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산부인과에서 몸과 마음을 치료받다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22

by 끼미


한국에서도 안 가본 산부인과를 대만에서 처음 갔다. 생리가 멈췄기 때문이다. 대만에 온 이후 한 번도 안 했으니 어느덧 5개월째였다. 심각한 일이었다. 20년간 상당히 건강했던 나의 호르몬 시스템이 완전히 고장 났다는 신호였다. 더 심각한 건, 그걸 알면서도 산부인과 방문을 미뤄왔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자그마치 세 가지나 있었다.


첫 번째, 자연 회복을 기다렸다. 생리가 멈춘 건 보나 마나 스트레스 때문일 테니, 정신 놓고 살면 자연스럽게 나아지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설령 그렇다 한들 이미 망가진 몸이 돌아올 리는 없었다. 참 얼빠진 희망회로였다.


두 번째, 생리를 안 하니 솔직히 너무 좋았다. 한 달에 한 번 나를 찾아와 일주일을 내리 괴롭히던 깡패 녀석이 사라졌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이곳 대만은 모든 게 새로운 신(新) 세계였다. 즉, 생리가 멈춘 덕분에 다섯 달 동안 자유로운 몸으로 신세계를 탐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미련했던 세 번째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대만에서 나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외국인이니 만약 초음파 검사라도 한다면 어마어마한 병원비가 나올 거라 추측했다. 한국에서 여행자 보험을 들긴 했지만 산부인과 진찰도 보험 적용이 되는지, 어떻게 청구하는지, 청구하면 정말 다 환급해 주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솔직히 생리 안 하는 게 편하기도 하고 찾아보는 건 귀찮으니 제대로 알아볼 마음도 없었다. 지금 보면 한숨만 나오는 핑계를 대며 병원 방문을 미뤘었다.


그렇지만 거의 반년이 되어가니 더는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대만을 탐험하기 전에 천국으로의 탐험부터 떠날 판이었다. 드디어 병원 갈 마음을 먹고 찾아보니 마침 학교 근처에 한국어 잘하는 여자 의사 선생님이 계신 산부인과가 있다고 했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더 다행스러웠던 건, 외국인이어도 진찰비가 비싸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여행자 보험 청구하면 전부 환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애초에 보험 들었던 게 이럴 경우를 대비한 거였지만, 타국 생활이 처음이었던 자에겐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았다.




병원 가기 전에 전화부터 해봤다. 중국어로 전화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냥 바로 갈까 싶었지만, 그 선생님이 안 계시면 당황스러울 테니 안전하게 확인하기로 했다. 또한 병원에 전화하는 건 나에게 도전이기도 했다. 중국어로 말하는 게 긴장되지만 피하지 않고 부딪쳐 보겠다는, 쪼그러든 내 간을 더 키우기 위한 도전.


바들바들 떨면서 통화 연결음을 듣고 있으니 곧 간호사로 추정되는 분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무슨 병원입니다, 라고 하는 듯한 중국어가 들려왔고, 그분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미리 준비해 둔 질문을 던졌다. 한국인인데 ㅇㅇㅇ 선생님한테 진찰받을 수 있는지, 예약도 가능한지 물었다. 다행히 그 선생님은 계셨고 예약은 불가능했다. 역시 세상엔 좋은 소식만 있을 순 없었다.



얼마가 나올지 모를 병원비를 대비해서 거액의 현금과 여권을 챙겨 들고 병원에 갔다. 병원 내부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진료 접수도 어렵지 않았다. 접수증에 신상 정보를 쓰고 어느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받을지 선택하면 됐다. 내가 한국인임을 안 간호사분들도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다행이었다.


접수를 마치고 대기실로 갔다. 어디 앉을지 고민하다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지금 그 선생님께 진료받는 사람은 3번, 내가 받은 번호는 21번. 산부인과는 처음이라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중국어 공부라도 할까 했지만 머리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혹시 자궁경부암이나 그런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글자 하나하나 다 튕겨내 버렸으니까. 그렇게 무거운 한 시간이 흘렀다.




이러다 잠들겠다 싶던 참에, 드디어 21번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의사 선생님을 만날 영광의 기회가.


살짝 땀난 손을 바지에 슥슥 닦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 모습도 한국의 여느 병원과 비슷해서 금방 적응됐다. 게다가 의사 선생님은 내 생각보다 한국어를 엄청 잘하셨는데, 과장 좀 보태서 진짜 한국 병원으로 순간이동한 기분이었다. 덕분에 편안하게 진찰받을 수 있었다. 괜히 쫄았다 싶었다.


선생님께서는 내 자궁 상태만 봐주시지 않았다. 내 마음 상태도 함께 살펴주셨다. 대만에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나에게 본인도 한국에서 혼자 살아봐서 얼마나 힘든지 이해한다며, 그래도 여기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즐겁게 지내라며 다정하게 위로해 주셨다. 뿐만 아니었다. 아직 10월이긴 하지만 대만의 겨울은 엄청 춥고 습하니 전기장판 있으면 자기 전에 미리 틀어서 이불의 습기를 말리는 게 좋다고 알려주셨다. 선생님의 꿀팁 덕분에 보일러 없는 대만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 내가 만난 선생님은 단순히 '한국어 잘하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아니었다. '외로운 한국인 워홀러의 마음을 다정하게 위로해 주는 상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과의 이 짧은 만남만으로도 모든 병이 낫는 기분이었다.




살짝 울컥했던 진료를 마치고 생리 유도제를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한국 산부인과를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대만의 산부인과는 병원에서 바로 약을 받을 수 있었다. 약국에 안 가도 되니 편했다. 약 봉투도 종이가 아니라 지퍼백이었다. 역시 대만은 신세계가 맞았다.


약 봉투 들고 저녁 먹으러 가는 길, 영혼이 산뜻해진 기분이었다. 예상대로 초음파 검사도 했는데 다행히 별 문제없었다. 다섯 달 동안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그러면서도 방치해 뒀던 문제가 사라지니 마음이 날아오를 듯 홀가분해졌다.


찾아봤던 대로 병원비도 비싸지 않았다. 비보험이지만 초음파 검사비, 약값까지 다 합쳐도 1,140위안, 한화로 5만 원도 채 안 됐다. 있는 현금 몽땅 뽑아갔던 게 머쓱해졌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어플로 바로 보험 청구했더니 며칠 뒤에 환급도 받았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데, 난 왜 그렇게나 지레 겁먹어서 미뤘던 건지. 정말 별거 아닌데.


병원에 다녀온지 일주일 뒤, 다섯 달만에 생리를 했다. 눈물나게 기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생리를 날 괴롭히는 깡패 녀석이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대신 내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로 여기겠다고.


keyword
끼미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247
이전 21화알바 가기 전 5시간을 보내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