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나는 대만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12

by 끼미

‘나는 왜 대만 친구를 못 사귈까?’


대만에서의 일 년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생각이었다. 대만에 가면 당연히 대만 친구가 생길 줄 알았다. 워홀 후기에 보면 다들 그렇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교우 관계가 좋았고 낯선 사람과도 대화를 잘 나누기도 하니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오만한 착각이었다.


어학당 수업과 한식당 알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언어교환 어플을 다시 활발하게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하는 카톡도 귀찮은 사람에게 중국어로 대화하는 게 여간 머리 아픈 일이 아니었지만 친구를 사귀려면 어쩔 수 없었다. 예상과는 달리 학교에서도, 식당에서도 대만 사람과 친해지기는커녕 말을 섞을 기회도 많지 않았기에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희망을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용했던 언어교환 어플은 ‘헬로우톡’으로, 전(前) 하우스 메이트가 대만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어플이라며 알려줬었다. 하메의 말대로 그곳에는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대만 사람들이 상상 그 이상으로 많았다.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아도 하루에도 열 명 넘는 사람들이 먼저 채팅을 걸어왔다. 한국에 관심 있고 한국어를 좀 할 줄 아는 대만 사람들, 즉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예비) 친구들이 넘쳐났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다. 목록을 채운 수십 명의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만난 사람은 네 명이었는데, 그중 셋은 남자분들이었다. 다른 언어교환 어플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오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남자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여성분들은 실제 만남보다는 어플상에서의 연락만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나도 내심 ‘친구’ 앞에 ‘남자’라는 말이 붙기를 바라며 만나러 갔다. 하지만 그래서였을까,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은 기대와 슬프게 달랐다. 어색하긴 해도 대화를 제법 재밌게 나누긴 했다. 내가 만났던 분들 중에는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던 분과 나처럼 워홀을 했다는 분이 계셨는데, 한국과 대만 생활의 차이나 한국어와 중국어 공부의 어려움 이런 것들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었다.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아무래도 불편했다. 양쪽 다 서로의 언어를 능숙할 정도로는 구사하지 못해서인지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어김없이 침묵이 찾아왔다. 아는 중국어가 얼마 되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뭐, 상대방이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으니 자유롭게 할 말을 해도 됐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그건 내가 원했던 언어 교환이 아니었다.




한 분과는 두 번 만나기도 했었다. 나처럼 한국에서 워홀을 했다던, 칼국수 집에서 서빙 알바를 했다던 분이었다. 그 분과는 훠궈 집에서의 첫 만남에 이어 대만식 술집인 러차오(熱炒)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지며 서로 누나, 동생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심지어 버스 막차가 끊길 때까지 얘기하다 결국 자전거 타고 귀가했을 정도로 꽤나 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러나 그 인연도 거기까지였다. 첫 만남에서 그분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타이베이 시내를 달리면서 ‘이게 꿈꾸던 대만 생활이지!’라고 설레했지만, 러차오에서 그분의 전 연애 얘기만 줄창 들으며 생각했다. '다음 만남은 없겠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은 기대했던, 이성적인 관계로의 발전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도 만남이 이어지지 않은 원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결정적인 건 역시나 중국어였다. 하도 대만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분의 사랑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정작 내 할 말을 하기에는 나의 중국어가 너무나도 짧았다. 전 여자친구 얘기를 그만 듣고 싶어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무리 번역 어플이 있다지만 계속 상대에게 잠깐 기다려 보라고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답답했다. 막장 드라마 같은 남의 사랑 얘기를 듣는 건 흥미롭긴 했지만 그건 친구 사귀기의 바람직한 과정은 아니었다. 친구라는 건 서로 오고 가는 감정의 교류 속에서 맺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계속 말하고 상대는 계속 듣기만 하는 관계는 결코 친구 사이가 아니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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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취기와 현타를 느끼며 아무도 없는 타이베이의 거리를 열심히 달렸던 그날 밤, 나는 언어교환 어플에서의 대만 친구 사귀기를 포기했다. 새로운 사람을 다시 만날 수도 있었지만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솔직히 귀찮았다. 한국어로 하는 카톡도 귀찮아하는 사람이 그래도 대만 친구 만들어 보겠다고 머리 싸매며 중국어로 채팅을 주고받았지만, 몇 번의 만남이 허무하게 끝나자 불타던 의욕이 식었다. 풍선에서 김 빠지는 소리를 내며 피슈슉.


그러나 현타 온 대만 워홀러에게도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실제로 만난 네 명 중 나머지 한 사람, 나의 유일한 대만 친구가 되어줄 도리 언니와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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