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05
똑똑똑.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눈물나게 반가운 한국어였다.
2주간의 자가격리가 끝나고 본격적인 워홀이 시작되었다. 가오슝에서 우리나라의 KTX 같은 대만의 고속철도 까오티에(高鐵)를 타고 타이베이에 왔다. 지방 도시에 비해 주거비는 비싸지만 알바 자리가 많다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이곳이 내 대만 워홀의 시작지였다.
대만 워홀을 준비하며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방 구하기’였다. 아무리 번역 어플이 잘 되어 있다지만 중국어 왕초보가 이 낯선 나라에서 방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대만 도착 후 2주는 (강제) 호캉스를 즐겼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주일의 여유가 있었다. 격리 종료 후 ‘자가건강관리 기간’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자가건강관리 기간’은 일종의 자숙 기간으로,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를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비해 일주일 동안 외출시 마스크를 꼭 끼고 최대한 사람 많은 장소를 피하며 지내야 했다.
처음에는 그 일주일 동안 호텔에서 지내며 방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호텔을 비롯한 대부분의 숙박 업소에서 자가건강관리 기간까지 끝나야 손님으로 받아준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원룸과 비슷한 타오팡(套房)과 쉐어하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2주 동안 별 문제 없었으면 됐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 시국에 나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했기에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공원에서 노숙해야 하나 막막하던 참에 대만에 들어오기 직전 방법을 찾았다. 자가건강관리기간도 받아준다는 숙소를 발견한 것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쉐어하우스로, 당시 두 명의 20대 한국인 여성분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위치도 타이베이에다 가격도 저렴했다. 대만에 와서 한국인들이랑 같이 사는 게 맞나 잠시 고민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말 통하는 한국인들과 지내면 낯선 대만 생활에 적응하기 편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일단 이 쉐하에서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다른 방을 알아보기로 했다.
쉐어하우스 입주 첫날 저녁, 하메(하우스메이트)들이 환영 파티를 열어줬다. 파티 음식으로는 같이 옆동네 까르푸에 가서 사온 연어 초밥과 하메가 만들어 준 프렌치 토스트, 그리고 축하 자리에 빠질 수 없는 맥주가 준비됐다. 대만에 온 지 2주만에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였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도마뱀 왔어요!"
"헐, 여기 도마뱀 살아요?"
"네, 가끔 집에도 들어와요. 완전 귀여워요!"
아직 어색한 기운이 감돌던 거실에 두 마리의 도마뱀 손님들이 나타났다. 도마뱀은 실물로 처음 보는데 쪼꼬만 게 정말 귀여웠다. 하메들 말에 따르면 도마뱀들이 바퀴벌레를 잡아먹는단다.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일도 잘하는 고마운 손님이었다.
도마뱀들이 물꼬를 틀어준 하메들과의 대화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달랐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코시국에 대만에 온 워홀러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대화 주제는 무궁무진했다. 왜 워홀을 왔는지, 하필 대만에 온 이유는 뭔지, 이놈의 코로나는 언제 끝날지, 대만 정부는 왜 식당에서 밥도 못 먹게 하는지...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메들과 한국어로 실컷 떠들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2주 동안 상대방이 내가 하는 중국어를 알아들을까 긴장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졌다. 무엇보다 이 시국에 이곳 대만에 오기까지, 대만에 와서 있었던 시간들을 이해받은 기분이었다. '대만까지 와서 한국인이랑 살아야 한다니' 싶었던 아쉬움이 누그러 들었다. 오히려 하메들이 한국인이어서, 말이 통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국인 하메들과 함께 하는 첫째날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