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05
어학당 다니면 외롭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수업 끝나면 같은 반 친구들과 점심 먹고, 주말이면 그들이 소개해준 대만 친구들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그럴 줄 알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대만 워홀 선배들의 일상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역시 현실은 달랐다. 어학당을 다녀도 나의 일기장은 '외롭다'는 말로 채워졌다. 같은 수업을 듣는 통쉐(同學, 반 친구)들은 다정하고 친절하고 따뜻했지만, 대만에 가족과 친구, 직장이 있었던 그들은 수업이 끝나면 가야 할 곳과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가끔 몇몇 통쉐들과 점심을 먹긴 했긴 했다. 첫 수업을 했던 날에는 학교 근처 일본식 카레 집에서 어색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첫 인사를 나누었고, 하루는 한국인 통쉐들 그리고 일본인 통쉐와 함께 한식당에서 쫄면과 냉면, 순두부 찌개를 먹으며 서로를 알아갔다. 어렵사리 미국인 할아버지 통쉐까지 함께 이국적인 홍콩 음식을 먹으며 대만 생활의 즐거움과 고충을 공유하기도 했었는데, 통쉐들과 함께 하는 점심 시간은 기대만큼 빈도가 잦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했다. 대화의 내용은 다 잊어버렸어도 저 멀리 주방에서 들려오던 소리, 통쉐들의 밝은 웃음소리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대만에 와서 사귄 한국인 동생과 같이 점심을 먹기도 했다. 그 동생도 나와 같은 어학당에서 같은 시간대의 수업을 들었는데, 이따금 수업 마치고 학교 근처의 맛집에서 만나 일주일 동안 쌓인 근황을 공유했다. 어학당 수업과 선생님, 통쉐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대만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 그 끝은 항상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무리되었던 동생과의 점심 식사는 두 시간 동안 중국어로 생각하고 말하느라 머리에 쥐난 한국인에겐 까르보나라를 먹은 뒤에 마시는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시간이었다.
한 번은 한국인 동생의 반 친구들과 학교 앞 버거킹에 가기도 했다. 그야말로 내가 꿈꿨던 어학당 생활이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이었다. 한국에서도 가리던 낯이 타지에서 더 심해진 건지 아니면 나와는 앞자리가 다른 나이대의 젊은이들을 만나서인지 몇 마디 꺼내지도 못하고 어색하게 햄버거만 먹다 도서관으로 향했다. 다음 날이 받아쓰기 시험이라는 이유 아닌 핑계로.
결국 대부분의 점심을 혼밥으로 채웠다. 물론 혼밥 자체는 10년을 혼자 산 자취생에겐, 대만에 와서도 3달을 거의 홀로 보낸 워홀러에게 익숙하고 당연한 행위였지만, 그럼에도 어학당 수업을 마치고 홀로 밥 먹는 그 시간은 쓸쓸하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나는 왜 오늘도 혼밥을 할까. 한국인 동생은 새로운 친구들이랑 밥 먹으러 간다던데, 같은 반 한국인 통쉐도 친구랑 놀러 간다던데. 나는 왜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을까.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외로움에 빠져 지내다 나중에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외로워할 시간에 혼자라도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자’. 그래서 수업 끝나면 구글 지도에 저장해둔 맛집을 찾아다녔다. 매일 같이 내리는 가을비에 몸이 으슬으슬한 날에는 뜨끈한 우육면 한 사발을 했고, 기분 내고 싶은 날에는 큰 맘 먹고 철판 요리라는 걸 먹으러 갔고, 대만식 집밥이 그리운 날에는 루로우판(滷肉飯, 돼지고기 덮밥) 파는 식당에 찾아갔다.
다행히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혼밥 문화가 훨씬 보편적이어서 식당에서 혼밥을 해도 혼자라는 기분이 덜 했다. 옆 테이블은 뭘 먹나 힐끗거리며, 처음 먹어보는 이 대만 음식에선 이런 맛이 나는구나 하고 느끼다 보면 어느새 그릇은 비워지고 마음의 허기가 채워졌다.
그 와중에 짠순이 기질은 못 버려서, 더군다나 ‘혼자’ 먹는 식사라서 주로 저렴한 음식을 사 먹었다. 그때는 혼자 먹는 점심에 쓰는 예산으로 최대 150위안(당시 환율로 한화 약 6천 원)까지 허용했고, 훠궈나 철판 요리 같은 고오읍 메뉴는 특별한 날에만 가능했다. 가령 시험에서 백 점 받거나 알바 월급을 받은 그런 날.
혼밥 예산 허용치가 그토록 낮았던 이유는 대만의 저렴한 외식 물가도 한몫 했지만, 대만 친구를 사귀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였기에 사람들을 만날 때를 대비해 혼밥에는 되도록 돈을 아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본질적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생각이 깔려 있었다. ‘인생 망해서 대만으로 도망 온 주제에 혼자 비싼 걸 사 먹을 자격도 없다’는 생각. 지금 보면 안쓰럽기도, 무섭기도 한 생각이 오롯이 나를 위한 식사에 많은 돈을 쓰지 못하도록 막았었다.
그때 썼던 가계부를 보면 ‘이렇게까지 싼 것만 먹었다고?’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사라질 돈, 혼자라도, 아니 혼자니까 더 맛있고 더 비싼 대만 음식 좀 실컷 먹고 올 걸 하는 약간의 후회도 들고. 그래도 어찌 보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보다 ‘일상적이면서 보통의’ 대만 음식을 맛볼 수 있었기도 했다. 대만 사람이라고 해서 매일 훠궈를 먹거나 딘타이펑에 가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혼자여서 가보고 싶은 맛집을 자유롭게 가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옆자리 통쉐에게 오늘 점심 같이 먹지 않겠냐고 한 번 더 물어볼 걸. 혼자여서 맛있고 저렴한 대만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한국인 동생에게 오늘 500위안짜리 훠궈 먹으러 가지 않겠냐고 물어나 볼 걸.
그때의 나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지만 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왜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고, 왜 혼밥을 했을까. 그래도 혼자 먹는 밥보다는 함께 먹는 밥이 훨씬 맛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