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만난 행운, 복권 당첨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16

by 끼미

아무리 노력해도 되는 게 없던 한국에서 도망쳐온 대만.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대만은 나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복권 당첨이었다.


대만에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복권이 있는데, 바로 '영수증 복권'이다. 말 그대로 마트나 편의점, 시장, 옷가게 등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받는 종이 영수증이 복권인 것이다. 물론 영수증 복권은 로또처럼 별도로 돈을 내고 구매하는 복권에 비하면 당첨 금액이 크지 않지만, 마트에서 생수 한 병만 사도 자동으로 복권 응모가 되니 하루 24시간 365일 내내 행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행운을 고대하며 대만 워홀러는 부지런하게 영수증을 모았다. 일 년 중에 한 번은 당첨되겠지, 하면서.


영수증 복권은 당첨 확인 방법도 아주 간단했다. 영수증 복권 당첨 확인 어플을 다운 받은 뒤 종이 영수증에 인쇄되어 있는 QR 코드를 인식시키면 당첨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어로 '복권에 당첨되다'는 '獎(지앙)'이라 하는데, 어플에서는 당첨 됐으면 '中獎(쭝지앙)', 아니면 '沒獎(메이지앙)'이라고 알려준다. 귀여운 목소리까지 곁들여서.


뽑기 운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나였기에 영수증 복권 결과 역시 당연히 대부분 '沒獎'이었는데, 어플에서 아쉬운(척 하는) 소리로 '메이 지앙~'이라고 할 때마다 괜히 심술났다. 안 될 걸 알면서도 일확천금을 꿈꾸며 산더미처럼 쌓인 복권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고 있는 모습이 좀 우습기도 했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못 산 집, 대만에서 마련할 수 있을 지도.




2021년 9월 26일, 이 날은 새벽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자다가 침대가 흔들려서 깼는데, 진도 5.7의 제법 강한 지진이었다. 이러다 집 무너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으로 맞이한 주말은 아무 일 없는 평소와 달리 알바를 하러 갔다. 나랑 같은 식당에서 주말에 일하는 한국인 동생 J가 대타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매번 해질녘 저녁에 오다가 훤한 낮에 오니 기분이 이상하다 느끼며 2시간 바짝 일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는 중국어 공부하다가 아참 하면서 영수증 복권 어플을 켜고 한 장씩 QR 코드를 인식했다. 역시나 줄줄이 '메이 지앙~'이었다. 그런데... 화면에 이상한 글자가 떴다.


'中獎'


쭝지앙. 당첨이었다! 엥? 진짜???

혹여나 중알못이 잘못 읽었나 긴가민가 하며 화면을 자세히 보니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獎金(당첨금) 200 元(위안)'.


당시 환율로 계산해 보면 우리나라 돈으로 약 8,000원 정도였다. 이렇게 말하면 얼마 안 되는 돈 같지만, 대만에서는 우육면 한 그릇에 밀크티 한 잔 든든하게 사먹고도 남는 액수였다. 200위안이라니! 마침 전날 밤에 가계부 정리해보니 150위안이 비어서 속상했던 참이었던 참이라 더 신났다. 빵꾸를 메꾸고도 남는다! 아싸!



기쁜 마음으로 어플 화면을 이것저것 눌러봤다. 어플은 당첨 확률도 알려줬는데, 방금까지 확인한 82장의 영수증 중 1장 당첨된 것이니 5%의 확률이라고 했다. 5%! 확률 50%의 뽑기도 매번 탈락했던 내게 5%는 0.005%의 확률이나 다름없었다.


흥미롭게도 당첨된 영수증이 어느 가게에서 뭘 사고 받은 것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에게 행운을 안겨준 가게를 확인하고 나니 더 기뻤는데, 그 가게는 내 최애 빵집이었다. 땡볕에 30분 걸어가야 하지만 그래도 사 먹으러 가는 옆동네 그 빵집! 그저 빵이 좋아서 58위안치의 빵 두 개를 샀을 뿐인데 200위안짜리 복권에 당첨되다니! 더위와 알바로 조금 지쳤던 마음이 행운의 빵집에서 사먹었던 찰떡 든 팥빵처럼 달달해졌다. 역시 빵은 사랑이야.




그로부터 약 10일 뒤, 당첨금을 받으러 갔다. 당첨된 날 곧장 갈 수도 있었지만, 보장된 미래 수익이 주는 설렘을 오래 느끼고 싶었다.


영수증 복권은 당첨금을 찾는 것도 쉬웠다. 아무 편의점에 가서 당첨된 영수증과 당첨 화면을 내밀면 끝이었다. 순식간에 내 손에 건네진 100위안짜리 지폐 두 장과 수령 확인 영수증. 난생 처음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이날따라 화창한 하늘 아래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이걸로 뭐 사먹지 하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결국 이 돈으로 뭐 사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분명한 건, 당첨의 행운은 이걸로 끝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은 나를 위해 더 큰 행운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복권 당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오직 나를 위해 준비된 일생일대의 행운. 아니,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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