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3#21
아펑. 내가 알바한 한식당의 주방 직원이었던 그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동료였다. 아펑이랑 같은 날 입사한 다른 사람은 며칠만에 그만 뒀지만, 아펑은 세 달 정도 같이 일했으니 동료 의식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까만 피부에 쑥스러움을 많이 타던 아펑. 알바를 시작하고 몇 달간 사장님 두 분과 일하다가 그의 입사 소식을 전해듣고선 얼마나 설렜던지.
‘드디어 나도 대만 사람이랑 같이 일하는구나!
나보다 두세 살 더 많다던데 얼른 친해야지!’
슬프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펑은 주방에, 나는 홀에 있으니 말 섞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출근하면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아펑에게 “니하오!” 인사를 하고, 나보다 먼저 퇴근하는 아펑에게 “내일 봐!” 하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집에 가는 그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아펑은 유부남이었다. 게다가 아펑은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고, 나는 그의 약간 얼버무리는 듯한 중국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펑과 점점 편해진 건 그가 나의 전담 셰프가 되면서부터였다. 원래 사장님께서 내 저녁을 챙겨주셨는데, 아펑이 온 뒤로는 그에게 임무가 넘어간 것이다. 저녁 손님이 한차례 다녀가고 한가해진 8시가 되면 나는 주방으로 달려가 내 전담 셰프에게 외쳤다.
“아펑~ 나 비빔밥 먹을래!”
처음에는 말없이 비빔밥만 내주던 아펑.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비빔밥을 외치고 돌아서는 나에게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계란 프라이 하나 더 먹을래?”
“오, 씨에씨에(謝謝, 고마워), 아펑!”
그와의 벽이 허물어지던 순간이었다.
계란 프라이뿐만 아니라 소불고기의 고기도 많이 넣어주던 나의 전담 셰프는 이따금 스페셜 메뉴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우리 가게에서는 안 파는 그 히든 메뉴는 바로 차오미엔(炒麵), 볶음면이었다.
아펑은 가게에서 저녁을 먹던 나와 달리 퇴근하면서 자기가 만든 음식을 포장해 갔다. 집에서 편하게 먹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보통은 아펑이 자기가 직접 포장을 했었는데, 하루는 그의 부탁으로 내가 용기의 뚜껑을 덮어주게 됐다. 그때 처음 봤다. 우삼겹과 야채가 듬뿍 든, 참기름과 간장 냄새가 폴폴 풍기는, 그가 만든 차오미엔을!
“아펑, 이거 뭐야? 완전 맛있겠다! 나도 내일 이거 먹을래!”
나의 호들갑에 쑥스럽게 웃으며 퇴근한 아펑은 다음날 진짜 내 부탁을 들어줬다. 예상대로 그의 차오미엔은 환상적이었다. 라면으로도 이런 맛을, 이런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중에 꼭 차오미엔 가게 차리라는 내 칭찬에 아펑은 역시나 허허 웃고 말았지만 나는 이백 프로 진심이었다.
그의 실력을 확인한 후,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주문하기도 했다.
“아펑~ 오늘 뭐 먹을 거야? 나도 똑같은 거 해줘!”
다소 황당한 주문을 받고 아펑이 만들어준 소세지 볶음밥. 당장 그의 손을 이끌고 한국에 가서 장사하고 싶은 맛이었다. 당연히 차오미엔도 같이.
상대에게 밥을 만들어 주고, 그 밥을 만들어 준 상대를 칭찬해 주면서 아펑과 나는 조금씩 서로가 편해졌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는지, 하루는 아펑이 퇴근하다 말고 갑자기 나에게 무슨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알아들을 턱이 없던 나는 그에게 파파고 음성 번역기를 들이댔고, 아펑은 내 폰에다 이렇게 말했다.
“啊, 沒事(아, 됐어)“
폰 화면 속 ”아, 괜찮아요“를 보고 헛웃음 터진 나는 그에게 다시 말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쿨한 아펑은 또 한번 ”아, 됐어!“를 외치며 가게를 떠났다. 아직도 궁금하다. 아펑은 나한테 뭘 물어보려고 했던 걸까?
이제는 내가 “아펑~ 나 소불고기!“라고 하면 아펑이 ”고기 많이지?”라고 할 만큼 나름 친해졌을 무렵, 내 전담 셰프가 퇴사를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드디어 차오미엔 가게 차리냐고 의심하자 아펑은 넉살 좋게 웃으며 아니라고만 했다. 그렇게 그는 아쉬워하는 고객을 두고 떠났다. 늘 해주던 ”밍티엔 찌엔(明天見, 내일 봐)!“가 빠진, “빠이빠이!”라는 마지막 인사만 남긴 채, 쿨하게.
아펑. 내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내 밥은 열심히 챙겨줬던 내 전담 셰프 아펑.
그의 차오미엔을 흉내낸 볶음라면을 만들 때마다 생각난다.
“뭐 먹을래?”라고 무심한듯 다정하게 내 주문을 받던 그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