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03
다정하고 친절한 우리 반 통쉐들. 하지만 화기애애했던 수업 시간이 끝나면 다들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나야 혈혈단신으로 이곳에 왔지만, 다른 통쉐들은 함께 점심을 먹어야 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었고, 어떤 통쉐들은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늘 나만 덩그러니 남곤 했다.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몇 명의 통쉐들이랑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같이 밥을 많이 먹은 사람은 ‘샤치’라는 이름의 일본인 통쉐였다. 나보다 몇 살 언니였던 걸로 기억하는 샤치는 일본인 남편의 파견을 따라 대만에 왔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던 전형적인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를) 일본 사람의 이미지와 맞게 다정하면서도 의외로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샤치하고는 다른 통쉐들과 함께 그리고 단둘이서 몇 번 밥을 먹으며 제법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었다. 적지 않은 나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우리는 미래에 대한 걱정도 꺼내놓았었는데, 샤치는 남편을 따라온 이곳에서의 생활이 좋지만 남편의 회사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는 걱정, 지금은 일을 쉬고 있지만 본인도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얘기했었다. 비록 나는 남편은커녕 남자친구도 없지만, 여전히 전업주부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샤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삶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었다.
반면 내가 샤치에게 했던 말은 주로 불평불만에 가까웠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내 생각보다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우리 반 통쉐들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었는데(통쉐들이 인간적으로 좋은 것과는 별개로) 그 이야기를 샤치에게 “사실(其實)...”이라는 말로 털어놓았었다. 샤치는 나보다 중국어를 잘하는 편이었기에 나를 이해해 줄거라 생각했었다.
물론 샤치는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통쉐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던 게 분명하다. 나도 중국어가 서툴면서 거만하게 굴었을 뿐만 아니라 없는 사람에 대한 험담에 동의해 주기를 반 강요했던 건 명백한 잘못이었다. 그럼에도 샤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으니, 착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내 기억이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샤치에게 자주 했던 또 한 가지 말은 “부러워(很羡慕)”였다. 샤치도 대만에 친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남편의 회사 사람들을 초대해 저녁을 먹고 주말에 같이 놀러 가기도 한다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던 내게 샤치의 이야기는 그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큰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샤치랑 밥 먹을 때면 “부러워, 난 친구가 없는데”라는 말을 매번 했었던 듯하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동으로 그 말이 튀어나왔었다. 무척이나 진심이었기에.
착한 샤치는 내 투덜거림을 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외로워하는 나를 위해 적극적인 친절함과 다정함을 베풀어 주었다. 하루는 다른 통쉐와 함께 내가 알바하는 한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왔었는데, 그 사실만으로도 고마웠지만 더 감동적인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또우장(豆漿, 콩물)을 사 온 것이었다.
언젠가 수업 중에 대만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타로(芋頭)맛 또우장을 좋아한다고 했었는데, 스쳐 지나가듯 말했던 그 말을 기억하고는 오는 길에 또우장 한 통을 사 온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약간 달달한(微糖) 또우장으로! 특히 샤치가 사다준 또우장이 맛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사 먹지 못하던 곳이었기에 더 감동적이었다(이날을 계기로 나는 일본인인 샤치에게 ‘대만 엄마(台灣 媽媽)’라고 불렀다).
샤치의 따듯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매일 대만 친구 없다고 찡찡대는 나를 위해 자신의 대만 지인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도 황금 같은 주말에! 당시 타이베이의 최고 핫플이었던 중산(中山)의 서점 안에 있는 수제 버거 가게에서 만났는데, 피아노를 가르치신다던 비슷한 또래의 대만 지인분은 샤치의 말대로 딱 봐도 좋으신 분 같았다. 표정과 말투에서 선함이 묻어나는 그런 분.
하지만 문제는 역시 나였다. 기나긴 우울증 생활로 극 내성적인 성격이 된 사람에게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유창한 모국어도 아닌 아주 짧은 중국어로.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는 대화의 모든 과정이 힘들었다. 중국어 실력이 비슷한 샤치와 있을 때는 괜찮았지만, 오히려 원어민인 대만 사람 앞이라서 부족한 중국어를 내뱉는 게 부끄러웠었다. 그럴수록 더 무슨 말이든 내뱉어야 한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잔뜩 쫄아 있는 그때는 머리로는 알아도 입이 움직이지 않았었다.
결국 샤치가 주선해 준 만남은 다음에 또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일회성으로 끝났다. 노력과 시간을 들여 애써 마련해 준 자리였을 텐데 그에 부응하지 못해 샤치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 이후에도 샤치는 변함없이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그녀의 하얗고 맑은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샤치가 소개해준 지인보다 그날 먹었던 수제 버거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떠올라 괜히 민망하고 머쓱했었다. 두 시간가량의 짧았던 그 만남에서 아마 샤치도 발견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친구를 못 사귀고 있었던 '진짜' 이유를. 그날 후로 나는 더 이상 샤치에게 "외롭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부럽다"는 말도.
당시에 샤치는 남편의 일에 따라 일 년 후에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샤치는 어디에 있을까? 여전히 남편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하는 전업주부로 살고 있을까, 아니면 결혼하기 전에 일했다던 은행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을까?
글을 쓰다 문득 생각나서 방금 라인(대만에서 주로 쓰는 메신저)에 들어가서 친구 목록에서 샤치를 찾아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3년 내내 똑같았던 프로필 사진이 지금 보니 새로운 사진으로 바뀌어있다. 사진 속 샤치는 여전히 통통하고 귀여운 볼살과 다정한 눈웃음을 자랑하며 웃고 있다. 그곳이 대만인지 일본인지는 모르겠지만 샤치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차마 메시지를 보내볼 용기는 없지만, 어디서든 그녀가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