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월급은 40만 원이지만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24

by 끼미

두둑한 현금, 든든한 마음


소중한 알바 월급들


매달 마지막 날, 지금 떠올려도 미소가 나오는 그날은 한 달 동안 무거운 뚝배기 서빙하느라 뭉친 근육이 싸악 풀리는, 알바 월급날이었다. 모든 월급은 좋지만 대만에서 받았던 알바 월급은 유달리 더 행복했다. 두툼~한 현금으로 받았으니까! 두툼하다고 해봤자 40만 원 언저리였지만, 현금으로 받는 40만 원은 마치 400만 원처럼 느껴졌다. 음, 너무 과장인가? 그만큼 통장의 숫자로만 보는 게 아닌, 직접 내 손으로 만져지는 월급은 더 특별하고 더 소중했다.


평일 저녁 3시간 반 동안 뚝배기 나르고 컵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받는 월급. 잘~하면 40만 원 조금 넘었던 그 돈은 방값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도 뿌듯했다. 중국어 잘 못 하는 한국인이 대만이라는 낯선 곳에서 자기 손으로 돈을 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지퍼백에 든 (나름) 두둑한 현금을 만지작거리며 퇴근하는 밤, 그 밤은 한 달에 딱 한 번 있는, 나 자신을 마음껏 칭찬해 줘도 되는 시간이었다. 이번 달도 잘 버텼다고,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고,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쓰담쓰담해 줘도 되는 그런 밤이었다.




번거로움이 준 선물


현금으로 받는 월급은 좋긴 했지만 살짝 번거로웠다. 간밤에 도둑 고양이가 와서 내 보물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어딘가에 숨겨둬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의 보물 창고가 있었으니, 우체국 통장이었다. 대만의 우체국은 나처럼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외국인에게도 통장 개설을 허락해 줬다. 일반 은행에서는 대만 내 직장에서 일하거나 대만 사람과 결혼한 사람만 가능했는데, 우체국은 국가 기관이라 그런지 아량이 더 넓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우체국 덕분에 5만 원짜리 지폐 하나만 들고 다녀도 잃어버릴까 불안한 한국인은 마음 편히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다.


더운 날 땀 흘리며 ATM기를 찾아가는 건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사장님이 월급을 한국 계좌로 쏴주셨더라면 대만 우체국에서는 통장 하나 만드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린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남의 나라 우체국 ATM 화면이 촌스럽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가, 대만이라는 타국에서 중국어로 통장을 만들고 ATM기를 쓰면서 잘 살아남았다는, 능력은 없어도 생존력은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돈으로도 사지 못하는 그 귀한 보물은 월급을 현금으로 받지 않았다면, 그래서 통장을 만들 필요도 ATM기를 쓸 이유도 없었다면 얻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대만 우체국의 ATM기



월급도 받았는데 사치 좀 부려볼까


드디어 첫 월급 받고 룰루랄라 신나 있던 어느 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뭐 먹으러 가지?'


쎄빠지게 고생해서 월급 받았으니 비싸고 맛있는 걸 먹어줘야 했다. 문제는, 평소에 돈 아낀답시고 저렴한 것만 먹다 보니 그 '비싸고 맛있는' 게 뭔지 감이 안 온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역시 최애 메뉴인 훠궈를 먹을까 했지만 좀 더 고민하기로 했다. '비싸고 맛있는' 앞에 조건 하나가 더 붙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없는'. 평생 기억될, 대만에서의 첫 월급 기념인 만큼 메뉴 선정에 신중해야 했다.


통장에 월급을 넣어두고도 며칠 더 고민한 끝에 정한 셀프 축하 메뉴는, '鐵板燒', '철판 요리'였다. 대만에는 일본의 영향 때문인지 철판 요릿집이 많았는데, 가격도 비싸지 않고 맛도 괜찮대서 나중에 가봐야지 하고 마음속에 담아뒀던 참이었다. 사실 대만 친구들 사귀면 같이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월급 받고 보니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가고 싶으면 가는 거다. 혼자 가면 뭐 어때!


첫 월급 기념으로 사 먹은 철판 요리


달궈진 철판만큼 무덥던 어느 날 점심, 어학당 수업 끝나고 곧장 철판 요릿집으로 달려갔다. 철판 요리는 처음인 데다 혼자라 잔뜩 긴장한 채로. 그리고 역시나, 전혀 쫄 일이 아니었다. 철판 요릿집은 오히려 혼밥에 최적이었다. 커다란 철판을 빙 둘러싸고 바 형식으로 자리가 되어 있어서 혼자여도 전혀 눈치 볼 게 없었다.


기다리느라 머쓱할 틈도 없었다. 실시간으로 채소와 고기를 볶는 직원분의 열정적인 손놀림을 구경하다 보면, 철판에서 전해지는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다 보면, 어느새 내 앞에 주문한 철판 요리가 놓여 있었다. 불향과 신선함 가득한 소고기, 숙주, 공심채의 삼중주는 살찔까 봐 흰쌀밥 잘 안 먹는 나도 밥 두 공기를 먹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몇 달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만난 철판 요리를 먹으며 콧잔등이 시큰거렸던 건 매운맛으로 주문해서 잔뜩 들어있던 고추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 푸짐하고 맛있는 철판 요리 그리고 무한정 갖다 먹을 수 있는 쌀밥과 국이 겨우 220위안, 당시 환율로 약 9,500원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이 철판 요리를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즐길 수 있다니, 그야말로 엄청난 사치였다. 이러니 대만을 사랑할 수밖에!



대만에서 받았던 월급 40만 원.

나에겐 몇 자리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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