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23
가오슝에서 타이난으로 넘어온 날, 노을 명소라는 위광따오(漁光島)로 향했다.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30분 동안 땀 샤워하며 걸어와 드디어 해변에 도착했다. 기쁨의 탄성이 터져야 할 타이밍, 하지만 내 입에선 후회의 한숨이 나왔다.
‘아씨, 괜히 왔나...’
온 사방이 커플 아니면 친구, 가족과 함께였다. 혼자 온 사람? 나밖에 없었다. 진짜로. 시끌시끌한 토요일의 모래사장 위에서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괜히 짜증 났다. 또 나만 혼자잖아, 이럴 줄 알고도 온 내가 등신이지.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짜증 낼 때가 아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찾아야 했다. 셀프 고문받으면서도 이곳에 와야만 했던, 오늘의 진짜 목적지를.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하며 모래사장 옆 숲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었다. 두리번거리며 좌회전하니 저 앞에 익숙한 뭔가가 나타났다.
그네. 드라마 〈상견니(想見你)〉 속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들에게 자신의 중대한 비밀을 밝혔던, 그러나 남주들은 헛소리라고 놀려댔던, 바로 그 그네였다.
여자 주인공처럼 그네에 앉아 인증 사진을 찍었다. 검지와 중지로 브이 한 왼손을 하늘 위로 번쩍 치켜들고. 마스크에 가려진 입술 사이로 헤헤헤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뿌듯했다. 도대체 <상견니>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나도 이해할 수 없지만, 여기에 정말 왔다는 사실이 그저 신났다.
삼각대를 가방에 넣고 다시 그네에 앉았다. 두 발로 땅을 힘차게 밀며 상체를 앞으로 숙이니 금방 공중으로 떠올랐다. 덥고 습한 바닷가의 공기를 느끼며 잠시 그네 타임을 가졌다. 어릴 때 못 이뤘던 꿈이 이뤄지는 기분이었다.
시내버스 안 다니는 산속 마을에 살았던 학창 시절, 학교 마치고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그네 타며 놀 동안 나는 곧장 엄마 차 타고 집에 가야 했다. 친구들이랑 더 놀고 싶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선지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그네를 탈 때면 어린 시절의 한이 되살아나곤 했는데, 그네 바람을 느끼다 보니 역시 옛날 생각이 났다.
‘나도 그때 야자 끝나고 애들이랑 같이 놀았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고향 친구들이랑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친구들이랑 평생 친구로 지낸다던데, 나는 왜 그런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건지 종종 자문하곤 했다. 물론 학교 다닐 때 같이 어울린 친구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함께 웃으면서도 언제나 느꼈다. 학교 마치고, 주말에도 같이 노는 그들과 늘 그 자리에 끼지 못하는 나 사이엔 투명한 벽이 있다고. 결코 사라질 수 없는, 마음의 벽.
〈상견니〉 보면서도 그게 늘 부러웠다. 친구가 가족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학창 시절, 서로의 비밀을 나누고 아픔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주인공들의 따뜻한 모습이. 결국 난 드라마 속 그 우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어서 더위와 외로움을 뚫고 이 놀이터까지 온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들과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더라면 나한테도 찐친이 있었을까? 임용고시 세 번 떨어지고 움츠러든 나에게 전화로 자기 일 많다는 얘기만 한 시간 동안 늘어놓는 친구 말고, ‘많이 힘들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하고 달려와 주는, 그런 친구.
그네에서 내려와 가방 메고 다시 숲길을 지나 해안가로 빠져나왔다. 아까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늘어난 인구만큼 외로움도 깊어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셀카를 찍고 서둘러 모래사장에서 빠져나왔다. 놀이터 와봤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왔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아까처럼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