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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Aug 26. 2024

대만에서 한국인한테 중국어 과외를 받는다는 것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10

대만 워홀 초기에 중국어 과외를 받았었다. 대만에 사는 ‘한국인’한테서 온라인으로.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만의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신청했던 언어중심(외국인들이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다니는 어학당)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온라인으로도 들을 수야 있지만, 백만 원짜리 온라인 수업 대신 9월에 시작하는 다음 학기로의 연기를 선택했다. 제발 그전까지 코로나가 괜찮아지길 바라면서.


대신 한국인에게 중국어 과외를 받았다. 대만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쨌든 중국어는 계속 공부해야 했는데, 더 이상 혼자 공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처음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혼자서 중국어를 배웠었다. 보통 외국어를 배우려면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지만, 임용고시 준비할 때도 돈 아깝다고 혼자 책 사서 공부했던 판국에 당장 먹고사는 데 도움되는 것도 아닌 중국어를 선뜻 큰돈 들여 배우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발음을 연습하고 인강을 들으며 기초 문법을 익혔다. 언어중심에서 쓴다는 교재도 미리 구입해서 본토 중국어와 글자도, 발음도 다른 대만 중국어를 배웠다. 독학이지만 다행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는 성격 덕분에 언어중심 레벨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언어중심 레벨 테스트 결과 ('성적'이 내가 받은 점수, '범위'의 오른쪽 숫자가 만점 기준)


하지만 자가격리 후 '진짜 대만'에 던져지고 나서 절실히 느꼈다. 중국어를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시장에서 누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고, 마트에서 직원에게 이게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중국어로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지만 나에겐 대만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하우스메이트들이 있긴 했어도 거의 하루종일 혼자 지내던 시기였기에 외롭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한 달에 23만 원짜리 말벗 서비스를 신청했다.


슬프게도 말벗 서비스는 한 달 만에 끝났다. 당연히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진짜 사람' 앞에서 무슨 말이라도 내뱉을 수 있다는 건 좋았고, 대만에 살고 계신 선생님이시기에 대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였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열심히 숙제를 한다고 해서 나의 중국어 실력이 늘지는 않았다. 고작 한 달 듣고 그러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본 입장으로서 느껴지는 게 있었다. 이 수업은 내 공부 방식이랑 달라서 큰 효과가 있진 않겠구나 하는 그런 느낌. 


한국인 선생님과 함께 했던 온라인 중국어 과외


신청할 때는 중국어든 한국어든 같이 얘기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과외를 거듭할수록 중국어보다 한국어로 말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내가 지금 이 돈 내고 뭘 하는 거지?'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더욱이 성격상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남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라 과외가 끝나고 나면 그날 배운 중국어보다 선생님이 한국어로 해준 얘기가 더 기억에 남았다. 아무리 외롭다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고독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스스로 비참한 것보다 홀로 외로운 편이 견디기 쉬울 것 같았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만약 이 기억 그대로 과외를 들을지 말지 고민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과외받는 걸 선택할 것이다. 과외를 하면서 혼자서도 중국어를 잘 배워오고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확인받았고 그 자신감으로 시장에서 당당하게 이건 얼마냐고 물어볼 수 있었다. 또한 하루 24시간이 자유로운 백수에게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짜리 고정 스케줄이 있다는 자체가 소중했다. 특히 땡볕에 고추 따고 있는 엄마아빠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쌩판 놀고 있는 건 아니다'라는 그 느낌이 대만으로 도망쳐온 장녀의 죄책감을 아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도 했다.




선생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 말벗이 되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중국어 연습도 하고 한국어로 수다 떨며 힘들고 외로웠던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祝你一路順風(앞날이 순조롭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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