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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띄우고(들풀시 2)

♡서른 다섯해 전 오늘, 들풀과 들꽃은 결혼을 했습니다.♡

by 들풀
들꽃에게 쓴 고백시

한참을 우리의 날을 위해 기다려왔다.

이제 때가 되었고 우린 떠나야한다

배를 만들던 인고의 세월

물을 기다리던 갈증의 시간들

섬뜩하게 명멸하던 우리의 기억들


​만남의 순간은 짧지만 영속적일 수 있다

우린 결코 홀로일 수 없으며

긴 항해를 함께 해야 할 동반자

포구의 희뿌연 물보라와 갈매기 행렬

나의 바다여, 나의 하늘이여

이제 날아 오를 수 있다


​우리의 출발을 위해 나와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얼굴은 또 얼마나 생경스러운가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손을 잡자

그윽한 눈길로 마주 보며

고요와 평화를 가슴 속에 채우고서


손을 흔들진 말자

우린 떠나지 않으며

끊임없이 실어 날라야 한다

​물결은 잔잔하고 미풍은 살랑거린다

지금이다

하늘이여, 이제 떠나고자 합니다


바람을 지고 물결을 이고

그저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슬픔도 좌절도 기쁨도, 그저

강물이 바다에 모이듯이 갈무리하고


​이제 떠납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뚝 서서

세상이여!

바다여!

내 사량하는 이여!


1989. 9. 27. 들풀

고백시 원본 사진

❤️ 35년 전 오늘(1990. 10. 28.), 들풀과 들꽃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 일년 전에 우리는 만났어요. 당시 나는 도시의료보험 지소장으로 의료보험 가입을 위하여 동네를 뛰어 다녔지요. 그때 홍보를 위하여 금융기관에 들렀는데..


내 님을 만나고 말았어요. 가난한 촌놈이 염치가 없어 사귀자고 고백을 할 수는 없었어요. 일주일을 고민한 끝에 노트에 이 시를 써서 건넸답니다.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 OK!"

그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어요.

빚을 얻어 보증금을 마련하고, 들꽃이 모은 돈으로 가재도구를 샀어요. 그러다가 그 몇댤 후에 결혼식을 올린 겁니다.


숟가릭 2개, 덮던 이불 1채, 다리미 1개가 제가 가져온 전부였어요. 궁색한 소리 한다고 들꽃에게 한소리 듣겠지만..

그 미안한 마음이 살면서 옅어 지더이다. 그래도 언제, 어디서든 내 곁에 있는 사람! 힘들면 등 두드려주고, 같이 울어주고, 우산을 가지고 있어도 비맞아주는 그런 사람..


아내가 있어 나는 숨쉬고, 울고,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리석게도 자꾸 싸우고 부딪힙니다. ㅎㅎ..

나는 전생에 어떤 복을 지었길래 아내를 만났을까요? 읽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들풀책쓰기 #들풀사는이야기 #들풀시 #고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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