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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내 대만 친구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13

by 끼미 Jan 21. 2025

대만 친구 사귀기 네 번째 시도만에 그토록 찾던 운명의 대만 친구를 찾았다. 그 운명의 상대는 도리 언니, 아니 이때는 도리씨라고 불렀던 분이었다. 


도리씨는 언어교환 어플을 통해 만난 네 명의 대만 사람들 중 유일한 여성분으로, 실제로 만나기 전 채팅으로 대화를 나눌 때부터 왠지 느낌이 좋았다. 티 없이 맑고 밝은 성격이 느껴진달까. 텍스트이지만 도리씨와 대화를 나누면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한때 몸담고 싶었던 방송계 종사자라고 해서 대만 방송국에 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도리씨와의 만남을 기대하게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은 9월 말. 완전한 한여름은 지났지만 여전히 타이베이는 잠시만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불구덩이였다. 도리씨는 MRT(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줄무늬 나그랑 티셔츠에 멜빵 바지를 입고 약간 빨개진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입은 옷은 기억 안 나지만 도리씨의 옷차림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분명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다고 했던 30대 중반의 언니가 멜빵 바지를 입고 나타나다니, 귀엽고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도리씨는 옷차림만 귀여운 게 아니었다. 그녀의 어설픈 한국어는 같은 여자가 봐도 정말 사랑스러웠다. 도리씨는 한국어를 한국 드라마 보면서 혼자 조금씩 공부했다고 했는데, 한국인이랑 실제로 대화를 해본 적도 별로 없다는 그녀의 한국어는 이제 갓 말을 배우고 있는 유치원 아이의 그것 같았다. 특히 말할 때마다 다음 할 말을 생각하며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그녀의 목소리와 말투만큼이나.


그렇게 귀여운 한국어로 도리씨는 한국 연예인 중에서 김선호씨를 좋아한다고 수줍게 밝혔다. 당시에 방영 중이었던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를 재밌게 보고 있다며, 한국 가면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대답하다가 나도 도리씨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대만 연예인 허광한을 좋아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알바하는 식당의 단골 손님이더라고. 내 말에 도리씨는 “꺄~ 진짜~? 어떡해~~~” 하며 설레했다. 역시 덕후끼리는 통하는 법이었다. 내가 나중에 정말 허광한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하냐고 묻자 도리씨가 가방에서 종이랑 펜을 꺼내서 중국어로 할 말을 적어줬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인이에요. 저 ‘상견니(드라마)’ 봤어요. 연기 정말 잘해요! 전 당신의 팬이에요. 저랑 같이 사진 찍어줄 수 있어요? 사인해 줄 수 있어요?”


도리씨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적고 읽으면서 마치 내일이라도 당장 그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마냥 즐거워했다. 나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비슷한 한국어 멘트를 적어줬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만 사람이에요.”라고 쓴 문장을 도리씨와 함께 연습하며 엄청 웃었다. ‘좋아하는 연예인 만나기’라는 다소 실없는 꿈을 얘기하며 낄낄대니 마치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순도 100%의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느꼈다. 도리씨랑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도리씨가 적어준, 허광한 만났을 때 할 중국어 멘트도리씨가 적어준, 허광한 만났을 때 할 중국어 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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