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02
‘SPECIAL ENTRY PERMIT FOR COVID-19 OUTBREAK’
‘코비드-19 발생에 대한 특별 입국 허가’
내 워홀 비자에 적혀 있는 문구이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물린 내 대만 워홀은 비자 발급부터 아주 '스페셜'했다.
대만 워홀을 결심한 건 2020년 11월 초였지만 바로 떠날 수는 없었다. 당시 살고 있던 자취방 계약이 2021년 2월 말까지였기 때문이다. 방이고 뭐고 당장 대만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또 다른 사정이 있었다. 워홀 비자 발급이 중단된 것이다. 2020년 12월 말, 대만의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자 대만 정부는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고 워홀 비자 발급 역시 중단됐다.
'뭐 하나 끝까지 되는 게 없구나' 싶으면서도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 공부에 전념할 기회였다. 이제 겨우 중국어로 "저는 한국인입니다(我是韓國人)."를 더듬더듬 말할 수 있게 된 나는 그야말로 중알못이었다. 대만에서 살아남으려면 중국어 공부를 빡세게 해둬야 했기에 갑자기 생긴 대기 시간이 반가웠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혼자 서울로 올라간 스무 살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가족들과 같이 살 기회였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2021년 2월 말, 장장 10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경남 창녕의 부모님 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대만 워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인생 망해서 외국으로 도망간다는 사실을 내 입으로 공식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가족들은 나의 귀향 이유를 ‘서울에서 실패해서 돌아왔다’ 정도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 몰래 떠날 준비를 하던 2021년 3월 3일, 드디어 워홀 비자 발급이 재개됐다. 언제 또 중단될지 모르니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때서야 처음으로 엄마에게 워홀 계획을 밝혔다. 내일 부산에 가야 하는데 워킹홀리데이 비자라는 걸 신청하러 가는 거라고, 그게 나오면 대만에 가서 1년 동안 살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 가는 듯 아무렇지 않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화낼 줄 알았던 엄마는 의외로 덤덤했다. 왜 갑자기 떠나느냐, 돈은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의 대만 사랑을 알고 있던 엄마는 왜 하필 대만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언제 가는데?”라고만 했다. 삶에 지친 딸의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아니면 엄마도 나를 포기해서였을까. 지금까지도 궁금하지만 평생 모르고 싶은 엄마의 반응이었다.
엄마가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준 덕분에 무사히 부산에 있는 주타이베이 대표부 부산 사무국을 찾아가 워홀 비자를 신청했다. 그로부터 약 2주 뒤 부산에서 반가운 등기 한 통이 날아왔다. 그때까지도 유지되고 있던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뚫고 나를 대만으로 들여 보내줄, 그야말로 '쏘 스페셜’한 워홀 비자였다.
비자 수령 후 약 보름이 지난 2021년 5월 6일,
나는 '스페셜' 비자를 들고 무사히 대만으로 입경했다.
그로부터 약 10일 후인 5월 17일,
대만 정부는 워홀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의 입국도 금지했고, 그 조치는 2022년 7월 25일이 되어서야 풀렸다.
내가 일 년의 워홀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로도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조금만 더 망설였다면, 엄마가 한 번이라도 나를 붙잡았더라면...'
지금 생각해도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그렇게 나의 '스페셜'한 대만 워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