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25
대만살이 5개월 차, 역대급 고비가 찾아왔다. 몇 달 동안 혼자 잘 살고 있던 쉐어하우스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위치가 타이베이 외곽이고 집주인도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방값이 저렴하고 혼자 사는 게 좋아서 한 달만 살려고 온 집에서 여태껏 지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더는 그럴 수 없게 됐다. 계약 연장이 안 된다고 했다가 다시 된다고 했던 집주인이 별안간 다른 사람 한 명이 이 집에 살러 온다고 통보한 것이다. 심지어 남.자.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도 그래도 계속 여기서 살까 고민했었다. 어차피 두 달 뒤에 어학당 수업 끝나면 타이베이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갈 계획이었다. 만약 이 쉐하에서 나간다면 단기로 살 방을 구해야 하는데, 6개월 미만의 단기 계약이 가능한 원룸과 쉐어하우스가 거의 없었다. 있어도 서울에서 살았던 원룸의 월세보다 많이 비쌌다. 더 큰 문제는 가격에 비해 방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 주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만 젊은이들이 괜히 외식을 많이 하는 게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단기 거주가 가능한 에어비앤비도 찾아봤지만 역시 가격이 너무했다.
‘하메가 남자여도 두 달만 버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방은 각자 쓰더라도 거실과 주방이 공용이니 아무래도 마음 편히 못 지낼 게 뻔했다. 안 될 일이었다. 아직 낯설고 어려운 대만에서 유일하게 집이 가장 마음 편한 곳이었으니까. 결국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설마 이 타이베이 바닥에 내 몸 뉘일 방 하나 없겠어?
남의 나라에서 둥지를 찾는 건 예상했던 대로 쉽지 않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대만에 사는 한국인들이 있는 네이버 카페에서 대만을 떠나는 유학생이나 워홀러가 올린 방을 물려받는 것이었다. 워홀 후기를 찾아봤을 땐 다들 그렇게 많이 구한다고 했지만, 내가 있던 시기에는 그런 글이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이라 대만에 남아 있는 한국인 자체가 별로 없었다. 망할 코로나!
또 하나의 방법은 '591'이라는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591은 우리나라의 직방처럼 주로 부동산 중개인들이 매물을 올리는 사이트였는데, 그만큼 방 자체는 많았지만 역시나 내가 원하는 저렴한 가격의 깔끔한 방은 거의 없었다. 가아끔 괜찮아 보이는 방이 있어도 부동산 중개인에게 문자나 전화로 직접 연락할 용기가 없는 나에겐 문자 그대로 그림 속의 떡이었다.
남의 떡 보며 군침만 흘리던 나에게도 희망이 있었으니,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던 '쉐어하우스'였다. 대만에서 난생 처음 쉐하 생활을 하며 하메들에게 소위 데인 후로 다시는 쉐하에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타이베이 원룸의 높은 가격은 대만 물정 모르는 한국인 워홀러를 비웃으며 그의 비루한 다짐을 픽 꺾어버렸다. 아무리 대만에서 전 재산 다 털고 가기로 했다지만 알바 월급이 40만 원인 워홀러에게 70만 원 넘는 돈 주고 그런 방에서 살기엔 아까웠다. 어차피 집에선 거의 잠만 자는데! 어쩔 수 없었다. 고통 받을 걸 알면서도 다시 한번 늪에 들어가보는 수밖에.
다행히 대만에는 깔끔하고 저렴한 원룸은 별로 없어도 적당한 가격의 쉐어하우스는 많았다. 오히려 쉐하가 (사진상으로는) 원룸보다 훠얼씬 깨끗하고 쾌적해 보였다. 대만, 특히 타이베이는 방값이 생활 수준 대비 턱없이 비싸서 그나마 저렴한 쉐하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91 사이트에는 쉐하 매물은 잘 올라오지 않아서 다른 사이트를 이용해야 했는데, 그 사이트는 뜬금없게도 '페이스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스타에 밀려 한물 간 페북이 대만에서는 쉐하계의 직방 노릇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페북 접속이 10년 전이었던 한국인에겐 생소하고 신기한 문화였다.
더 신기했던 건, 페북으로 쉐하 구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았다는 점이다. 타이베이만 해도 멤버 수가 무려 60만 명이 넘었다! 쉐하에 사는,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놀라웠다.
페북 페이지에는 매일 수십 개의 새 글이 올라왔다. 각 글마다 월세와 계약 기간, 구비된 가구, 현재 살고 있는 하메들 등 쉐어하우스에 대한 정보가 자세하게 적혀 있었고 사진들도 여러 장 첨부되어 있었다. 591 사이트보다 더 사실적이고 더 구체적이었다. 어떤 글에는 자기들이 원하는 하우스메이트의 조건도 명시되어 있었는데 '담배 안 피고 직장인이고 깔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같은 것들이었다. 흡사 소개팅 상대 찾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조건이 괜찮아 보이는 글에는 게시한지 얼마 안 돼서 계약 완료됐다는 댓글이 달렸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같았다. 그 말인 즉슨, 방값이 저렴하고 상태 좋은 쉐하에 들어가려면 페북을 수시로 들락날락거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평소 SNS를 잘 안 하는 사람에게 귀찮고 피곤한 일이었다. 차라리 부동산 가서 하루 발품 파는 게 편했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길바닥에서 노숙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하게 새로고침해야지. 그렇게 한동안 틈만 나면 눈에 불 켜고 페북을 들여다 보는 '새 둥지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정말 페북으로 새 둥지를 찾을 수 있을까?
대만 사람도 아니고 중국어도 서툰 내가...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