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슝의 까만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15

by 끼미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 ‘만약에 그랬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했다. 지난 일을 후회해 봤자 바꿀 수 있는 건 없으니까. 하지만 가오슝 한달살이 중엔 종종 하곤 했다. 다른 과거를 그려보며 아쉬워하는, 그 부질없는 행동을.



웨이우잉 국가예술문화중심


대만에서 가장 큰 문화 시설에 갔던 어느 날이었다. 시설의 정식 명칭은 ‘웨이우잉 국가예술문화중심(衛武營 國家藝術文化中心)’으로, 기차에 두고 내린 지갑 찾으러 갔다가 만난 역무원의 추천으로 알게 됐다. 그 이튿날 퇴근 중이던 그 역무원을 기차 안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그때 가오슝에서 가볼 만한 곳을 물으니 여기를 알려줬던 것이다.


웨이우잉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웅장하고 장엄했다. 건축 쪽은 완전 문외한인 내가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멋진 건물이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품은 건물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보라색과 자줏빛 조명이 켜져 있으니 더 운치 있었다. 저녁에 가면 더 이쁘다던 역무원의 말대로였다.


그에게 라인(대만의 국민 메신저)으로 방문 인증샷과 함께 알려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 같은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는데 피아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디서 공연 중인가 하며 소리를 따라가 보니 까만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는 넓고 아늑한 공간이 나타났다. 어떤 남자분이 실시간으로 연주 중이셨다.


정확한 제목은 잊었지만 잘 아는 곡이었다. 나도 몇 번 연습한 적 있는,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곡이었다. 여기서 이걸 들을 줄은 몰랐는데. 뒤편에 서서 이어지는 바흐의 곡을 감상하고 있으니 불현듯 대학원 시절이 생각났다. 늦은 밤 연구실에 혼자 남아 피아노 연주곡 들으며 논문 썼던 그때. 결국엔 졸업 못 하고 연구실 뛰쳐나온 이후로 한동안 피아노 곡은 감히 듣지도 못했었는데.


10여 분간의 즉흥 콘서트가 끝나고, 우리의 훌륭한 연주자분께서는 구석에서 박수 보내는 날 향해 수줍게 목례하시고선 조용히 떠나셨다. 일순간 조용해진 공간. 방금 전까지 남자분이 앉아 계셨던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 피아노인가 했더니 예상했던 대로 ‘YAMAHA(야마하)’라고 적혀 있었다.


웨이우잉에서 만난 야마하 피아노


그 여섯 글자를 보니 잊고 있던 꿈이 떠올랐다. 넓은 거실에 까만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 한 대 놓고 매일 연주하며 살고 싶었던,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어릴 적 소망.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그때엔 이 그랜드 피아노가 어찌나 갖고 싶었던지. 집안 사정으로 그 길을 그만둔 후에도 한동안 누가 소원 있냐고 물으면 야마하의 이 그랜드 피아노부터 내뱉곤 했었다.


피아노 의자를 빼내고 앉았다. 젓가락 행진곡이라도 쳐볼까 하다가 건반 위에 손을 얹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차갑고 딱딱한 촉감과 함께 답답함이 느껴졌다.


'만약 그때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못 됐겠지만 애들한테 피아노 가르치면서 살 수 있진 않았을까? 그래도 대회 나가서 상도 받고 했었는데, 피아노 칠 때면 늘 행복했었는데. 아무래도 내 인생은 그때부터 꼬인 것 같아.'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어졌다. 집에 있었던 피아노는 어떻게 된 건지, 이사하면서 내 피아노는 왜 버리고 온 건지, 내가 아낀다는 걸 알면서 도대체 왜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건지, 묻고 싶었다. 십 년이 넘도록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는, 너무 아파서 차마 떠올리지도 못하는, 그 질문을.


아무래도 이상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만에 가 있는 딸이 다짜고짜 전화해서 그런 걸 물어대면 무슨 일 있나 걱정할지도 몰랐다. 곧 한국 가니까 그때 물어보지 뭐, 하며 건반 뚜껑을 덮었다. 지금은 다 지난 옛날 생각할 때가 아니라 이제 집까지 어떻게 갈지 찾아볼 때였다.


다동 문화예술중심


그 후로도 가오슝에서 지내는 동안 몇 번의 '만약에' 모먼트를 맞이했다. 열기구 형상으로 유명한 다동 문화예술중심(大東 文化藝術中心)에서 모네와 르누아르의 작품집을 보며 '만약에 이 화가들을 좋아하던 전 남친이 날 안 찼더라면?' 하고 분노했고, 중산대학교(中山大學) 교정에 앉아선 '만약에 타이베이 말고 가오슝에서 워홀 하며 여기 어학당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하기도 했다.


몇 차례의 분노와 상상 끝에 도달한 결론은 매번 같았다. '그랬다면 난 지금 여기 없었겠지.' 그때 전 남친에게 차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테고 그럼 내 인생에 대만 워홀은 없었을 거다. 처음 계획대로 가오슝에서 워홀을 했었으면 타이베이의 그 한식당에서 알바했을 일도, 허광한을 만날 일도 없었을 거다.


과거의 그 모든 일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존재할 수 있었다. 치진 섬에 앉아 가끔 울긴 하지만 맛있는 우육면 먹으며 다시 웃는, 지독한 외로움 끝에 만난 쉐어하우스 식구들과 수다 떠는 이 시간. 고통스러운 과거를 반복하고서라도 꼭 다시 만나고 싶은, 그래야만 하는 가오슝 한달살이였다.


'옛날 생각할 시간에 빙수나 먹으러 갈 것'.

대만 워홀에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이었다.


중산대학교와 인근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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