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러의 소원 성취, 101 새해 카운트다운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17

by 끼미


“어떡해~ 너무 떨려요~~”

“하하, 그렇게 좋아요 롱롱?”

”네! 제 소원이었어요, 101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보는 거!“


2021년 12월 31일 밤 11시 55분. 우리는 타이베이의 상징, 101 따로우(大樓, 빌딩)가 잘 보이는 사거리에 서 있었다. 101 따로우에서 매년 열리는 새해맞이 행사인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내 곁에는 하얀 털모자를 쓴 귀여운 도리씨 그리고 오늘 처음 만난, 덧니가 깜찍한 도리씨의 친척 여동생이 있었다. 타이베이 토박이인 그녀들은 굳이 사람 많고 정신 사나운 이곳에 올 이유가 하나도 없었지만, 이거 보려고 대만에서 버텼다는 한국인 친구를 위해 동행해 주었다.


빗속에서 함께 카운트다운을 기다린 사람들


조금 전까지 부슬비를 내리던 구름으로 살짝 가려진 101 따로우, 그 모습을 보며 불꽃놀이가 제대로 안 보일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도리씨와 동생분, 양 사방에서 들려오는 설렘 가득한 사람들의 말소리. 나도 모르게 이 말이 자꾸 나왔다.


‘꿈 같다.’


나의 오랜 꿈이자 소원이자 소망이었던 ‘101에서 새해 카운트다운 보기’. 이 순간을 위해 밤마다 여기서 못 살겠다고 울면서도 버텼다. ‘그래도 불꽃놀이는 보고 가야지!’ 하면서 12월 31일이 되기만을 매일 기다렸다. 도대체 언제 오나 싶었던 그 마지막 날이 드디어 왔다니. 지금까지 잘 버틴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이렇게 한 살 또 먹는다니 슬프기도 했다.


목마 탄 아이, 알록달록 머리띠 파는 상인도 함께 한 카운트다운


11시 59분.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고 호들갑 떨고 있으니 101 따로우에 숫자가 나타났다. 2022년이 되니 10초 전이었다. 도리씨와 동생분, 모든 사람과 함께 이 순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 중국어 숫자를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우(5)!

쓰(4)!

싼(3)!!

얼(2)!!!

이(1)!!!!


“씬니엔 콰이르어(新年快樂,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01 따로우가 온몸을 다해 불꽃들을 세차게 뿜어냈다. 빨갛고 하얗고 노랗고 파란 점과 선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하늘은 하얀 연기가 들어차며 점점 흐려졌지만, 불꽃들의 거침없는 움직임을 보는 내 마음은 점차 시원해졌다.


‘아, 행복하다!’


한국에서 온 대만 워홀러는 또 하나의 소원을 이뤘다.


짧지만 감동적이었던 101 불꽃놀이


생각보다 금방 끝난 불꽃놀이를 다 감상한 우리는 자리를 옮겨 101가 잘 보이는 언덕에 앉았다. 아직 비가 덜 말라서 궁둥이가 축축했지만 메이꽌시(沒關係, 상관없다). 3시간 동안 알바하고 101까지 한 시간을 걸어오고 또다시 한 시간을 서서 기다린, 도합 다섯 시간 동안 서 있었던 두 다리를 쉬게 해 줄 수만 있다면 궁둥이쯤이야 희생할 수 있었다.


상기된 표정의 도리씨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길쭉한 노란색 봉지. 맥심 믹스커피였다! 나랑 같이 먹고 싶어서 챙겨 왔단다. 따뜻한 물도 챙겨 온 도리씨. 믹스커피 선배로서 커피 맛있게 타는 방법을 알려줬다. 물은 이 정도를 넣어야 깡하오(剛好, 딱 좋다)다, 아니면 밍밍한 한강 커피 된다, 하면서. 현지인이 타준 비법 믹스커피를 마신 도리씨와 도리씨 친척 동생분은 역시나 맛있다고 나를(사실은 맥심커피를) 칭찬해줬다. 후훗, 내가 커피 좀 잘 타지. 그런데, 믹스커피가 원래 이 맛이었나? 오늘따라 달달~하네.


101 따로우 앞에서 나눠마신 맥심커피 그리고 도리씨가 찍어준 기념사진


은혜로운 도리씨가 한턱 쏜, 새해 첫 식사


특별한 커피를 마시며 각자의 새해 소원을 나누고 101와 함께 기념사진도 남긴 우리는 근처의 맥도날드로 향했다. 벌써 새벽 2시였다. 긴 하루에 피곤해서 혼이 다 빠졌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도리씨, 도리씨 동생과 헤어지기엔 아쉬웠다.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한 자리 잡은 셋은 2022년 새해의 첫 식사를 함께 즐겼다. 따끈한 위미탕(玉米湯, 옥수수 스프), 바삭한 감자튀김과 맥너겟, 달콤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콘까지. 오늘도 우리의 마음 넓은 도리씨가 한턱 쏜 성대한 야식이었다. 고생 끝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 야식은 (공짜로 얻어먹어서) 더 맛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리처럼 새해 카운트다운을 즐긴 사람들을 둘러보는데 한국인 동생 J가 떠올랐다. 원래 함께 오려고 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전날까지 확답을 주지 못한 나 대신 다른 친구들이랑 카운트다운 보러 가겠다고 했던 J. 근처 어딘가에서 함께 하고 있을 그녀도 오늘의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만끽했기를 속으로 기원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한 나 그리고 우리의 새해,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고 믹스커피처럼 달콤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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