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22
“아, 너무 좋아요. 대만 와서 처음이에요. 카페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 거. 맨날 중국어 공부했는데.”
“롱롱도 참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어제도 혼자 핑동 갔다 왔잖아요. 오늘 타이난 간다면서 안 피곤해요?”
“대만 또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근데 어제 팡랴오(枋寮) 갔는데 거기 바다 진짜 좋더라구요. 사람 별로 없고 조용하고. 나중에 언니도 한 번 가보세요, 완전 강추!”
가오슝에서의 마지막 날, 옆방 언니와 같이 점심 먹고 카페에 왔다. 정확히는 지나가던 길에 들어온 건데, 언니가 이별 선물로 커피를 꼬옥 사주고 싶다고 하셔서 잠깐 앉았다 가기로 했다.
평일 오후 3시. 남들 일하는 시간에 이렇게 놀고 있으니 좋았다. 어제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에 방청객처럼 열렬히 반응해 주는 언니와 함께여서 더욱. 하지만 내 마음속 바다에는 걱정의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아무리 타이난까지 한 시간이면 간다지만 캐리어 두 개 끌고 가려면 오래 걸릴 텐데. 예약한 숙소까지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
어느덧 객지 생활 11개월 차이면서도 마치 방금 대만에 처음 온 것처럼 불안에 떨다가 이내 마음을 내려놨다. 오늘 안에만 가면 된다고, 설마 별일 있겠냐고 생각할 줄 아는 대담함이 대만 워홀 동안 생긴 덕분이었다. 비록 커피콩 한 알만한 크기에 불과하지만.
무엇보다, 언니와 함께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무리 대만과 한국이 가깝다지만 정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언니 보러 대만 또 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최대한 즐겨야 했다. 가오슝에서 기적처럼 만난 쮠쮠 언니와의 이 소중한 시간을.
커피만 마시고 가자고 했던 우리는 네 시간이나 더 놀아버렸다. 쇼핑몰 옥상에 있는 놀이공원도 둘러보고, 오락실에서 언니가 농구 게임하는 것도 구경했다. 언니가 운전하는 전기 스쿠터 뒤에 타고 드라이브까지 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모두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집에서 나오니 저녁 8시였다. 계획보다 반나절이나 늦어진 출발에 저녁으로 먹을 샌드위치 하나 사들고 타이난(台南)행 기차에 올랐다. 큼지막한 캐리어들 사이로 두 다리를 구겨 넣은 채 샌드위치 먹으며 숙소 예약 내역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한 말이 적혀 있었다.
‘체크인은 오후 8시까지만 가능하며, 이후 입실은 불가능합니다.’
잠깐. 뭐라고?
손에 쥐고 있던 샌드위치를 포장지 안에 도로 집어넣었다. ‘에이, 설마‘ 하며 예약 페이지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오후 8시 이후에 와도 된다는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오후 10시였다. 팔딱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숙소 전화번호를 눌렀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세 번을 더 걸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큰일 났다. 이대로 타이난 길바닥에서 자는 건가.
덜커덩거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있다가 실시간으로 연락 중이었던 쮠쮠 언니에게 이 사태를 보고했다. 그러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쑤한테 말해봐요. 지금 집에 같이 있는데 아마 돌아오라고 할 거예요.’
정말 그대로 되는 걸까. 잠시 망설이다가 집주인 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다섯 번 정도 울렸을 때, 스피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웨이(喂, 여보세요)? 롱롱, 지금 어디야?”
양손으로 휴대폰을 꼭 쥐고선 쑤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내가 실수해서 오늘 잘 곳이 없어졌다고, 아는 중국어 총동원해서 랩을 읊었다. 쑤님, 제발...
“롱롱, 일단 우리 집으로 와. 하루 더 자고 내일 가.”
역시 쑤는 마마였다. 나의 다정한 가오슝 마마.
“왜 다시 왔어요? 한국 안 가요, 한국 이모 3호?”
“짐도 무거운데 고생했어요. 가오슝이 롱롱 보내주기 싫은가 봐.”
멋쩍게 웃으며 쑤 집에 들어서니 다들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눈물 찔끔 흘리며 작별 인사 나눴던 쑤 아들 아카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모든 내막을 아는 쮠쮠 언니는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한 마디씩 건넸다.
그리고 쑤. 타이난 길바닥에서 노숙할 뻔한 나를 다시 불러준 집주인 쑤는 웃으며 내 캐리어를 받아줬다. 한 달 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그런 쑤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가 조심스럽게 안았다.
“씨에씨에(謝謝, 고마워), 쑤. 그리고 뚜이부치(對不起, 미안해).”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그러나 평소와 다른 마음으로 눈을 떴다. 짐 챙겨 거실에 나가니 쑤와 언니가 “자오안(早安, 좋은 아침)” 하고 아침 인사를 건네왔다. 왜 이렇게 일찍 가냐는 두 사람의 질문에 이미 너무 민폐 끼쳤다고 대답하고는 쑤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젯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부터 줄곧 궁금했던 질문을.
“쑤, 하룻밤 숙박비 얼마야..? 나 얼마 내면 돼..?”
그러자 쑤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옆에 있던 쮠쮠 언니도 같이.
“아니야, 돈 안 줘도 돼. 롱롱은 내 친구잖아.”
마지막까지 다정한 집주인, 아니 나의 친구 쑤를 전날보다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한국 오면 꼭 연락하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쑤처럼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서 빚 갚으러 돌아오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두 배로 불어난 아쉬움을 안고, 진짜 가오슝을 떠났다.
타이난에서 시작될, 마지막 대만 여행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