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타 치즈 / 아보카도 햄치즈 오픈 토스트
오늘도 먹고살기 위해 요리를 합니다.
우울해도 배는 고프고, 슬퍼도 요리하다 보면 괜찮아지니까요.
2024년 8월 28일 수요일 점심
눈 뜨자마자 배가 고파 냉동실로 달려가 바게트를 꺼냈다. 성신여대의 '어썸피넛'이라는 빵집에서 사 온 바게트인데 적당히 고소하고 신맛 나는 게 맛있다. 바게트가 녹을 동안 요가 스트레칭을 하는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무슨 샌드위치 해 먹지?'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재료들을 떠올려 봤다. 어제 리코타 치즈 녹여놨고 아보카도도 있고 방울토마토랑 햄도 있고, 아 땅콩버터도 먹고 싶네. 혼자 살지만 식재료 수집 욕심이 많아 우리 집에는 늘 이런저런 재료들이 많다. 그래서 문제다. 다 먹고 싶어서. 상상 속에서 요가 매트 위에 냉장고 속 재료들을 모조리 꺼내 이리저리 조합해 보다 결정했다. 샌드위치 말고 오픈 토스트를 해 먹자. 그럼 한 번에 두 가지를 먹을 수 있으니까.
스트레칭을 끝나고 주방으로 가니 바게트가 딱 적당하게 해동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사 온 3만 원짜리 빵칼로 바게트를 반으로 갈라 후라이팬 위에 올렸다. 바게트가 따끈하게 데워지는 동안 또 고민했다. 뭐부터 만들어야 할까.
일단 거실 창가로 가서 바질 잎을 따왔다. 식물 킬러인 내 손에서 어찌저찌 일 년 넘게 생존해 있는 기특한 바질이들. 한동안 수확을 안 해서 엄청 커진 바질 잎을 한 아름 따와 물로 씻어 다져주었다. 스테비아 방울토마토 다섯 알과 양파를 꺼내 자르고 바질 잎과 바질 페스토, 올리브를 넣고 섞어주었다. 보통 발사믹 식초를 넣고 상큼하게 버무려 먹는데 이렇게 바질 페스토를 넣는 건 처음이었다. 과연 어떤 맛일까.
바삭하게 굽힌 바게트 위에 올리브유를 두른 다음 리코타 치즈를 손으로 듬성듬성 올려주고 바질 페스토에 버무려둔 방울토마토를 올렸다. 달콤함을 더해주기 위해 발사믹 글레이즈도 지그재그로 뿌린 다음 마지막으로 식감을 더해줄 견과류도 뿌렸다. 하얀 리코타 치즈와 빨간 토마토, 초록 바질 잎, 까만 올리브의 조합. 오, 좀 이쁜데? 플레이팅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이렇게 쌓아 올리기만 해도 제법 괜찮아 보이다니, 내 눈에 콩깍지인 걸까 아님 조금씩 똥손을 탈출하고 있는 걸까.
다음은 아보카도 토스트 차례. 사실 리코타 치즈 토스트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 잠시 고민했다. 혼자 두 개 다 먹으면 너무 돼지 같나. 그래도 땅콩버터 바른 토스트가 먹고 싶어서 그냥 둘 다 먹기로 했다. 뭐 어때, 어차피 바게트는 하나만 먹으니까 괜찮겠지.
바게트 위에 역시 '어썸피넛'에서 사 온 땅콩버터를 버터나이프로 듬뿍 떠서 펴 발라 주었다. 아, 이 고소한 냄새. 역시 두 개 다 먹어야겠다. 땅콩버터 위에 양상추와 빨간 파프리카, 에멘탈 치즈와 이탈리안 햄, 계란후라이를 올리고 제일 위에는 아보카도를 올렸다. 나름대로 비주얼을 생각해서 아보카도를 제일 꼭대기에 입주시킨 건데 잘라놓은 지 며칠 된 거라 아보카도가 까맣게 변해버렸다. 뭐 또 어때, 나 혼자 먹을 건데. 마지막으로 그라인더로 통후추 착착 뿌려주면 준비 끝.
이 아니라 갑자기 커피가 땡겨서 후다닥 G7을 꺼내왔다. 커피 원두가 똑 떨어진 지 제법 됐지만 귀찮아서 아직 안 사고 있었는데 오늘 사야겠다. 인스턴트 커피 말고 맛있는 드립 커피가 먹고 싶다. 투명한 유리잔에 얼음 듬뿍 넣어 시원한 아이스 커피 만들어주면 진짜 준비 끝.
식탁에서 사진 몇 방 찍어주고 드디어 자리에 앉았다. 욕망이 부른 두 개의 오픈 토스트. 역시 과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왠지 오늘은 꼭 둘 다 먹고 싶었다. 그러면 요리를 하면서도 가라앉아있던 마음이 조금은 좋아질 것 같았다.
아보카도 토스트는 생각했던 그 맛이었다. 땅콩버터와 계란, 아보카도의 조합은 언제나 무적이다. 까맣게 변해버린 아보카도라도 맛있기만 했다. 아보카도 키우느라 사람들이 쓸 물도 부족하다지만 가끔 땡길 때는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리코타 치즈 토스트가 예상외였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리코타 치즈의 담백 고소한 맛과 스테비아 방울토마토의 달콤함, 바질의 향긋함이 정말 잘 어울렸다. 분명 어제는 스테비아 토마토 먹으면서 너무 달아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토스트 한입 먹자마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토마토도 역시 단 게 맛있다. 코 안 가득 퍼지는 싱그러운 바질 향도 행복함을 더해주었다. 직접 기른 바질이라 더 향긋한 것 같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바질들아.
요즘 '태계일주'를 보면서 밥을 먹지만 오늘은 책을 읽으면서 먹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플리를 틀고 어제 빌려온 책을 펼쳤다. 헤르만 헤세의《삶을 견디는 기쁨》. 말 그대로 요 며칠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서 빌려온 책이다. 이 대단한 작가는 무엇이 힘들었길래 '견딘다'는 표현을 썼는지 궁금했다. 입 안 가득 토스트를 오물거리며 책을 읽는데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문득 우리가 우리의 삶을 너무나 사소하게 여기고, 시원찮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하늘이 있는 풍경으로 더 자주 시선을 옮기고, 나무가 있는 자연으로 더 자주 발걸음을 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더 확보하며, 아름다움과 거대함의 비밀을 느낄 수 있도록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말이다."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하늘이 있는 풍경'과 '나무가 있는 자연'. 요즘 우울한 일상 속에서도 그나마 잘 찾아나가고 있는 것들이다. 파란 하늘을 보며 이쁜 구름을 찾아보고 붉게 물들어가는 해 질 녘 하늘을 보며 멍 때리고 나무가 있는 숲 속을 걷고. 일 안 하는 백수라 '자기 자신만의 시간'이 너무 많은 건 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며 잠시 먼산을 쳐다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몬스테라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친구가 선물해 준 몬스테라 화분. 일주일 전부터 새 줄기가 삐죽 올라오더니 드디어 새 잎이 활짝 펼쳐진 그 몬스테라. 헤르만 헤세가 말한 '나무가 있는 자연'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내 옆에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바질이들도 바질 '나무'였다. 이 집에는 늘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몬스테라와 바질이들이 나와 함께 해주고 있었다. 몬스테라 선물해 준 친구한테 이따 카톡 해봐야겠다. 덕분에 덜 외롭다고 얘기해 줘야지.
혼자 토스트 두 개를 다 먹고 나니 정말 배불렀다. 행복했다. 먹고 싶었던 걸 다 먹었으니까. 그래도 이왕이면 혼자보다 같이 나눠먹을 사람이 있으면 더 좋겠다. 까매진 아보카도라도 괜찮다고 해줄 그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