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광한이 왜 거기서 나와?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17

by 끼미

허광한(許廣漢).


대만 배우인 그는 나를 대만으로 오게 한 장본인이었다. 망한 인생,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며 매일 반지하 원룸에서 혼자 울던 나를 살려준 대만 드라마 <상견니(想見你)>. 허광한은 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평소 중국어는 시끄럽다고 싫어했던 내가 난데없이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다정한 그의 중국어, 나도 그의 말을 자막 없이 알아듣고 싶었다. 나도 같이 웃고 싶었다. 시간차 없이. 대만 와서도 중국어 공부에 열심이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언제 어디서 그를 마주칠지 모르니까, 완전 팬이라고 호들갑 떨어야 하니까,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다.


물론 '덕후는 계를 못 탄다'는 법칙에 따라 그와 같은 하늘 아래에 산다고 해서 그를 '우연히' 마주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래도 대만에서 사는 동안 한 번은 그를 보러 가고 싶었다. 무대 인사든 팬사인회든 뭐든 찾아가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그가 나를 찾아왔으니까.




그날은 2021년 9월 18일 토요일이었다. 대만 온 지 4달 됐지만 아직 대만 친구를 못 사귀었던 나는 이 날도 언어교환 어플에서 알게 된 대만 분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역시 포기해야 할까 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 카톡이 왔다. J였다. 지금은 토요일 저녁 8시, 나랑 같은 한식당에서 알바하는 J가 뚝배기 나르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상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J가 보낸 카톡 내용은 더 이상했다.


"언니 ㅠㅠ

대박사건

오늘 허광한 봤어요"


잠깐. 허광한? 내가 아는 그 허광한? 갑자기 왠 허광한? 얘 알바하러 안 갔나?

J가 폰을 내려놓기 전에 황급하게 답장을 보냈다.


"...?

어디서.......? 어디 있어.............?"


심장이 팔딱팔딱거렸다. 수조에서 막 건져낸 광어처럼.




한 시간의 기다림 뒤, 알바를 끝낸 J에게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 J가 허광한을 본 곳은, 다름 아닌 J가 일하는 한식당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평일 저녁마다 알바하러 가는 그 한식당. 그곳에 허광한이 손님으로 온 거였다. 소불고기를 포장하러 온 손님으로.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사장님에게 그의 얘기부터 물었다. 사장님 말씀에 따르면 <상견니>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자주 왔었는데, 아직 대만에서는 인기가 덜 해서 사장님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셨단다. 그나마 나처럼 <상견니> 팬인 나 오기 직전에 알바했던 한국인 워홀러가 그를 알아봤고, 드라마에 관심 없는 두 사장님은 그제야 그가 요즘 한국에서 엄청 인기 있는 배우라는 걸 알았다고 하셨다.


언제나처럼 홀에 서서 사장님 얘기를 듣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여기에 허광한이 왔었다고? 저 빨간 나무문 열고 들어와서 포장해 갔다고? 게다가 단골이라고?

그럼....


나 있을 때도 올 수 있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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