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26
핑시 천등제에 다녀온 다음 날, 한국에서 반가운 택배가 왔다. 10년 지기 대학교 친구들이 보낸 선물이었다. 상자를 열자 제일 사랑하는 한국 과자 매운새우깡이 인사를 건넸다. 역시 내 친구들! 그 외에 비빔면과 깻잎 장조림 등 그리웠던 한국의 맛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런데 게 중에 별로 안 받고 싶었던 선물도 하나 있었다.
미역국.
생일이었다. 또.
2022년 2월 16일, 대만에서 보내는 서른두 번째 생일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밥부터 먹었다. 메뉴는 엄마가 보내준 비비* 소고기미역국, 친구들이 보내준 오징어 진미채와 깻잎 장조림이었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엄마와 친구들 얼굴이 떠올랐다. 대만에서 제대로 된 생일상을 받을 줄이야. 난 참 복 받은 사람이었다.
바다 건너 전해진 사랑으로 영혼을 채우고 본격적인 ‘혼자 생일 잘 보내기’ 프로젝트를 위해 출발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입욕비가 무려 399위안(당시 환율로 약 17,000원)이나 하는 우라이 온천이었다. 집에서 더 가까운 베이터우에도 온천이 있지만, 굳이 우라이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추억 여행이었다.
8년 전, 첫 해외여행으로 대만에 왔을 때 타이베이 시내에서 꽤 먼 우라이까지 찾아와 온천을 했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나는 비취색 계곡을 보며 조용히 몸 담그며 다짐했었다.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돈 많이 벌어서 다음에 가족들이랑 같이 와야겠다고.
그로부터 한 강산이 지나 서른두 번째 생일에 다시 찾은 우라이. 이번에도 혼자였다. 여전히 가족도, 돈도 없이. 멍하니 계곡을 바라보며 조용히 온천욕을 하는 동안 갖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도대체 난 8년 동안 뭐 했지? 그때의 밝고 희망차던 나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내 꿈은 또 어디로 가버렸고?’
몸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진 온천욕을 마치고 다음 프로젝트 장소로 이동했다.
‘혼자 생일 잘 보내기’ 프로젝트의 두 번째 목표는 ‘맛있는 거 먹기’였다. 그래서 생일 점심으로 회덮밥을 먹었다. 연어와 참치 등 알록달록한 생선회들이 올려진 회덮밥은 한 그릇에 190위안(약 8천 원)이었는데, 대만 외식 물가로는 꽤 비싼 편이었다.
그래서 먹었다. 생일날까지도 돈 아낀다고 80위안짜리 삐엔땅(便當, 대만식 도시락)을 먹고 싶진 않았다. 초고추장이 간절히 생각나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회를 먹으니 좋았다. 그러고 보니 대만 오기 전날 가족들이랑 먹었던 마지막 식사도 회였는데. 또 한 번 가족 생각이 나는 점심 생일상이었다.
후식도 큰맘 먹고 비싼 걸로 먹었다. 먹어보고 싶지만 비싸서 꽤 오랫동안 참았던, 135위안짜리 사탕수수 얼음 빙수였다. 평소 90위안짜리 빙수만 먹던 나에겐 신라호텔 망고빙수나 다름없었다. 얇은 널빤지처럼 생긴 얼음에서 사탕수수의 달큰함이 느껴졌는데, 난생처음 먹어보는 신기하고 독특한 맛이었다. 돈으로 새로운 경험을 산다는 말에 딱 어울리는 빙수였다.
비싼 가격만큼 양도 많았다. 아무리 온천욕으로 몸을 뜨끈하게 데웠다지만 이 차가운 빙수를 혼자 다 먹기엔 힘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명이 한 그릇을 나눠 먹는 손님들 사이에서 나만 1인 1빙수 중이었다. 추워서 살짝 떨리는 손으로 빙수를 떠먹는 동안 내 마음도 점점 얼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난 왜 생일날 빙수 같이 먹을 친구도 없어서 혼자 벌벌 떨면서 먹고 있는 걸까?’
나를 찌르는 생각들은 생일에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난 나이만큼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생일 잘 보내기’ 프로젝트는 비극으로 끝나는 듯했다.
저녁에는 평소처럼 알바 하러 갔다. 생일날까지 일해야 하나 싶어 주말 알바랑 바꿀까 하다가 말았다. 알바도 안 가면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데 그럼 너무 외로울 것 같았다. 역시나 현명한 선택이었다. 생일이라고 딱히 더 특별할 건 없는 알바였다. 생일 선물처럼 허광한(<상견니>의 남자 주인공이자 알바한 가게의 단골 손님)이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좋았다. 사장님들과 수다 떨고 돌솥비빔밥 나르고 컵 씻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온천욕 하고 회덮밥 먹을 때와 달리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말들도 들리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어서, 할 일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알바 끝나고 집 가는 길, 다안 공원에 들렀다. 어둠이 내려앉은 벤치에 앉아 생일 선물 보내준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덕분에 생일밥 잘 먹었다고 잠깐 인사만 하려던 건데 무려 한 시간을 떠들었다. 친구들이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준 것 말곤 역시나 평소와 비슷한 대화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같이 빙수를 나눠 먹진 못해도 선물 보내주고 시간 내어주는 친구들이 그저 고마웠다.
사장님들, 친구들과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된 밤. ‘혼자 생일 잘 보내기’ 프로젝트의 마지막 행사를 진행했다. ‘생일 소원 빌기’. 이 시간을 위해 생일 케익도 준비했다. 온천 마치고 오는 길에 제일 좋아하는 빵집에서 사 온 이 케익은 사실 케익이라기엔 백설기 사이에 땅콩 크림 넣은 것처럼 생겼는데, 식감도 빵보다는 떡 같았다.
하얀 떡을 앞에 두고 두 손을 모은 채 소원 세 개를 빌었다. 두 개는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마지막 하나는 눈 감고 마음속으로. 날 대만으로 오게 한 드라마 <상견니>에서 배운 건데, 대만 친구 도리씨도 대만에서 그렇게 한다고 확인시켜 줬었다.
아, 도리씨! 생일 축하한다며 만나자고 연락 왔었는데 그러자고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겠다. 외롭다면서 혼자 있고 싶었던 건 도대체 무슨 심보였던 건지. 그래도 고마웠다. 언제나처럼 밝고 사랑스러운 메시지로 생일을 축하해 준 도리씨 덕분에 외로운 대만 생활을 버텨내고 생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생일을 축하해 준 건 도리씨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도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 대만에서 혼자 지내느라 고생이 많다고, 생일과 남은 시간 잘 보내고 한국 돌아오면 보자고, 다정하고 따뜻하게 응원해주었다.
정말이지 이상했다. 이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도망쳐 온 대만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생일 축하를 받는다는 게. 도대체 그땐 왜 나 혼자라고 생각했던 걸까? 더 어리석은 건, 이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거다.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면서도 종일 ‘나는 친구가 없어서 생일도 혼자 보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심란한 하루를 보내지 않았던가.
그걸 생일 다 끝나가는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스스로가 또 한심하게 느껴질 뻔했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뽀얀 백설기 위에 입김을 후 하고 불었다. 그러자 상상 속에서 타오르던 서른두 개의 촛불이 톡 하고 꺼졌다. 그렇게 '혼자 생일 잘 보내기'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실 난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깨달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