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빵 그리고 나의 미래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19

by 끼미


한국 돌아가기까지 한 달도 안 남은 시점.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일 년 동안 고민한 그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지.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




영원히 내리지 못할 것 같았던 결론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려졌다. 평소처럼 혼자 치진 섬에서 노을 보고 온 저녁, 집 가는 버스 타러 정류장에 왔더니 다음 버스가 20분 뒤에나 온다고 했다. 많이 걸어서 피곤한 상태였기에 순간 짜증이 났다. 이놈의 가오슝은 제2의 도시라더니 버스 배차 간격이 뭐 이따위인지.


그때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호호미 버터 파인애플빵(好好味 冰火菠萝油) 가게에서 날아온 냄새였다.


‘버스 기다리면서 짜증 내느니 차라리 빵을 먹자.’


곧장 가게로 달려가 빵을 사 왔다. 한국 가기 전에 한 번은 먹어보고 싶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따뜻한 빵을 한입 물었다. 먼저 바삭한 소보로가 씹히더니 곧 폭신한 빵과 살짝 녹은 버터가 입안 가득 채워졌다.


아, 역시 맛있었다. 방금까지 가슴 안에 꽉 차 있던 분노가 버터와 함께 사르르 녹아내리는, 노벨 평화상 줘야 할 맛이었다. 이 빵이 그렇게 유명하다더니 과연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 가게처럼 한 가지 빵만 맛있게 만들어도 된다면, 그럼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빵 만드는 일?’


호호미 버터파인애플빵


다소 엉뚱한 생각이지만 전혀 생뚱맞은 건 아니었다. 대만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많이 상상해 본 미래가 바로 ‘빵 만드는 사람’였으니까. 그 상상은 대만 오기 전부터 시작됐다. 혼자 서울 반지하 자취방에서 우울의 바다에 잠겼을 때도, 부모님 집에서 대만 출국만 손꼽아 기다렸던 때도, 빵을 만들고 쿠키를 구우며 답답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빵에 대한 내 마음은 대만에서 더 선명해졌다. 길을 걷다 빵집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갔고, 독특한 빵이 있으면 나중에 만들어 볼 생각으로 사진으로 남겼다. 어학당 수업에서 대만의 가장 유명한 제빵사인 우바오춘(吳寶春) 얘기를 들었을 땐 ‘어쩌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설레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아인슈타인 위인전 읽고 과학자가 되겠다는 말처럼 들리긴 하지만.


얼마나 빵이 만들고 싶었으면, 타이베이에서는 피자 만들기 체험이 가능한 카페까지 찾아가서 피자를 만들기도 했다. 대만에선 오로지 대만 음식만 먹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이날 말랑한 피자 도우를 밀면서 확신했다. 역시 빵을 먹는 것도 좋지만 만들 때가 더 행복하다고.


타이베이의 한 카페에서 피자 만들며 행복했던 날


내 마음을 알아챈 후에도 빵집에 갈 때마다 계속 고민했다. 이런 데서 일하려면 좋아하기만 해선 안 되고 잘해야 하는데 나 같은 똥손도 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던데 버틸 수 있을까, 서울대 출신이라거나 지리 교사라거나 하는 과거를 싹 지우고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자괴감을 느끼진 않을까.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호호미 파인애플빵을 먹은 그날, 드디어 긴 고민의 결론을 내렸다.


‘나도 이렇게 맛있는 빵을 만들고 싶어!’


뜬금없지만 딱 좋은 타이밍에 내린, 대만 워홀 내내 빵 빵 노래 부른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우바오춘처럼 노력하면, 매일 이만 보씩 걸으며 단련한 두 다리가 있다면, 대만에서 일 년이나 버텼으면, 힘들어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한국 친구들이 지켜보는 블로그에 한국 돌아가면 제빵 일을 배울 거라고 공개 선언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소보로의 달큰한 향은 날아가 버리고 없겠지만, 나의 이 결심은 사라지지 않도록.


파인애플빵 먹다 내 미래를 결정한, 대만 워홀 막바지의 어느 날이었다.


나에게 영감을 준 우바오춘 베이커리
가오슝의 동네 빵집들
가오슝 쉐하 근처 빵집에서 사 먹은 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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