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23
옛말에 그런 말이 있다. 먹을 거 잘 챙겨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 우리 사장님이 바로 그 '좋은 사람'이셨다. 그 사실은 출근 첫날부터 느꼈는데, 직접 담그신 백향과(百香果, 패션후르츠) 청으로 시원 달콤한 음료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게 뭐 별거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식당 알바 짬밥이 내게 속삭였다. '이 사장님 좋은 사장님이야!'라고. 역시나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무거운 몸뚱이를 질질 끌고 알바를 가면 어김없이 맛있는 간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친 한국인 알바생을 특히 힘나게 해 준 간식은 한국엔 잘 안 파는, 그러니까 '대만스러운' 간식들이었다.
안에 짭짤한 계란 노른자가 들어있는 일종의 만쥬인 딴황수(蛋黄酥), 대만 아침 시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슈크림 들어간 도라야끼(사실 일본 음식이지만 한국 시장에는 없으니까..), 우리나라 붕어빵과 비슷한 홍또우삥(紅豆餅), 그리고 한국에선 먹기 힘든 다양한 열대 과일들까지. 사장님 덕분에 주방 구석에서도 대만의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혼자서도 대만 여기저기 다니며 맛있는 간식들을 사 먹었지만, 알바하는 동안 사장님이 챙겨주셨던 이 간식들은 유달리 따뜻하고 다정한 맛으로 혀끝에 각인되었다.
어떤 간식들은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막상 떠나오니 그리워진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즉 '한국스러운' 간식들이 그랬다.
하루는 사장님이 한국에서 온 귀한 배를 깎아 주셨는데, 그 한 조각은 이제껏 평생 먹어본 수 백 개의 배 중에서 제일 달콤했었다. 대만 배도 있긴 하지만 한국 배에 비하면 달큰함과 시원함이 부족해서 아쉬웠었다. 그러던 차에 한국 배를 먹으니 대만의 지긋지긋한 더위에 지쳐 있던 몸이 단번에 시원해졌다. 거기에다, 우리나라에서 대만 망고가 엄청 비싸듯이 대만에서 파는 한국 배도 엄청나게 고가였다. 이 한 조각이 도대체 얼마인지 생각하면, 정말로 눈물 나게 맛있는 배였다.
배 한 조각에 눈가가 찡해졌던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배를 깎아서 건네주시는 사장님의 얼굴에 엄마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취생인 딸이 배처럼 비싼 과일은 못 사 먹는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엄마. 그런 엄마는 배가 나오는 계절이면 오래간만에 집 내려온 딸을 위해 커다란 배를 깎아줬었다. 배부르다는 데도 하나만 더 먹으라고 내 손에 배를 쥐어줬던 엄마. 사장님이 주신 배를 먹는데 엄마랑 식탁에 앉아 배를 나눠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눴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엄마랑 같은 집에서 못 살겠다고 대만에 와 놓고선, 참 웃긴 딸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은 한국인 알바생을 울린 또 하나의 간식이 있었으니, 바로 애호박전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날, 빗소리 들으며 출근하는데 이 날따라 유독 막걸리의 구수함과 찌짐의 고소함이 생각났다. 특히 엄마가 해준 찌짐이 너무 먹고 싶어지는, 그런 빗소리였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사장님께서 서프라이즈로 찌짐을 구워 주셨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호박전으로! 마침 찌짐 먹고 싶었다는 나의 말에 독심술을 배우신 게 틀림없는 사장님께서는 막걸리 대신 사이다를 따라주시며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솔직히 엄마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었던 사장님 표 애호박전은 요즘도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난다. 사장님 눈치 보느라 조금밖에 못 먹었는데 그냥 많이 먹을 걸 하는 후회도 함께.
어학당 수업에 중국어 공부, 식당 알바까지 하느라 피곤했던 그 시절. 무엇보다 외로움과 향수병과의 사투로 점점 지쳐 가던 나에게 사장님이 주신 간식은 삼계탕 한 그릇이나 다름없는 보양식이었다. 사장님께선 본인이 산 김에 또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김에 나눠주신 거겠지만, 무심한 듯 건네주신 그 한입이 하루를 버티게 해 주었고 그렇게 대만에서의 맛있는 하루하루가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