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끼미 Jul 29. 2024

대만으로 떠나야 했다, 살기 위해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01

대만에서 살아보는 게 내 오랜 꿈이었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학부 마지막 겨울방학, 

첫 해외 여행으로 혼자 대만 타이베이에 갔다.

대만이 타이완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여행에서 나는 대만이라는 나라에 첫눈에 반했다.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 저렴한 물가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에 빠져버렸다.

중국어로 "안녕하세요(你好)"라는 인사 한 마디도 못 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대만 가고 싶어병'에 걸려버린 나는 조교 월급을 모아 틈만 나면 대만으로 향했다.

2년 동안 3번에 걸쳐 타이베이, 타이중과 타이난, 가오슝과 컨딩을 여행했다.

주변 친구들이 가는 일본, 태국 등은 내 선택지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총 4번의 해외 여행 중 3번이 나홀로 대만 여행이었으니 그야말로 중증 환자였다.


'대만 가고 싶어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평생 한국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대학원 졸업하면 대만에살아보자."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대학원 졸업에 실패한 것이다.

내 지도교수는 열심히 써간 내 졸업논문을 지도해주는 대신 다른 일을 시켰다.

졸업 하나만을 바라보며 2년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곧장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바로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토익 점수도, 컴활 자격증도 없는 내가 가진 것은 중등교사 자격증 뿐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실패했다최종 시험까지 두 번 올라갔지만 결국 불합격했다

거기에다 같이 준비한 사람들은 붙고 나만 똑 떨어졌다.


서서히 멘탈이 나가기 시작했다. 3년째 공부와 알바를 병행하느라 몸도 지쳐갔다.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나에겐 가까이에서 날 위로해줄 가족도 없었다.

그래도 내 곁에 함께 하는 남자친구와 반려동물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텨나갔다.


그러던 2020년 3월 말, 남자친구에게서 갑작스런 이별 통보를 받았다.

같은 해 10월 말, 3년 반 동안 함께 살았던 내 고슴도치도 세상을 떠났다.

어두컴컴한 반지하 자취방 안,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울고 밥 먹다가 울고 산책하다가 울고 설거지하다가 울었다. 

매일 밤 텅 빈 방에서 내 곁을 떠난 고슴도치를 그리워하며 울다 지쳐 잠들었다.

공황장애에 위경련까지 심해져 그나마 건강하던 몸까지 고장났다.


'난 왜 사는 걸까?' 

'세상에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철저히 나 혼자다.'


내 일기장은 눈물과 독백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심해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 시기 나는 힘들어도 매일 저녁 산책을 했다. 

좁은 방 안에 있으면 안 좋은 생각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반대편으로 건너기 위해 육교 위로 올라간 어느 날,

걸음을 멈추고 8차선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차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난간으로 다가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고소공포증이 심하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난간 밖으로 상체를 좀 더 내밀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스팔트 도로 위를 빠르게 굴러가는 바퀴 소리, 빵빵 거리는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내 안의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 죽기에는 억울해!'


죽고 싶지만 지금 여기서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살아온 내 인생이 너무 불쌍했다.

시험 준비를 위해, 고슴도치 병원비를 위해 놀고 싶어도, 사고 싶어도 참았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공부도, 악착 같이 돈을 모을 필요도 없어졌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난간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모아둔 천 만원을 어떻게 다 써야 죽을 때 덜 억울할까?'






며칠 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대만에 가서 1년만 더 살자'


어차피 망한 인생, 마지막 일 년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대학원 졸업은 못 했지만 대만에 못 갈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마침 대만 드라마 '상견니(想見你)'를 본 직후라 '대만 가고 싶어병'이 다시 도진 상태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만 '워홀'을 가기로 했던 건 아니었다.

워홀이 30세까지라고 알고 있던 31세의 나는 워홀을 지나가버린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친구랑 얘기하던 중에 대만 얘기가 나와 바로 '대만 워홀'을 검색해 봤다.

그제서야 알게 됐다. 그 30세가 '만 30세'라는 것을.

만 30세 생일까지 딱 3달 남은 어느 저녁이었다.



당장 대만으로 떠나야 했다.

이거야말로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하늘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렇게 나는 죽기 전 마지막 1년을 대만에서 살기로 했다.

2020년 11월 초의 일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