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만 친구가 집으로 초대했다!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04

by 끼미


「롱롱~ 우리 집 놀러 올래요?」


나의 유일한 대만 친구, 도리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얼마 전 퇴사한 도리씨는 나처럼 평일 낮에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심심하다며 동지인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대만 친구 집에 놀러 간다니!

드디어 나도 <상견니(想見你)> 주인공들처럼 친구 집에서 같이 대만 음식 먹고 노는 거야? 우육면이나 루러우판(魯肉飯, 간장돼지고기 덮밥) 이런 거 먹으면서?


「우리 라면 먹어요~」


그래, 친구 집에서 놀 땐 역시 라면이지!




도리씨가 준비한 한국 음식들


“어서 오세요, 롱롱~”

"실례합니다, 도리씨~"


땡그란 안경을 껴서 더 귀여워진 도리씨가 활짝 웃으며 반겨줬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서 많이 맡아본, 맛있는 냄새가 났다. 프라이팬에서 스팸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다.


라면 먹자더니 웬 스팸인가 싶어 도리씨에게 물어보니 한쥐(韓劇, 한국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스팸 먹는 걸 봤는데 자기는 한 번도 안 먹어봐서 궁금했단다. 대만 사람들은 스팸을 안 먹는다는 말을 듣고 지금까지 수백 번 드나들었던 대만 슈퍼를 머릿속으로 떠올려 봤다. 그러고 보니 소세지는 많이 봤어도 스팸 같은 통조림햄을 본 적이 없었다. 와, 여태 못 알아챘다니!


난생처음 스팸을 구워보는 도리씨는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라며 나에게 SOS 요청을 보냈다. 젓가락을 넘겨받은 내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팸을 하나하나 착착 뒤집자 도리씨가 “우와, 멋있어요!” 하고 감탄했다. 고든 램지가 된 기분이었다. 도리씨가 이렇게나 설레하는 걸 보니 반찬 없을 때 먹는 거라 생각했던 스팸이 한우 스테이크로 보였다.


내가 스팸을 굽는 동안 도리씨는 옆에서 라면을 끓였다. 도리씨가 준비한 라면은 '김치 신라면'. 한국에서 본 적 없는 라면이었다. 한국 라면을 좋아한다는 도리씨가 스팸보다는 익숙하게 라면 끓이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코끝이 찡해졌다. 대만 친구 사귀고 싶다며 엉엉 울었던 내게도 이런 날이! 친구가 끓이는 게 우육면이 아니라 신라면이라서 더 꿈 같았다.




대만 친구 집에서 만난 ‘한국인의 밥상’


“롱롱~ 얼른 앉으세요~”


진갈색의 직사각형 나무 식탁을 사이에 두고 도리씨와 마주 앉았다. 아담하고 아늑한 도리씨의 원룸. 내 자리를 기준으로 왼편에는 환한 햇볕이 드는 침대, 오른편에는 작지만 있을 거 다 있는 부엌과 현관이 있었다. 크기도, 배치도 서울에서 살았던 원룸들과 비슷했다. 대학교 친구 자취방에 놀러 온 듯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도 여기가 서울인지 타이베이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냄비째 놓여 있는 라면, 도리씨가 인터넷에서 샀다던 딱 잘 익은 김치 그리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스팸. 화룡점정으로 쇠젓가락까지!(대만에서는 주로 나무젓가락을 쓴다). 너무나도 친숙한 ‘한국인의 밥상’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카이똥!(開動, 먹읍시다!)”


도리씨의 젓가락은 역시나 스팸부터 집어 들었다. 인생 첫 스팸을 영접한 도리씨는 “맛있어요!”라며 흡족하게 웃었다. 내가 구운 스팸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나까지 기뻤다. 도리씨가 산 걸 구웠을 뿐이지만. 도리씨가 끓여준 라면도 두말할 것 없이 맛있었다. 여름날 한바탕 물놀이 후에 먹는 라면만큼, 아니 그보다 몇 배는 더! 라면은 역시 나눠먹을 때 더 맛있는 법이었다.




도리씨와 함께한 대만식 티타임


한국스러운 식사와 잠깐의 룸투어까지 마친 우리는 대만식 티타임을 가졌다. 여느 대만 사람들처럼 차(茶)를 사랑하는 도리씨는 찬장에 있던 다구를 꺼내 근사한 한상을 차려냈다. 대만에선 집집마다 다구 하나씩 갖고 있다던 카더라가 사실이었다. 거기에다 도리씨가 꺼낸 차가 도리씨 삼촌의 차 가게에서 왔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와, 여기 완전 대만이에요!”

“하하, 맛있게 드세요 롱롱~“


귀여운 다구로 우려낸 차는 나를 집으로 초대해준 도리씨의 마음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말린 매실은 새콤 달콤한 맛이 차와 잘 어울렸는데, 대만 사람들이 티푸드로 즐겨 먹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사간 조각 케익들은 그냥 저냥한 맛이었지만, 우리의 티타임에 일조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 티타임은 집에서 차를 자주 마시는 도리씨에게는 내가 스팸을 구워먹는 것처럼이나 늘상 있는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구부터 티푸드까지 모든 게 처음이라서, 특히 대만 친구 집이라는 장소였기에 더 설렜던 시간이었다.




이날 도리씨 집에서 반나절을 머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도리씨와 만날 때마다 늘 했던 말들을 주고받았을 거다. 앞으로 뭐 하고 살지 모르겠다라거나 남자친구 생기면 좋겠다 같은, 매우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


역설적이게도 그 평범함 덕분에 이 날은 내 기억 속에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스팸을 볼 때마다, 라면을 먹을 때마다, 차를 마실 때마다 도리씨 집으로 돌아갈 테니까. 대만에서 돌아온 후 4년간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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