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10
2021년 당시 나의 한식당 서빙 알바의 시급은 160위안이었다. 대만의 최저시급 기준에 충실했던 그 금액은 당시 환율로 한화 7천 원이 조금 안 됐는데, 동년 우리나라 최저시급이 8,720원이었으니 그다지 가성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솔직히 일이 좀 바쁘거나 피곤한 날에는 ‘내가 이 돈 받자고 여기서...’라는 현타가 찾아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식당 알바는 나에게 시급 160위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알바 가기 30분 전, 오후 5시 즈음부터 슬슬 신났다. 드디어 알바하러 간다! 일하러 가는 거지만 이렇게 신났던 건 알바 출근이란 곧 탈출이었기 때문이다. 머리 아픈 중국어 공부, 지겨운 외톨이 생활로부터의 유쾌한 탈출!
답답한 도서관에서 탈출해 도착한 타이베이의 다안 공원 옆 한식당. 그곳에는 좋은 것들이 많았다. 일단 밥! 엄마가 해준 밥만큼이나 맛있는 한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시급은 최저라도 ‘한국 가고 싶어병’에 걸린 워홀러에게 매콤한 육개장과 뜨끈뜨끈한 돌솥 비빔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라 향수병 치료제였다.
하지만 한식보다 더 강력한 약이 있었으니.. 바로 ‘사장님들과의 수다’였다. 그것도 한국어로! 원래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MBTI의 극 I이지만 사람들과 대화하는 건 좋다. 그런 사람이 어학당 수업에서 짧은 중국어로 더듬더듬 말하고, 도서관에서 홀로 묵언수행 하는 답답한 하루를 보내고 와서 한국어로 하고 싶은 말을 원 없이 할 수 있으니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하우스 메이트들이 모두 떠나 더 이상 쉐어하우스가 아니게 된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고, 그렇다고 매일 가족이나 친구와 통화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외톨이에게 얼굴 맞대고 대화하는 행위는 감당할 수 없이 무거워진 외로움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그래서 늘 출근길보다 퇴근길의 마음이 더 가벼웠다. 서서 일한 두 다리는 몇 배로 무거워졌을지라도.
두 사장님들과의 대화가 즐거웠던 건 두 분의 쿨함 덕분이었다. 화교이지만 중국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하시다는 사장님들은 한국인이라면 으레 묻는 출신 지역이나 출신 학교, 이런 신상 정보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으셨다. 심지어 알바 면접도 쿨하게 생략했거니와 출근을 시작해서도 나는 그저 ‘워킹 홀리데이 온 알바생 끼미’ 일뿐이었다. 심지어 나이도 안 물어보셔서 내가 먼저 사장님들께 말을 꺼냈었다. 왜 나이를 안 물어보시냐고. 그러자 나와 함께 홀을 맡으신 여자 사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몇 살인지 알아서 뭐 해~ 일만 잘하면 되지~”
대화 내용이 그렇게 특별하거나 유달리 재밌었던 건 아니다. 지금까지 거쳐 갔던 알바생과 손님 이야기, 어학당 수업에서 있었던 일, 주말에 놀러 갔다 온 이야기, 바로 앞 카페 사장님 이야기 같은 일상적인 주제들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평범한 그 얘기들이 재밌었다. 손님이 와서 대화가 끊기면 후다닥 주문받고 다시 카운터로 달려가서 "사장님, 그래서요?"라며 다음 얘기를 독촉할 정도였다.
돌아보면 내 이야기보다 사장님들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던 것 같다. 한국과 대만에 계시는 사장님들의 가족, 대만 오기 전에 하셨던 일, 전날 두 분이 다투신 이유, 두 초등학생 따님의 학교 생활... 두 분은 나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셔도 본인들의 이야기는 쿨하게 꺼내어 놓으셨다. 재밌는 얘기는 즐겁게, 무거운 주제도 웃으시면서. 거의 매일 수다를 떨어도 두 분의 이야기는 항상 어디선가 새로운 게 튀어나왔다.
그래서 좋았다. 사장님들께서도 종종 나에게 질문을 하셨지만 이런 말은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시험 공부 더 하지 왜 그만뒀냐, 나이가 몇 살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냐 같은 얘기들. 가끔 한국 돌아가면 뭐 할 거냐고 물으셔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에 별말 않으셨다. "한국 가서 돈 벌어서 대만 와, 힘들어도 우리도 여기서 돈 많이 벌었어."라고 '그냥' 얘기하실 뿐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특히 어른들이 건넸던 조언의 양상과는 달랐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대만까지 와서 또 같은 말을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장님들과 대화는 자유의 시간이었다. 나라는 사람 앞에 붙어있던 온갖 수식어가 사라지고 지우고 싶은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그냥 '한식당 알바생'으로 존재하는 시간. 만 30살에 대만으로 도망쳐 온 나에게 필요했던 건 바로 그런 자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