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22
“끼미씨, 한 달 동안 고생했어요.”
2022년 1월의 마지막 알바가 끝난 9시. 사장님께서 반가운 봉투를 건네셨다. 꺄, 월급이다! 그런데 이번엔 낯선 봉투 하나가 더 있었다. 금색 종이에 빨간 소가 그려진 봉투. 설마 이건...
“와, 홍빠오에요?! 완전 감사합니다, 사장님!!”
“얼마 안돼~ 타이동 가서 재밌게 놀다 와요.”
홍빠오(紅包)! 대만에서 설날인 춘절(春節)이 되면 회사 또는 가족이 주는 세뱃돈 같은 거라고, 중국어 공부할 때 배웠었다. 마침 월급날이 춘절 직전이라 내심 기대하면서도 정직원도 아니고 알바생이라 양심 없나 싶었는데, 진짜 홍빠오를 받을 줄이야! 완전 감동이었다.
“그런데 춘절이라서 문 연 데가 별로 없을 텐데.”
“안 그래도 걱정이에요. 그래도 뭐 편의점 있으니까요, 하하!“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한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타이동의 텅 빈 거리를 홀로 배회하다 세븐일레븐에서 컵라면 사 먹는, 춘절에는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며 후회하는, 내일의 나.
에이, 설마 진짜 그렇게 되겠어?
역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일주일이나 되는 긴 춘절 연휴를 맞아 떠난 화롄(花蓮)과 타이동(台東), 이른바 화동(花東) 여행은 6일 내내 많은 인파와 함께 했다. 아침 시장이며 현지 맛집, 유명 관광지, 야시장 어딜 가나 사람들로 복작복작거렸고, 게스트하우스에도 빈 침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일출 보러 바닷가에 갔을 때도 그 이른 아침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태양에게 새해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춘절에 누가 여행을, 이 새벽에 누가 바다를 올까?’ 싶었지만 그 ‘누가‘는 예상보다 많았다.
춘절에 여행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자란 나는 그동안 명절은 당연히 가족 그리고 친척들과 집에서 음식 해 먹고 차례 지내고 성묘 가면서 보내는 거라 생각했었다. 최근 몇 년은 나도 시험 핑계로 고향에 안 내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었지 어디 놀러 갈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그런 나에게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한 화롄과 타이동의 춘절 모습은 생소하면서도 설레는 풍경이었다.
그래도 밤에는 아무래도 썰렁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화롄과 타이동은 타이베이처럼 큰 도시는 아니었고, 아무래도 가족끼리 오면 다들 일찍 자러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괜한 고민이었다. 화동의 춘절 분위기는 밤에도 여전했다. 연휴에도 열린 타이동 야시장에는 빨간 장식품과 차례상에 올리는 사탕 등을 파는 가게들이 나타나 춘절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게 해 주었고, 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화롄의 원주민 야시장을 가득 메운 가족 단위 손님들은 지금이 명절임을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일찍 잠들기 아쉬운 여행자에게는 정말 다행이었다. 화려한 불빛들과 시끌벅적한 사람 소리가 반겨주는 야시장 거리가 있어서, 할 일 없어서 마지못해 숙소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어서.
혼자 맞이한 춘절의 밤이 외롭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매일 밤 펼쳐졌던 폭죽 놀이였다. 화롄과 타이동에서 보낸 연휴 내내 해변에서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펑, 펑, 소리를 내며 밤하늘에서 번쩍거렸다. 마치 경쟁이라도 붙은 듯 그 규모도 제법 컸는데, 해변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야시장에서도 폭죽이 잘 보일 정도였다.
처음 봤을 때는 대만 사람들도 바다 오면 폭죽 놀이하면서 기분 내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다음날, 그다음 날에도 요란하게 터지는 폭죽을 보고 의아한 마음에 검색을 해봤다. 그제야 알았다. 대만에는 음력 새해인 춘절이면 폭죽 놀이를 하며 귀신을 쫓는 풍습이 있다는 사실을. 이때처럼 전통을 잘 지키는 대만 사람들에게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 폭죽 터뜨리며 꺄르르 웃는 아이들과 그를 보며 흐뭇해하는 어른들, 까만 하늘을 알록달록 물들인 불꽃 덕분에 어둠 속에서 혼자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도 무섭지 않았다.
혼자 하는 춘절 여행이었지만 결코 혼자는 아니었다. 매 순간 사람들과 함께였는데, 특히 대만 정부에서 운영하는 관광 셔틀버스인 '타이완 하오싱(台灣好行)'을 타고 타이동의 동부 해안을 구경했던 날이 그랬다.
춘절 연휴에도 과연 운영하는 건지, 나 말고 손님이 아무도 없는 건 아닌지 근심하며 아침 일찍 찾아간 타이동 버스 터미널. 다행히 버스는 제시간에 등장했다. 게다가 오늘 하루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다닐 동료들도 제법 많았다. 춘절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가족끼리 온 손님들이 주를 이뤘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온 꼬마 숙녀, 우리 엄마아빠 또래의 부모님과 함께 온 아들 딸 등. 명절을 함께 즐기는 가족이 보기 좋으면서도 부럽기도 했다. 꽤 많이.
하오싱 버스는 해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며 각 코스마다 정차해 관광을 즐길 시간을 줬다. 신비한 해안 암석이 있는 바닷가, 강력한 바닷바람이 부는 바람개비 언덕, 원주민들의 전통 가옥을 볼 수 있는 민속센터... 다른 가족 탑승객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경치에 감탄하며 즐거워했다. 물론 나도 타이동 바다를 원없이 구경해서 행복했다. 그럼에도 이 신나는 순간을 함께 나눌 사람 없이 혼자 "와, 좋다..." 하고 외마디 감탄만 하는 현실이 조금은 서글펐다.
점점 외로워질 무렵, 세 번째로 들린 코스인 아메이 민속센터(阿美 民俗中心)에서 허전함을 달래줄 천사들이 나타났다. 고양이들이었다. 이곳에 사는 걸로 보이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은 나에게 다가와 얼굴을 다리에 문지르고 벌러덩 드러누우며 애교를 부렸는데,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오구오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 고양이들을 쓰다듬고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 주다 보니 공허하던 마음이 사랑으로 차올랐다. 군중 속에서 몇 시간째 혼자 묵언수행하다 고양이들에게 한국어로 몇 마디 떠드는 건 꽉 막혀 있던 속에 까스활명수를 콸콸콸 들이붓는 효과가 있었다다. 비록 상대는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고양이들의 애교로 조금 누그러진 고독은 '싼시엔타이(三仙台, 삼선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세 명의 신선이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다는 이곳은 자갈 해변 위에 서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생각과 감정이 지워졌다. 흐린 날이지만 에메랄드빛을 뽐내는 바닷물, 그 위에 놓인 물결 모양의 다리, 그 끝에 연결되어 있는 섬. 신선들이 여기에 내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반쯤 넋을 놓고 치맛자락이 흩날리도록 불어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세찬 파도에 쉼 없이 굴러가는 자갈 소리를 들으며 서 있던 그때, 옆에 있던 꼬마 여자 아이의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하고.
젊은 엄마가 웃으며 건넨 그 한 마디에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사실 하루 종일 기다렸었다. 같이 버스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주기를. 그렇다고 먼저 말을 걸 용기는 없어 눈치만 보던 나 홀로 여행객은 싼시엔타이의 바닷가에서 그날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어디에서 왔냐는 애기 엄마의 질문에 한국에서 왔다고 반갑게 대답하면서. 드디어 전신 사진을 남겼다는 것도 기뻤지만 반나절 내내 혼자 있던 내게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줬다는 사실이 더없이 행복했던 순간, 나의 춘절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외로움도 외로움이지만, 춘절 여행을 떠나며 가장 걱정했던 건 사실 밥이었다. 모두가 춘절에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문을 안 연다고 겁을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또한 뜬소문이었다. 많은 맛집들이 평상시처럼 문 활짝 열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설 하면 만두여서일까. 어쩌다 보니 춘절 연휴 동안 만두를 많이 먹었다. 첫 식사부터 화롄의 명물이라는 얇은 피 만두인 '삐엔스(扁食)'를 먹었는데, 탱글탱글한 새우 한 마리가 통째로 든 만두를 매콤한 고추기름 끼얹은 숙주나물과 함께 먹으니 얼마나 맛있던지. 식당 한편에서 만두 싸는 모습을 구경하며 먹으니 설날 분위기가 제대로였다. 사실 경상도에서 자란 나는 설엔 떡국을 먹었지, 떡만둣국을 먹진 않았다. 친척끼리 만두를 빚어본 기억도 당연히 없고. 그래도 서울 사는 친구가 명절마다 할머니 집에서 만두 빚는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곱게 빚어진 만두들을 보니 ‘역시 설날엔 만두지!’ 싶었다.
바닷가에서 일출 보고 나서 사 먹은, 구운 왕만두인 셩찌엔빠오(生煎包)도 설이라 그런지 특별하게 맛있었다.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찌고 구운 만두의 맛은 '일출이 뭐라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이러고 있나' 싶었던 회의감을 '역시 일찍 일어나길 잘했어'라는 뿌듯함으로 변신시켜 줄 정도였다. 크기는 또 어찌나 큰지, 뜨거운 만두를 입에 꽉 차도록 베어물 때마다 이런 소원이 절로 나왔다. “새해 복도 이렇게 가아득 들어왔으면!”
춘절 연휴에 먹었던 가장 맛있는 만두는, 나의 최애 만두인 팔방운집(八方雲集)의 한국식 매운군만두(韓式辣味鍋貼)였다. 첫 번째 쉐어하우스에서 같이 살았던 하우스 메이트가 알려줘서 처음 먹어봤던 그 만두. 대만 온 지 얼마 안 됐던 6월 초였는데, 9월의 중추절을 지나 어느덧 1월 말의 춘절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대만에서 어떻게 일 년이나 버티나 싶었는데 이젠 돌아갈 날이 몇 달 남지 않았다니. 시간이 무섭도록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걱정 잔뜩 안고 떠났던, 춘절 기념 화롄과 타이동 여행.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년 설이면 늘 생각난다.
수많은 여행객들과 화려한 폭죽 놀이, 바다와 고양이 그리고 만두와 함께
즐겁고 따뜻했던 춘절 연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