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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Aug 05. 2024

대만이지만 대만이 아닌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04

드디어 대만에 왔다. 그런데 여기, 대만이 아닌 것 같다.




나의 '대만'


더블 침대 하나와 겨우 요가 매트를 펼 수 있는 여유 공간, 딱 한 명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 5평 남짓의 그 공간이 나에게 허락된 대만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대만에 온 죄로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가오슝의 어느 호텔 방에 갇혀 보낸 14일은 한국에서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밥 먹고 중국어 공부하다가 넷플에서 드라마 보고 요가를 하고 또 중국어 공부를 하다 잠을 잤다. 단지 산책하는 장소만 논두렁에서 방 안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내 생의 마지막 일 년을 불태우리라 마음 먹고 온 이곳에서 2주 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 현실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내가 이러려고 대만에 왔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딱 2주만 버티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답답했다. 도무지 '대만'에 온 것 같지 않았다. TV에서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만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대만임을 넌지시 말해주었다.




그래도 대만에 온 기분을 낼 방법이 있었다. 바로 배달 어플인 '우버이츠'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격리했던 호텔은 방값이 저렴한 대신 알아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는데, 그게 오히려 좋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대만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을 시킬 때마다 최대한 '대만스러운' 메뉴들로 골랐다.


아침은 또우장(콩물)과 차예딴(찻잎에 조린 계란), 점심에는 루로우판(돼지고기간장조림덮밥), 간식은 시원한 쩐쭈나이차(버블티), 저녁에는 바삭한 지파이(대만식 닭튀김). 


그렇게 '대만스러운 대만 음식'을 찾아먹으며 답답한 격리 생활을 버텼다. 여기가 한국인지 대만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밥 먹는 시간만큼은 가오슝의 어느 맛집에 앉아 있는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방구석에서 떠나는 대만 미식 여행



방구석에서 첫 대만 친구(?) ‘빅터’도 사귀었다.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매일 아침, 저녁으로 체온과 코로나 증상 유무를 보고해야 했는데, 내가 연락해야 하는 경찰관이 바로 빅터였다. 


대만 입국 다음 날 영상통화로 처음 만난 빅터는 짙은 눈썹과 진한 눈매를 가진 남자 경찰관이었다. 우리는 대만의 국민 메신저인 라인(Line)을 통해 연락했다. 대부분 내가 체온과 증상 없음을 보고하면 빅터가 알았다고 답하는 내용이었지만, 거기에 빅터의 몇 마디가 더해졌다. 중국어 바보인 나를 위해 “祝你有好夢(좋은 꿈 꾸세요).” 같은 중국어 표현을 알려 주거나 “감사합니다” 같은 한국어 메시지를 보내준 것이다. 


빅터가 보낸 메시지


빅터가 먼저 보내준 메시지를 시작으로 우리는 종종 대만과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빅터는 나보다 한국 드라마를 더 많이 알고 있는 대만 사람이었다. 하루 두 번 체온을 재는 게 귀찮기는 했지만 빅터와 연락하는 건 설레기도 하고 즐거웠다. 책에서 배운 중국어로 대만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자체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언젠가 진짜 대만 친구와도 이렇게 라인을 주고받을 상상을 하며, 대만에 있지만 대만이 그리운 14일을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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