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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Dec 13. 2024

그냥 어학당 수업이지만 진심이었어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04

언어중심(대만의 중국어 어학당) 수업이 있는 평일 아침, 학교와 제법 먼 거리에 살았던 나는 항상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아침밥은 집에서 먹고 나오는 날도 있었고 학교 근처 아침 식사 집에서 사먹기도 했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샌드위치나 딴삥을 사와서 학교 로비에서 먹으면서 공부하는 여유로운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갓생을 사는 사람 같기도 하고 아침부터 맛있는 걸 먹어서 행복하기도 했다.


수업 가기 전의 아침들

     

“자오안(早安, 좋은 아침)~”     


교실에서 하나 둘 등교하는 통쉐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역시나 행복했고 따뜻했다. 당시의 나는 여전히 쉐어하우스에 살고 있었지만 하우스메이트들이 모두 떠난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고 한국인 동생을 사귀었지만 소심한 마음에 선뜻 먼저 연락하지는 못했었기에 반 강제로(?)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 외로움이 덜어졌다.   

  

수업 자체도 즐거웠다. 독학으로 중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혼자 중얼거리면서 연습하는 게 재미없었는데, 언어중심 수업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선생님(그것도 대만 원어민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데다 통쉐들이랑 중국어로 얘기하면서 배운 내용을 곧장 써먹어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사실 초반에는 나도 초보 수준이긴 하지만 나보다 더 중국어를 잘 못하는 통쉐들과 얘기할 때는 답답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의 오만함과 중국어를 배우는 ‘진짜’ 이유를 깨달은 후로는 통쉐들이랑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만으로 재밌었다.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시던 선생님




수업 내용은 그렇게 어렵진 않았지만 제법 힘들었는데, 정말 매일 숙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배운 문법으로 문장을 만들거나 또는 주제에 맞는 짧은 글을 중국어로 쓰는 숙제가 있었고, 단어 시험과 받아쓰기 시험도 자주 있었고 단원이 끝날 때마다 ‘작은 시험(小考)’이라고 해서 단원 시험도 있었다. 언어중심을 신청할 때는 그냥 수업만 들으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할 게 많았고 바빴다.


당연히 숙제를 안 한다고 해서, 시험을 잘 못 본다고 해서 문제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고 취직하려고 중국어를 배우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언어중심을 다녔던 가장 큰 이유는 대만 드라마 ‘상견니’에 푹 빠지면서 대만에서 쓰는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던 게 다였다. 덧붙여 다들 대만 워홀 가면 다닌다길래, 쌩으로 놀기만 하면 눈치 보이니까,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언어중심을 다닌 거였다. 대만 중국어 배우면 대만 친구 사귀기에 좋을 것 같기도 했고.

월요일마다 받았던 한 주 일정표. 매일 숙제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듣다 보니 너무 진지해져 버렸다. 이왕 돈 내고 배우는 거, 대만 현지에서 배우는 김에 ‘잘’ 배우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 올랐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에서 100점을 못 받으면 억울함에 잠 못 이뤘었고 운 좋게 들어간 서울대에서는 똑똑한 천재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서관에서 밤샘을 했었다. 이후에도 대학원 진학과 임용고시 준비까지, 그야말로 평생 ‘공부’를 업으로 해왔으니 중국어 역시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게 나에겐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일 년 뒤에 죽기로 했다지만 당장 내일 수업에서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고 싶었고, 아무리 ‘작은’ 시험이라도 100점을 받고 싶었다. 좀 더 정확히는 ‘그래야 했다’. 대학원 졸업, 임용고시 합격 다 실패했으니 마지막으로 이것만큼은, 이거‘라도’ 잘 해내야 했다. 부모님에게,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언어중심을 다닌 두 달 반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업 가기 전에도 공부했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질문도 많이 했고, 수업 끝나면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숙제하다가 알바하러 갔었다. 덕분에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고 선생님에게 열심히 공부한다고 칭찬을 듣기도 했었다. 물론 공부하는 만큼 다 흡수하진 못했고 대만 친구들과 얘기할 때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으며, 하는 만큼 늘지 않는 중국어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다. '나는 즐기지 못하고 공부에 매달리고 있나' 하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책을 펼쳐드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보이는 날도 여럿 있었다.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었던 시험 점수


예상했던 대로 지금은 중국어를 전혀 써먹지 않는 일상을 살고 있고 중국어 공부를 따로 하고 있지도 않다. 대만에서 보냈던 일 년을 떠올리며 ‘어차피 부질 없는 중국어 공부했던 시간에 차라리 놀러 다녔어야 했는데’ 하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었기 때문에 중국어를 거의 접할 일 없는 지금도 가끔 길에서 중국어를 듣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알아들을 수 있고, 가끔 대만 친구를 만나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대만의 도서관에서 대만 학생들 사이에서 공부를 하는 경험도 못했을 것이고, 대만에서 카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할 추억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어 관련 자격증도, 공인 시험 점수도 없지만 공부했던 그 시간을 즐겼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수업 끝나고 숙제하러 갔던 교내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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