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마지막이 된, 우리의 타이중 여행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02

by 끼미

대만에서 알게 된 한국인 동생 J와 떠난 어학당 종강 기념 타이중 여행.

이번 여행은 타이난에 이어 J와 함께 한 두 번째 여행이었다.


솔직히, 많이 걱정됐다.

타이난 여행에서의 (나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름대로 반성했지만, 그래도 불안했고 의심스러웠다.

과연 나는 고집 세고 이기적인 나를 바꿀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여행은 J와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2박 3일의 여행은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우리 둘다 타이베이에 살고 있지만 타이중까지 따로 갔다. J는 오전 10시쯤 출발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최대한 빨리 가고 싶었다. J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여행을 선호했다. 결국 나 혼자 아침 7시 50분 버스를 타고 먼저 타이중으로 출발했다.


타이중에 도착한 나는 J를 기다리며 기차역 뒤편 아침 식사 가게에서 빠오즈(왕만두)와 또우장(두유)을 먹었다. 점심으로 같이 먹을 반미 샌드위치도 포장했다. 르웨탄 가는 버스 시간과 정거장 위치도 미리 확인해 뒀다. 나의 사전 준비에 고맙다고 말하는 J를 보며 역시 일찍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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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으로 먹은 빠오즈(왕만두)와 또우장(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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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중 호수를 보며 먹은 반미 샌드위치


보트를 타고 르웨탄을 달리며 자유를 만끽하고 나니 어느덧 저녁. 호숫가에서 마법처럼 물든 주황빛 노을을 감상한 뒤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이 지역의 원주민 음식과 주말 여행 온 인파들로 가득한 골목. J와 나는 르웨탄 최고의 번화가를 돌고 또 돌았다. 뭘 먹을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MBTI의 극 J를 자랑하는 나는 당연히 미리 찾아둔 식당들이 있었고 속으로 1순위도 찜해두었었다. 하지만 차마 J에게 '여기 가자!'라고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당시엔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떠넘기기였던 것 같다. 혹시나 내가 고른 식당이 맛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


결국 내가 가고 싶었던 식당에 갔다. 배고픔에 지친 J가 연유 바른 떡꼬치 하나를 사 먹은 뒤였다. 짭짤한 삼겹살 야채 볶음, 각종 버섯들이 들어간 국, 이름 모를 생선 조림으로 차려진 한상.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단체 손님들 사이에서 나와 J는 조용히 밥을 먹었다. 어차피 버섯국이 되게 향긋했다는 것 말곤 기억에 남지 않을 거라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럼 좀 더 빨리 선택했을 텐데, 그럼 좀 더 맛있었을 텐데. 역시 내가 한 건 배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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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웨탄 번화가의 저녁과 연유 떡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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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 음식들과 식당 분위기


첫째날의 교훈을 되새기며 둘째날에는 J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르웨탄의 명물인 케이블카 타러 가는 길에 또우간(건두부)으로 만든 원주민 음식을 꼭 먹어야겠다고 고집 부리긴 했지만, 타이중 시내로 넘어가서는 J의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타이중 여행 경험이 있는 나에겐 대부분 이미 먹어본 것, 이미 가본 곳이었다. 하지만 타이중이 처음인 J와 함께 하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얇은 생 소고기가 올라간 우육면도, 화려함의 극치인 궁원안과의 아이스크림도, 시끌벅적한 펑지아 야시장도, 모두 처음 경험하는 것 같았다. 역시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도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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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소고기 우육면과 궁원안과의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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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지아 야시장과 하천변의 저녁


그러나 사람은 자는 동안 모두 잊는다고 했던가. 셋째날이 되자 내 고집이 또 다시 자기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숙소 퇴실 후 점심으로 먹기로 한 훠궈 가게 오픈 전까지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J가 뭘 원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가고 싶다고 했던 심계신촌(審計新村)이라는 곳을 원하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착한 동생인 J는 "요즘 핫한 곳은 가봐야 해!"라는 나를 따라 같이 가주었지만 확실히 지쳐 보였다.


눈치 없는 나는 그런 J를 데리고 구석구석 들쑤시고 다니고 인증 사진도 부탁했다. 그러니 훠궈 집에서 J가 별 말이 없었던 게 당연했다. 조용히 훠궈를 먹는 J를 보며 깨달았다. 내가 또 어리석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는 사실을. 그래서인지 전날 먹고 너무 맛있어서 후식으로 또 먹으러 간 빙수에서 어제의 그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시원함도, 달콤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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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별거 없었던 심계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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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와 타로볼 빙수


결국, 우리는 또 헤어졌다. 타이난 여행의 결말이 타이중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원래는 저녁 버스를 타고 같이 타이베이로 돌아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버스 타기 전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게 달랐다. J는 동해대학교에 가고 싶어했지만 이미 가본 적 있는 나는 다른 곳을 원했다. 끝내 우리는 남은 여행을 각자 즐기고 귀가도 알아서 하기로 했다. 그렇게 따로 시작한 여행은 따로 끝났다.


그렇다고 J와 헤어진 후에 거창한 뭔가를 한 건 아니었다. 타이중의 명물이라는 전통 과자를 사고 벽화가 그려져 있다는 골목을 구경하고 해진 저녁 거리를 배회했던 게 전부다. 사진을 봐야 겨우 기억날 만큼 재미 없고 무료한 시간이었다.




당연히 함께 웃고 떠들고 즐기고 신나는 순간도 (아마도)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지막 여행을 떠올리면 혀끝에서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고집 센 데다 쪼잔하기까지 한 내가 여행 경비 정산도 쫌스럽게 했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 얼마 안 하는 돈, 몇 살 더 먹은 내가 좀 더 내면 됐는데 뭐하러 그렇게까지 했었는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미안하고 아쉬운, J와 함께 한 마지막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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