개미 통쉐는 매일 정사각형의 작은 유선 수첩을 들고 다녔는데, 그 안에는 삐뚤삐뚤하지만 정성스럽게 쓴 중국어 단어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개미 통쉐는 시험날에만 벼락치기하던 나와는 달리 시험이 없어도 매일 본인의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눈으로 보고 입으로 따라 읽으며 다른 통쉐들이 오기 전의 그 자투리 시간에도 중국어 공부에 열심이었다.
본인은 자기가 '멍청해서(糊塗, 수업 때 배운 단어)' 자꾸 단어를 까먹는다며 단어장을 들고 다니는 게 쑥스러운 듯 말했지만. 그런 겸손함은 개미 통쉐를 더 빛나게 해 줄 뿐이었다. 개미 통쉐의 단어장을 볼 때마다 나는 ‘서른 살 넘어서 중국어를 배워봤자 얼마나 배울 수 있겠어’라고 스스로를 의심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이 늦은 시작을 애써 위로하는 말이 아님을, 우리의 다정하고 열정적인 개미 통쉐를 보며 깨달았다.
요즘도 공부를 하다 어리지 않은 나이를 탓하고 싶어질 때면 자연스럽게 개미 통쉐가 떠오른다. 지금도 대만에서 잘 지내고 계시겠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하고 싶다. 3년 전 그때, 짧은 중국어로 던진 나의 드립에 늘 호탕하게 웃어주어서 감사했다고, 덕분에 수업 듣는 게 즐거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