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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께 전해들은 돈담야학가

무명지사가 만든 돈담야학가를 들어보세요

by 들풀

우리 민족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겼고, 1910년 8월 29일에는 경술국치로 나라 전체가 일본 손에 넘어갔습니다. 엄니가 태어난 1919년의 만세운동도 일제의 압제를 끊어내지 못했는데, 암울한 시대를 살던 이땅의 민초들은 배고픔 속에서 글을 배우고, 아이들에게 조국광복을 생각하게 하는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오늘 전하려는 이 노래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우국지사가 근 100년 전에 당시 우리 동네(돈담마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야학당 노래입니다. 17년 전(2008년), 당시 구순이셨던 엄니로부터 들은 것을 다시 옮겨 적습니다. 엄니와 저의 대화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엄니가 태어난 1919년의 기미년 만세운동

"막내야!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네게 얘기를 들려주고 싶구나. 내가 시집온 지 이태쯤에 왜놈들이 전쟁(만주사변)을 일으켜 생활이 참 어려웠단다. 그 해 가을 타작을 했는데, 왜놈들이 공출로 다 빼앗아가고 겨우 겨울양식을 하려고 나락(벼) 한 섬을 소 마구간에 숨겼단다."


"왜놈이 그런 짓까지 했습니꺼?"

"왜놈보다 더 지독한 놈이 앞잡인기라. 그때 우리 동네 00양반(택호는 밝히지 않음) 매제가 구장 질을 했는데, 그 놈이 앞잡이가 되어 왜놈들을 데려와 소 마구간을 창으로 쑤셔서 결국 그 양식을 찾아 빼앗아 갔단다. 식구 많은 우리 집 사정을 아는 구장 질 하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니, 그때 울매나 서럽고 원통하든지…."


"그라모 우째 살아내셨습니꺼?"

"우리는 죽지 못해 풀뿌리와 나무껍데기를 벗겨 먹고 견뎠제. 아무튼 그 이듬해 봄, 나는 새벽에 산으로 올라가 고사리를 꺾고 있었단다. 중참 때쯤 되었는데, 너거 할무이가 찾아왔더라. '며늘아,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 아침도 안 묵고, 배가 울매나 고푸노?' 하더마는 핏기(식물의 새순)를 한 줌 뽑아서는 까서 주더구나. 그걸로 허기가 면해지겠냐마는 목이 멕히더라. 그라더마는 송구(소나무 속껍질)를 두 개 꺾어서 나누어 먹었는데, 시어머니의 그 마음이 지금도 생각나는구나."


엄니는 3.1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기미년(1919년)에 나셨으니, 올해(글을 쓴 2008년) 꼭 아흔이 되십니다. 열여섯에 이 동네에 시집와서 세 해쯤 지난 일이라 하시니, 지금부터 칠십오 년 전쯤의 이야기입니다.


"그 어려운 세월 중에도 사람들은 글을 배웠단다. 너는 우리 동네에 야학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 보았느냐?"

"저는 들어보지 못했는데예."


"그럴 끼다. 그때 우리 동네에 ‘우산양반’이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고 하는데, 아마 왜놈 밑에 벼슬하기가 싫어서 고향에 묻혀 지낸 모양이다. 그 양반도 때거리가 없을 정도로 형편이 나빠서 너거 작은집 터에 오두막을 지어 겨우 바람을 가리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야학을 시작했단다."


"엄니도 다녔습니꺼?"

"못 댕겼다! 그때 나는 한참 시집살이를 하던 새댁이었는데, 너거 삼촌 셋은 다녔단다. 그란데 그때 너거 삼촌들이 부르던 <야학노래>가 생각이 나네. 들어볼래?"


엄니는 조용히 노래를 시작합니다. 읊조리는 가락이 참 서럽습니다.


<돈담 야학가>

빛나고 색나는 우리 야학은 김동아의 노력으로 창설되었네.


잠깨어라, 꿈 깨어라, 청소년들아!


이십세기 문명바다 방방곡곡을 모두 모두 학문으로 쫓아 나오세.


문명의 기초는 학문에 있고, 농촌의 짓는 것은 근로가 제일!

인생의 명령은 학습에 있고, 어화, 우리 청소년들아!


힘쓰세, 힘쓰세, 학농 힘쓰세.

활발한 정신으로 공부를 하여

빼앗긴 우리 조국 다시 찾아서

금수강산 삼천리 태극기 꽂고

만세 소리 하늘 높이 높이 부르자!


"김동아는 돈담야학을 만든 우산양반의 이름인데, 그 당시 야학을 다니는 사람이 스무 명 정도 되었단다. 돈을 따로 받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분필 값 정도는 챙겨 주었던 것 같더라. 그 뒤에도 뜻있는 사철 푸른 상록수같은 사람들이 야학을 세워 사람들의 까막눈을 뚫어 주었단다.


내가 이 노래를 너한테 불러주는 이유는, 니가 욱이한테 들려주어서 우리 욱이가 나라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란다. 그때 너거 삼촌들은 야학에 댕긴 덕택에 한글을 깨우쳤고, 그런 사람들의 희망이 합쳐져서 우리나라가 왜놈한테서 독립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야학당 상상그림

엄니의 희망대로, 저 야만적인 일본제국주의 칼날 앞에서도 학동들에게 조국의 독립을 일깨우고 노래를 가르쳤던 이름 없는 시골야학 선생을 본받아, 제 아들도 불의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참용기, 그리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회의 소금같은 젊은이로 자라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 저 노래를 구술하실 당시(2008년) 구순이셨던 엄니께서 총기를 잃지는 않으셨지만, 연세가 높아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들풀마음쓰기 #돈담야학가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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