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룸투어 in 대만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26

by 끼미


경쟁자들과 함께, 첫 번째 방


페북으로 연락해서 처음으로 방 보러 가기로 한 날. 오다 말다 하는 비를 맞으며 타이베이 옆에 붙어 있는 신베이(新北) 시로 향했다. 첫 번째 방은 어학당과 알바하는 식당에서 멀었지만 월세가 저렴해서 구경 삼아 가보기로 했다.


약속 장소인 복권 가게 앞에 도착하니 당황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방 보러 온 사람이 나 말고 더 있었다. 무려 세 명이나! 부동산 중개인이랑 단란하게 방 구경 다녔던 한국에서는 상상해 본 적 없던 일이었다. 대만 젊은이들은 이렇게 쉐하 방을 구하는구나. 문화 충격이었다.


경쟁자들과 함께 한 첫 번째 방 구경은 예상대로 구경으로 끝났다. 집 내부는 괜찮았지만 아파트 건물이 낡고 깨끗하지 않았다. 저렴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몇 달은 더 일할 식당에서 멀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경험 삼아 와 본 거였는데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 막상 해보니 별일 아니었다. 방 주인이 하는 말 대부분 알아듣고 용기 내서 질문도 했다. 방 주인이 중국어 잘한다고 칭찬도 해줬다. 신났다. 방은 못 구했지만 자신감은 얻은, 첫 번째 방 구경이었다.


경쟁자들과 함께 한 첫 번째 방 구경



대(大) 지진과 함께, 두 번째 방


"음, 이러다 길바닥에 나앉는 거 아니겠지..."


낡은 건물에서 빠져나와 대로변 쪽으로 걸어갔다. 첫 번째 방 구경에서 역시 가까운 게 최고라는 걸 깨달은 나는 알바하는 식당과 가까운 쉐하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두 번째 방은 식당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위치는 최고였지만 나머지는 별로였다. 볕이 잘 안 들어서 집 안이 어두컴컴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난장판이었다. 게다가 세탁기랑 건조기를 사용할 때마다 따로 돈을 내야 했다.


그래도 고민이 되긴 했다. 위치도 위치인 데다 같이 사는 사람들, 특히 대만 대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에서 지낸다면 그리도 원하는 대만 친구를 사귀게 될 확률이 높아 보였다. 방값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과연 단체 생활의 불편함과 추가 생활비 지불을 감내할 수 있을까? 10년 차 1인 가구이자 짠순이인 내가?


건너편의 야자수를 쳐다보며 고민하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헐, 뭐야...!"


뇌가 흔들렸다. 아니, 땅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머리 바로 위 육교에서 삐그덕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금방이라도 육교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몸이 휘청일 정도로 강한 흔들림이 수초 간 이어지다 멈췄다. 대만에 온 후 여러 번 지진을 겪었지만 이렇게 센 건 처음이었다. 이건 명백한 우주의 계시였다.


"역시 이 집은 아니야!"


두 번째 방 구경하고 나온지 몇 분만에 찾아온 지진



수다쟁이 할머니와 함께, 세 번째 방


두 번의 실패 후 귀국을 고민하던 시점, 세 번째 방이 '나타났다'. 알바하던 식당의 사장님께서 구해다 주신 것이다. 나의 이사 소식에 며칠 동안 나보다 더 열심히 페북 보시던 사장님이 강력 추천해 주신 방이었는데, 심지어 가난한 알바생을 위해 방값 흥정까지 해주셨다. 그래도 예산 오버이긴 했지만 사장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단 가보기로 했다. 결정적으로, 알바하는 식당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데다 타이베이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다안 공원역 바로 근처였다.


첫눈에 반한 세 번째 집 거실


세 번째 방, 아니 세 번째 '집'에 들어서자마자 속으로 외쳤다.


'여기다!'


꿈꾸던 집이었다. 대만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저런 데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전형적인 대만 가정집이었다. 거실에는 카펫이 깔려 있고 목재 가구들과 커다란 소파가 놓여 있었으며 벽에는 중화(中華)스러운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앞서 봤던 쉐어하우스보다 더 따뜻하고 더 정감 있고 더 다정한 분위기였다.


(어쩌면 내가 살게 될) 방도 마음에 들었다. 좁긴 했지만 푹신한 침대도 있고 옷장과 서랍장, 책상도 깔끔했으며 1인용 소파 의자도 있었다. 침대 옆 창문에 달려 있는 커튼과 갈색 벽돌 모양 시트지가 붙어 있는 벽이 포근한 느낌을 더해줬다. 다락방 같기도 한 이 방, 내 취향이었다.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의 방


역시나 마음에 드는 주방과 화장실, 다른 두 방까지 구경을 마친 후에 거실 소파에 앉았다. 내 오른쪽에는 페북에 이 집 글을 올린 젊은 남자, 왼쪽에는 이 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할머니는 젊은 남자에게 뭐라뭐라 잔소리를 했고 상대는 익숙하다는 듯 대충 대꾸했다. 친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 집에 대한 호감도가 더 상승했다.


할머니는 새로운 하메 후보인 나에게도 말을 거셨다. 젊을 때 한국 갔었는데 좋았다, 한국 김치 좋아해서 사 먹는다 등등 끊임없이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총알처럼 빠르게 쏟아지는 말에 살짝 넋이 나갔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이 할머니랑 살면 지루할 틈은 없겠다.


사람 냄새나는 집, 바로 내가 찾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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