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17
“아이고, 다리야...”
컨딩 여행 이틀 뒤, 혼자 가오슝 시립 미술관에 왔다. 미술엔 전혀 관심 없지만 여기 공원에 큰 호수가 있다길래 들렀다. 생각보다 좋았다. 저 멀리 야트막한 산과 야자수를 배경으로 고요히 존재하는 호수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평일 오후지만 나들이 온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정면에도 호숫가 바로 옆에 앉은 한 커플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외롭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동안 혼자 돌아다니면서 커플 볼 때마다 그렇게 시렸던 옆구리가 반응이 없었다. 호숫가를 거니는 친구들 무리를 봐도 쓸쓸하지 않았다. 조각상이긴 하지만 옆에 남자아이가 있어서 그런가 생각하며 아이의 정수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때 쑤한테 메시지가 왔다. 컨딩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아카랑 손잡고 야시장 걷는 나, 쑤 친구와 가족들 사이에서 브이 날리는 나. 웃고 있지만 두 눈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고단했던 그 이틀의 기억이 떠올랐다. 쑤에게 하트 이모티콘을 보내고, 아이에게 등을 살짝 기댔다.
“난 역시 혼자가 편해.”
컨딩에서의 1박 2일 이후, 나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지만, 어딜 가나 졸졸 따라다니던 외로움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감사함이 자라났다. 혼자 자유롭게,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낯선 대만 사람들과의 여행에서 배운 덕분이었다.
호수 보며 30분 정도 물멍을 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배가 고팠다. 호수를 한 바퀴 빙 둘러 반대편에 있다는 시장으로 향했다. 조금 전 벤치에 앉아 구글 지도 탐색하다 발견한 시장이었다. 이런 즉흥 여행도 혼자니까 가능한 거라 생각하며 도착한 시장에는 오후 3시임에도 장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 반, 오토바이 반인 이 풍경을 보니 작년 여름이 떠올랐다.
워홀 초기였던 그때, 기껏 대만 왔더니 코로나 사태로 잠깐의 외출 말곤 아무것도 못 하는 답답함을 매일 시장에 다니면서 달랬었다. 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던 그곳에서 상인들 그리고 손님들과 짧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외로운 여름을 버텼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가을이 되면, 어학당도 다니고 알바도 할 수 있다고, 그럼 대만 친구도 사귈 수 있을 거라고, 그랬던 내가 컨딩에선 쑤가 깔아준 멍석을 제 발로 걷어차버렸다. 기대와 현실이 이렇게나 달랐다. 어쩌면 내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했던 게 문제였던 걸지도.
시장 구경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간식을 샀다. 하얀 찹쌀 순대를 반 갈라 소세지와 오이 절임을 얹은, 따창빠오시아오창(大腸包小腸)이었다. 처음엔 무슨 음식 이름이 이렇게 어렵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아주 직관적이고 재밌는 이름이었다. 말 그대로 ‘대장(大腸, 순대)이 소장(小腸, 소세지)을 감쌌다(包)’라는 뜻이니까.
시장 입구 벤치에 앉아 따창빠오를 먹었다. 숯불 향과 감칠맛 가득한 이 순간, 걷느라 지친 두 다리에 힘이 생겨나는 게 느껴졌다. 탱글한 소세지를 씹으니 이란(宜蘭) 여행 갔을 때 이 따창빠오를 처음 먹었던 날이 떠올랐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신기하다고 이것저것 물어보셨던 주인 아저씨, 더운 날씨 속에서 함께 줄 서서 기다렸던 대만 사람들, 뜨거운 소세지 입에 물고 신나게 걸어 내려오며 봤던 시골 풍경. 오늘처럼 자유롭고 편안했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컨딩 여행 후 다시 혼자가 되고 나니 더 선명해졌다. 애초에 난 혼자 지내는 게 맞는 사람인데 억지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다 지쳤구나. 모든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곳에 온들, 나라는 사람은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일 년을 노력해도 안 됐으면 포기하는 게 맞을 테니까.
역시 소세지는 대만이 최고라고 중얼거리며 아까 시장에서 산 무과(木瓜)를 집어 들었다. 이제는 파파야라는 이름보다 입에 착 붙는 그 과일을 통째로 두 개나 샀다. 어떻게 손질하는지는 유튜브에 검색하면 나오겠지 하면서.
대만 와서 친구는 많이 못 사귀었지만 도전 정신은 꽤나 커진 나. 제법 기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