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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Aug 12. 2024

시작부터 대차게 망한 대만 워홀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06

대만에 오면 실패로 가득했던 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다. 자가격리만 끝나면 내가 꿈꾸던 ‘대만 워홀’ 생활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어학당 다니기도, 알바하기도, 대만 친구 사귀기도, 기대했던 그 무엇도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집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2021년 6월 들어 대만의 코로나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다. 내가 입국했던 5월 초까지만 해도 대만은 1년 반째 확진자 수 0명을 유지하며 일명 ‘방역 모범국’으로 불렸다. 하지만 5월 중순부터 확진자 수가 급증하더니 매일 5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왔다. 당시 약 2,350만이라는 대만 전체 인구를 고려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심지어 대부분 지역 내 감염이었기에 이 작은 섬나라 전체에 코로나가 퍼져나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에 대만 정부는 5월 24일부터 식당 내 취식을 금지하고 포장이나 배달만 가능하도록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5월 24일은 내가 격리를 마치고 타이베이에 온 바로 다음 날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의 모든 워홀 계획이 틀어졌다. 당장 6월부터 시작 예정이었던 사범대 어학당(언어중심)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두 달 조금 넘는 수업에 학비가 무려 100만 원이 넘었지만 대만인 선생님에게 직접 중국어를 배우고 친구들도 사귀기 위해 큰맘 먹고 신청한 수업이었다. 그런데 방구석에서 혼자 노트북 화면만 쳐다보며 들어야 한다니. 보나 마나 수업료가 아까울 게 분명했다. 다행히 학교 측에서 다음 학기로 미룰 수 있다고 해서 결국 9월부터 시작하는 가을 학기 수업을 듣기로 했다.


어학당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메일


어학당 수업을 들으며 병행하려고 했던 알바 역시 구할 방법이 사라졌다. 대만에 오기 전 생각했던 알바는 한식당 서빙 알바였다. 이제 겨우 중국어 왕초보에서 벗어난 내가 대만에서 할 수 있는 알바는 그것뿐이었고 식당 알바는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어 자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네이버 카페에 종종 올라오던 한식당 알바 구인 글이 싹 사라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식당 내 취식 금지’ 조치 때문이었다. 이 조치를 기점으로 한식당을 비롯한 많은 식당들이 잠정 휴업 상태에 들어갔고, 문을 닫지 않았더라도 이 시국에 새로운 알바생을 구하는 식당은 없었다. 홀 영업을 하지 않으니 서빙할 사람이 필요 없는 게 당연했다.


어학당 수업도, 알바도 모두 물거품이 되자 하루아침에 할일 없는 백수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넘쳐나는 시간에 여행을 가거나 하다못해 타이베이 시내를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눈치가 보였다. 코로나 앞에서 대만 사람들이 극도로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마트에서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 채로 우유를 집어 들었고 승객으로 가득 찬 버스 안은 침묵만이 감돌았으며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고서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 대화를 나눴다. 가끔 타이베이 시내를 나가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늘 관광객들과 노점상들로 북적거리던 시먼딩 거리도, 사람들이 줄 서서 기념 촬영을 하던 101 타워도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의 활기가 사라진 타이베이는 마치 유령 도시 같았다.

코로나가 심각하던 어느 날의 텅 빈 시먼딩과 101 타워 앞


이런 시국에 대만 친구를 사귀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하메가 알려준 언어교환 어플 '헬로우톡'을 깔아 몇몇 대만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끼고라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알던 사람과도 거리를 두는 판국에 생판 모르는 한국인을 만나주겠다는 대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코로나가 잦아들면 만나자는 나의 말에도 다들 대답은 하지 않고 "小心健康(건강 조심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자국민들이 이렇게 조심하니 이방인인 나는 행동거지를 더욱 조심해야 했다. 괜히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워홀 온 한국인이 조심성 없이 쏘다니다가 코로나에 걸렸다!”라는 기사가 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패가망신, 국가 망신이었다. 마트를 가거나 산책하러 가는 것 외에는 최대한 집에 있으면서 대만 사람들이 먼저 집 밖으로 나와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대만 워홀은 제대로 시작해보지 못하고 망해버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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