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동쪽 끝, 최동단 탐험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06

by 끼미


신베이 바다 정복의 두 번째 장소는 대만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최동단(最東點)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독도 같은 곳으로(섬은 아니다), 타이베이에서 시내버스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대만의 동쪽 끝, 이름만 들어도 설렜다. 아직 독도는 못 가봤지만 여기는 가봐야지! 근처에 이쁜 등대도 있다던데, 오늘 카톡 프사 좀 바꿔볼까?!


그렇게 구(舊) 지리 선생님은 아침 일찍 대만 정복을 위한 탐험길에 올랐다.




대만의 동쪽을 지키는 하얀 등대

등대 올라가는 길

856번 버스를 타고 달려 오늘의 목적지, 싼띠아오쟈오 등대(三貂角 燈塔)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오른편에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지는 길과 천문대처럼 생긴 둥근 조형물이 보였다. 길가에 핀 갈대를 감상하며 절반 정도 올라갔을 때, 어느 가족을 마주쳤다. 캡모자에 패딩 잠바 입은 추레한 나와 달리 멋들어진 겨울 코트를 차려입은 가족. 즐겁게 웃으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아, 부러워라.


삼각대만 있으면 혼자라도 괜찮아

촬영에 방해되지 않도록 옆에서 기다렸다가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가족을 확인한 뒤 가방에서 삼각대를 꺼냈다. 찍어줄 사람은 없지만 나한텐 삼각대가 있지! 바다가 잘 나오게 각도를 맞춘 다음 몇 계단 아래로 내려가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첫 결과물을 확인해 보니 마스크 때문에 답답해 보였다. 어차피 아무도 없으니 마스크를 벗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저 바다가 내꺼라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누가 앞에서 “치즈~”를 외치는 듯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좋아, 이제 좀 행복해 보이네!


대만의 동쪽을 지키는 하얀 등대

계단을 계속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었다.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대만 국기 뒤로 하얀 등대가 서 있었다. 정문에 붙어있는 현판에는 고풍스러운 글씨로 三貂角燈塔라고 적혀 있고, 주소명 표지판에는 등대가 그려져 있었다.


아쉽게도 등대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등대 말고는 달리 구경할 게 있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등대 하나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대만의 동쪽을 지키는 이 등대에 왔다는 것, 그걸로 충분했다.



대만의 끝에서 따봉을 외치다

최동단으로 가는 산책로에서

등대 주변을 둘러보다 산책로를 발견했다. 입구에 極東觀景臺(극동관경대)라고 적혀 있는 산책로는 바다로 연결되어 있었다. 오늘의 찐 목적지인 최동단으로 가는 지름길 같았다. 이게 웬 럭키! 아까 그 계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최동단으로 연결되는 길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아니면 뭐, 다시 돌아오면 되지.


그렇게 산책로에 들어선 지 30분 후, 나는 바닥에 새겨진 대만 지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을 깎아 만든 이 지도는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대만의 동쪽 끝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던 나는 구글 지도를 켰다. 대만의 가장 동쪽 끄트머리에 파란 점이 찍혀 있었다. 정말 대만의 최동단에 와 있었다.


와, 여기가 대만의 동쪽 끝이라니! 내가 진짜 왔다니! 버스 타고! 혼자서!!


지도 뒤에 놓인 따봉 모양 조각상을 따라 나도 엄지를 치켜들고 크게 외쳤다. “따봉!”


대만의 최동단에서,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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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로 남긴 최동단 탐험 인증샷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먹는 빵맛


따봉 소리와 함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팠다. 두 시간 전 아점으로 먹었던 대만식 영양 샌드위치는 고된 산행에 소화된 지 오래였다. 이럴 줄 알고 준비한 총샤오삥(葱燒餅, 파빵)을 가방에서 꺼냈다. 하얀 등대와 바다를 보며 총샤오삥을 한 입 뜯어먹었다. 밀가루의 달큰하고 고소한 맛에 파의 단맛과 참깨의 고소함이 더해진 총샤오삥. 목이 매일 정도로 감동적인 맛이었다(퍽퍽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바다 빵(‘바다에서 먹는 빵’)을 만끽했다. 쉼 없이 불어대는 바닷바람에 머리카락과 빵이 같이 씹혀도 즐거웠다.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 오직 바다와 등대, 바람뿐인 이 순간.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가 된 기분이었다.


바다와 귀산도, 등대를 보며 먹는 총샤오삥

탄수화물의 축복을 느끼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대만의 동쪽 끝이면, 한국이랑 가장 가까운 건가?’


저 등대 너머에 있을 나의 한국. 돌아가고 싶기도, 아니기도 한 우리나라. 다들 잘 있겠지?

청승 그만 떨고 얼른 샤오삥이나 마저 먹자. 눈물 젖은 빵 되기 전에.


이렇게 대만 최동단은 정복했고... 다음엔 최북단으로 탐험을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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