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24
타이베이의 겨울은 매우 찝찝했다.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탓에 물에 푹 젖은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녀야 했다. 바닥을 디딜 때마다 물기가 찍 나오는 축축한 양말, 그 속에서 팅팅 불어 가는 발가락들. 끔찍이도 싫었다. 패딩 입는 겨울이라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는 건 더더욱 안될 일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타이베이 생활, 마음은 가라앉아도 궁둥이는 번쩍 들어 올려야 했다.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둔 맛집과 여행지를 다 가려면.
역시나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리던 1월 중순. 타이베이 여행객들이 많이 한다는 예스진지 투어의 ‘스’를 담당하고 있는 스펀 폭포(十分 瀑布)에 갔다. 너무 유명한 관광지는 안 가고 싶었는데 그래도 타이베이에서 반년 넘게 살았으니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맑은 날 가면 더 좋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이놈의 겨울비는 내일도, 모레도 올 테니.
안내 표지판을 따라 폭포로 향하는 길. ‘역시 이런 날 누가 폭포 보러 오겠어, 나 빼고!’ 하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저 아래에 파란 우산을 쓴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DSLM 카메라와 삼각대를 보니 사진 찍는 걸 취미나 업으로 하시는 분 같았다. 작은 폭포를 바라보며 조용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시던 할아버지. 그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부럽기도 했다. 이 빗속에서도 기꺼이 하고 싶은 일. 나도 찾을 수 있을까?
어느새 홈빡 젖은 운동화를 신고 드디어 만난 스펀 폭포. 기대 이상이었다.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아도 하얀 물방울들이 세차게 떨어지는 모습은 웅장했다. 시원한 폭포 소리를 듣고 있으니 비 오는 날 오길 잘했다 싶었다. 비가 안 와서 유량이 적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풍성하고 화려한 물줄기를 감상할 순 없었을 테니까. 비에게 제발 좀 그치라고 불평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도 비에 다 젖은 발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이 불쾌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폭포 구경은 다 했지만 이대로 귀가하기엔 아무래도 아쉬웠다. 아직 네 시였다. 셔터 내린 어느 가게의 처마 아래서 구글 지도를 보며 고민했다. 집에 갈까, 어디 딴 데 갈까.
결국 집이 아닌, 지롱(基隆) 가는 버스를 탔다. 꼭 가보고 싶었던, 지파이(鷄排, 대만식 닭튀김)와 빠오삥(刨冰, 대만식 빙수)을 같이 판다는 가게를 가기 위해서였다. 제발 집에 가자는 두 발의 절규보다 맛있는 걸 넣어달라는 위(胃) 속삭임이 더 크게 들렸다. 위가 귀랑 더 가까워서인진 몰라도.
거센 빗줄기 뚫고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와 영접한 지파이와 빠오삥. 비가 와도 바삭한 지파이와 추워서 더 맛있는 빠오삥의 조합은 치맥만 즐겼던 지난날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혼자 둘 다 먹기엔 너무 많지 않을까는 무슨, 얼음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해치워 버렸다.
‘거봐, 오길 잘했지?!’ 위가 으스대며 물었다. 여전히 이 빗물에 절여진 운동화를 얼른 벗어던지고 싶긴 했지만, 차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발은 찝찝해도 입은 행복했다. 심지어 발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이 아까보다 덜 불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먹순이에겐 맛있는 음식이 드라이기나 마찬가지였다.
신발이 다 젖었으면 맛있는 걸 먹자.
축축해진 마음이 다시 뽀송해질 지어니.
*지파이와 빙수가 맛있는 지롱 맛집
타이베이와의 이별을 딱 한 달 앞둔 2월 초. 금방이라도 비 올 듯 낮게 깔린 회색 구름에도 굴복하지 않고 신베이의 바다로 탐험을 떠났다. 바다가 보이는 동굴 앞에서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스먼동(石門洞)과 바다가 훤히 내다보인다는 스먼 풍력 발전소(石門風力發電站)에 가는 날이었다.
스먼동에서 사진 찍을 때까지만 해도 하늘에 파란 부분이 보였다. 덕분에 스먼동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사진을 남기고(시즌 3의 표지 사진!) 풍력 발전소를 구경하러 갔다. 하늘에 점점 까만 먹구름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꼭 가고 싶었다. 학교에서 지리 수업할 때 풍력 발전 얘기를 그렇게 했으면서도 정작 실제로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스먼동 근처이니 비를 맞더라도 꼭 가야 했다.
어두운 하늘 때문인지 왠지 으스스한 산길을 오르니 풍력 발전소가 나왔다. 광활한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바람개비들이 마치 등대처럼 서 있었다. 바람개비는 생각보다 더 거대했고, 애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시끄러웠다. 사진으로만 보던, 말로만 떠들었던 풍력 발전기를 실물로 영접하다니!
한껏 흥분해서 바람개비랑 사진 찍는 내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버스 정류장 가려면 다시 한참 걸어가야 했다. 모자 달린 패딩 입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빠른 발걸음으로 풍력 발전소를 빠져나와 산길을 내려갔다. 점점 더 굵고 거세지는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내 옆으로 몇 대의 차들이 지나갔다. 살려달라고 팔을 흔들고 싶었지만 내 간은 너무나 작았다.
풍력 발전이고 뭐고 괜히 왔나 싶을 때쯤, 방금 옆을 지나간 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멈춰 섰다. 운전석의 창문이 내려가고 중국어가 들려왔다.
“어디 가세요?”
“단수이요!”
“단수이까진 안 가는데, 대신 단수이 가는 버스 탈 수 있는 정류장에 내려 줄게요. 얼른 타세요!”
“깐씨에(感謝,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넙죽 뒷좌석에 탔다. 운전석에는 40대쯤으로 보이는 남성분이, 조수석에는 아내분이 타고 계셨다. 생명의 은인분들은 우산 안 챙겨 왔냐, 어디에서 왔냐 물으시고는 별다른 말 없이 운전하셨다.
어색한 분위기에 무슨 말이라도 던져야 할까 고민하다가 창밖을 보며 조용히 있었다. 지금껏 마주쳤던 대만 사람들과 달리 이것저것 묻지 않으셔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비 맞으며 산길 걷느라 약간 공포에 질려있던 뇌로는 대답도 제대로 못했을 거다.
10여 분 뒤, 은인분들은 버스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셨다. 00번 버스 타면 단수이까지 간다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중국어가 짧아 “여러분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어요!!”라고 주접을 떨진 못했지만 대신 “깐씨에”를 열 번쯤 외치며 은인분들을 보내드렸다. 살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최대한 담아.
은인분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단수이행 버스가 왔다.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버스 차창 너머로 아까보다 훨씬 굵어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은인분들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이 비를 맞았겠지. 그럼 백 프로 감기에 걸렸을 테고.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난 무슨 생각으로 우산을 안 들고 왔던 걸까? 바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덕분에 처음 보는 대만 사람들의 차를 얻어타 봤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나 싶기도 했다. 대만에서 히치하이킹이라. 언제 또 해보겠어?
은인분들 덕분에 비 오는 타이베이의 겨울이 조금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