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2#29
알바하고 이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날들, 문득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어학당 마지막 수업이었다. 일등으로 도착해 텅 빈 교실을 둘러보는 마음이 괜스레 복잡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여러모로 아쉬운 어학당 생활이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었다. 6월로 예정되어 있던 수업이 코로나 사태로 연기되면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기대감이 무럭무럭 자라났었다. 지옥 같던 여름을 견뎌내고 맞이한 9월, 드디어 새 워홀 라이프가 펼쳐지나 했지만 어학당 생활은 나의 환상을 산산이 깨뜨렸다.
중국어 공부는 뜻대로 안 됐고, 같은 반 친구인 통쉐(同學)들은 각자의 생활로 바빴고, 학교에서 연결해 준 언어교환 친구와도 두 번의 만남을 끝으로 연락이 끊어졌다. 인터넷 후기에서 봤던 '대만 워홀의 꽃'은 나의 밭에선 끝내 개화하지 못했다. 기대라는 놈은 실망이라는 이름의 독(毒)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 가뜩이나 우울한 사람을 더 깊은 바다로 가라앉게 하는 아주 치명적인 독을.
그렇다고 어학당 수업이 고통스럽기만 한 건 당연히 아니었다. 수업을 듣고 통쉐들을 만나는 시간 자체는 즐거웠다. 보통 선생님의 설명으로 진행되던 수업 중에 학생들의 발표 과제가 두 번 있었는데, 나에겐 어학당 수업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이 발표였다. 터키, 콜롬비아, 미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통쉐들이 긴장 섞인 중국어로 모국의 명절과 유명인을 소개하는 모습은 나이와 성별을 떠나 정말 귀여웠다.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이 기억은 살면서 두고두고 떠올리며 미소 지을 장면으로 해마에 저장되었다. 통쉐들도 한국의 동지(冬至)에 대해 발표했던 나를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반 통쉐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종종 맛있는 간식을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터키인 통쉐 덕분에 말로만 들었던 터키쉬 딜라이트라는 터키의 전통 디저트를 처음으로 먹어봤고, 한국인 통쉐가 직접 만든 빼빼로 덕분에 덜 외로웠으며, 음식 얘기하면 배고플 거라며 초코맛 과자를 나눠준 일본인 통쉐의 세심함에 따뜻한 하루를 보냈었다. 먹을 거 주면 착한 사람이라는 조상님들의 말은 대만에서도 통했다.
학기 중에는 다들 바빴지만 종강 즈음 해서는 통쉐들이랑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일본인 통쉐가 한국 떡볶이를 좋아한다길래 다른 한국인 통쉐들과 함께 '두끼'에 갔었다. 대만에서 '두끼'에 간다니, 혼자였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통쉐들의 제안 덕분에 대만 사람들은 떡볶이를 마치 훠궈처럼 생각하고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들을 넣어 먹는다는 걸 알 수 있었고, 한국에서 '두끼'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어학당 수업이 다 끝나고 며칠 뒤에는 선생님과 같이 대만식 아침 식사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종강이 아쉬워 급 결성된 모임이었다. 우리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유명한 아침 식사 가게인 '푸항또우장(阜杭豆漿)'에서 만났는데, 코로나로 외국인 여행객들이 없는데도 어찌나 현지인 손님들이 많던지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만약 혼자였다면 '안 먹고 말지' 하고 포기했겠지만 선생님 그리고 통쉐들과 함께 그동안 쌓아뒀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다림도 즐거웠다. 그리고 이날 먹었던 또우장(豆漿)과 샤오삥(燒餅)은 대만에서 먹었던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유일하게 혼자 먹지 않았던, 그래서 더 든든했던 아침 식사였다.
아침 식사 모임은 다음 모임으로 이어졌다. 찐 최종이었던 이 만남은 알고 보니 외교관이었던 터키인 통쉐 부부의 사택에서 이루어졌다. 같이 만나기로 했던 선생님은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덕분에 터키인 통쉐가 준비한 생전 처음 맛보는 터키 요리들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창밖의 101 타워와 타이베이 시내를 보며 먹었던 이국적인 음식들은 여태껏 살면서 먹어봤던 모든 음식들 중에 가히 최고였다.
상상 이상으로 근사한 집을 둘러보며 함께 갔던 통쉐들과 호들갑 떨었던 순간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 들뜨고 신나는 마음을 어설픈 중국어의 한계로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하고 서로 눈빛으로 나눴던 통쉐들. 찐 마지막 만남을 함께 해서 그런지 더 보고 싶고 더 그립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기대와 다른 어학당 생활이 나의 우울감을 더 짙게 만들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결과를 알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기꺼이 어학당에 등록할 것이다. 소중한 백만 원을 내고 스스로 고통받는다 할지라도, 그래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 고통이야말로 오로지 이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었던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질릴 정도로 중국어에 집착해 보고, 통쉐들의 중국어를 들으며 답답해하고, 다들 바쁜데 나만 혼자라며 지독하게 고독해보고, 그런 아픔을 몸소 겪었기에 깨달았다. 모든 고통은 나의 집착과 기대가 만드는 것이고, 모든 고통은 지나고 나면 '어느 바보의 에피소드'로 변한다는 것. 과도한 환상 속에서 무너져 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었다.
그렇다. 어학당 수업은 죄가 없었다. 문제는 나였다. 언제나처럼.
그때의 나는 뭘 그렇게 기대하고 무엇에 그리도 실망했을까? 어학당이 단순히 중국어를 배우러 가는, 친구를 사귀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걸, 왜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달은 걸까?
같은 반 통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같이 점심을 먹을 이유도, 반드시 친해질 필요도 없다. 그저 수업 시간에 함께 배우고 함께 얘기하고 함께 웃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만이라는 이 낯선 곳에서 전 세계에서 온 이들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니까.
그래서,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고통스럽더라도 어학당을 다시 다니고 싶다. 도통 늘지 않는 중국어 공부에 스트레스받아도, 그래도 다정한 통쉐들과 함께 하고 싶다. 백만 원으로 그 기적을 다시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