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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삶이 버겁거들랑(들풀시 4)

요양원에서 마주친 나의 미래

by 들풀

그대!

삶이 버거운 날에는 요양원에 가보자

그곳에는 생각이 옅어져 사랑이 고픈

철이, 숙이, 순이, 임이, 자야…

그리고 내가 있다. ​


이제는 가족들의 정마저 끊어지는데도

저들은 애써 추억만을 붙들고

모르는 척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순이는 한밤중에 퍼뜩 정신이 아득해져서

살던 아파트를 찾아

다시 탈출을 감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

미래의 풀꽃부부의 모습일지도

옥이는 직접 김밥 두 줄을 말아서

오랜 친구들이 있는 동네 경로당에 가서

솟구친 추억에 목이 메어

꺼이 꺼이 한정없이 울면서

추억에 젖어 한숨을 지어도 또 좋을 일이다. ​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저축하지 않은 삶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데도

저들은 더 쉽게 떠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헛된 인생놀이

버거운 세상살이

바쁘게 챙겨왔던

삶의 흔적들이 거세되고

“배고파, 밥 줘!”


정이 고프다고

피 토하는 절규여!

그래, 그대!

삶이 버겁거들랑

요양원에 가보자

생각이 옅어지고

한숨도 잦아들고

이름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저이가


결국 내가 아니던가?

그대가 아니던가? ​


괜찮아, 그대..

아직은 내가 그대 곁에 있고

그대 이름을 불러줄 수 있으니

내가 저에게

저가 나에게

임이가 희야에게

자야가 주야에게

토닥 토닥


그렇게 또 어제 같은 오늘이 지나가고

오늘 같은 내일이 다가오고 있다

네모진 회색콘크리트 요양원에는

급하게 째깍대던

시계바늘이 멈추어 서있다


삶이 재가 되어가고 있다


(2025. 7. 요앙원에서, 들풀 ​)

요양원에서, 어르신들과 그림을 그립니다

저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취득을 위해 실습을 했습니다.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은

근처 동네에 살던 분들이 많은데

산책을 하다 만나는 동네 아주머니는,

"아지매, 우짜다가.."

한숨을 짓습니다.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며 마을산책도 하고,

절에 가서 약수물도 떠오고,

오일장에도 다녀오지만..

어느 순간 예순여섯의 실습생 들풀이 어르신인지 어르신이 들풀인지 헷갈려서 괜스레 조바심이 납니다.


날씨가 무척 더운 여름날 실습을 했는데

벌써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부디 부디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견뎌 내시기를 소망합니다.


#들풀시 #들풀사는이야기 #삶 #들풀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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