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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Mar 30. 2024

01.3.2.3.7. 꿈꾸는 자, 요셉의 연대기-2

요셉과 담장을 넘은 가지

01.3.2.3.7.6. 유일한 꿈의 해석자 요셉  


인간은 무엇이 진정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른다. 너희와 같이 요셉도 뭐가 뭔지 잘 몰랐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또 자신의 주인 보디발이나 술 맡은 대신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도 가졌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요셉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다. 술 맡은 관원장에게 청탁한 사실 이 알려져 자신을 감옥에 가둔 주인 보디발에 의해 한차례 곤욕을 치렸다. 또 그런 후에도 만 2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자, 그 고통은 더 심해졌다. 요셉을 도울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보디발은 요셉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또 감옥에 있는 왕의 죄수들은 쉽게 복권될 수 없다. 혹 요셉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복권된다 해도 그의 권력이 보디발보다 높아야 하고 바로를 설득하여 요셉의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혹 보디발보다 높은 권력을 소유한 이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요셉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셉이 무죄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러데 유죄라는 증거는 가장 확실한 현장의 피해자가 있다. 바로 보디발의 아내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이 강간당하려 하자 소리를 질렀고 요셉은 도망갔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요셉의 겉옷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주장대로면 요셉은 벌거벗고 도망을 갔을 것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강간을 당할 뻔했다는 시간에 벌거벗은 채로 달아났다. 그 모습을 모든 집안사람들이 보았다. 모든 정황이 요셉이 강간 미수범이라 증거하고 있다. 요셉의 결백은 오직 요셉 자신의 주장 외에는 증거가 없다. 이러므로 요셉을 풀어줄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요셉은 아주 정교하고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빠졌다. 세상에서는 때로 거짓말이 더 힘이 있을 때가 많다. 특히 거짓말하는 자들의 거짓은 모든 사람들을 미혹하여 이성을 마비시키는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그 속에 거짓의 아비 마귀의 힘이 깃든듯한 거짓들이 종종 세상에 나타나 무고한 자들을 정죄하고 범법자로 만드는 경우들이 있다.

요셉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비책은 오직 우리에게만 있다. 인간은 요셉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요셉이 이집트 왕 파라오의 버금 치리자가 되게 할 능력이 있다. 파라오와 애굽(이집트) 전체가 요셉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면 파라오는 요셉을 절대적으로 의지할 것이다. 요셉이 필요함으로 요셉을 감옥에서 꺼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조성했다. 그리고 요셉과 함께 하여 우리가 그 꿈을 주고 해몽해 준 술 맡은 대신을 적절히 사용할 환경도 만들었다.  
  
그 대신에게 꿈을 주었던 것처럼 파라오에게도 꿈을 주었고 그 꿈의 내용으로 인해 파라오가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게 했다. 그 결과 이집트 전체의 샤먼들이 그 해몽을 찾게 되었으나 그 해몽은 어떤 귀신들에 의해서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꿈을 준 자가 바로 유일무이한 나이므로 내가 가장 강한 전능자이므로 나를 대적해 그 꿈을 풀어낼 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른 귀신들은 모두 입을 닫아야 했다. [^1] 그러니 내가 준 꿈은 오직 나만이 풀어 해몽할 수 있다. 어떤 자가 그것을 거짓으로 푼다면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거짓이 탈로 날 것이다. 그 일로 인한 파라오의 진노는 무서워 목숨을 보존키 어려울 것이므로 감히 누구도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나는 술 맡은 대신을 사용했다. 그에게 생각을 불어넣었다. [^2] 요셉을 기억케 한 것이다. 만약 이집트의 모든 샤먼들이 그 꿈의 해몽에 실패한 그 시점 이전에 그가 요셉을 기억해도 안된다. 그러면 요셉의 능력이 파라오에게 그렇게 절대적 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에는 샤먼들이 많았기 때문에 파라오는 이전에 만난 꿈이나 어떤 징조에 대한 답을 그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요셉이 그저 그런 샤먼들 중 하나로 취급을 받는다면 파라오의 절대적 신임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이집트의 샤먼들이 실패할 때를 기다렸다. 또 그로 인해 파라오의 불안이 극도에 달할 때를 기다렸다. 파라오는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자신도 샤먼이었고 자신에게 답이 주어지는 경우들이 있었다. 또 자신에게 답이 주어지지 않으면 자기 보다 더 강한 귀신을 섬기는 다른 샤먼이 답을 주었다. 그런데 이집트 내의 모든 샤먼들이 답을 찾지 못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도 샤먼이었으므로 그 꿈의 심각성은 느꼈다. 그리고 그 꿈이 이집트의 멸망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꿈을 해석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이집트와 주변의 샤먼들을 다그쳐도 그들은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술 맡은 대신의 말에 의하면 신에 의해 꿈을 해석하는 요셉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 해석이 틀린 적이 없다고 했다. 또 그 꿈이나 주어진 예언을 통해 일을 처리하면 그와 함께 하는 신이 그 결과를 언제나 증명했다고 했다. 노예로 있을 때나 심지어 왕의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언제나 동일했다. 이를 조사하려고 왕의 감옥에서 사면되어 복권된 자들을 조사했는데 모두 요셉에 대해 동일한 증언을 했다. 감옥 안에 있는 자들도 조사했는데 요셉을 아는 모든 자들이 동일한 증언을 했다. 그의 해몽은 모두 이루어졌으며 그를 통해 처리되는 모든 일은 그가 섬기는 신의 뜻을 따른 것으로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보았다. 이는 요셉을 자신의 아내를 강간하려 한 강간범으로 생각하여 감옥에 가둔 보디발에게서도 확인되었다. 더 확인이 필요 없었다. 보디발은 결코 요셉에 대해 거짓으로 좋은 말을 해줄 입장이 아닌 것이다. 파라오는 이제 확신했다. 그는 가장 큰 신을 섬기는 자며 그를 통해서 그 신이 말하는데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만이 자신과 이집트를 살릴 수 있다. 우리의 모사와 기묘한 일이 보이는가?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사람을 통해 정확한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이제 파라오는 요셉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요셉은 가장 강력한 신의 절대적 대언자였다.  
  
파라오는 요셉을 불렀다. 요셉이 술 맡은 대신에게 자신의 신원을 부탁한 지 만 2년 후였다. 요셉은 이미 포기한 마음이었다. 무언가 기대하더라도 2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면 술 맡은 대신이 자신을 잊었거나 아니면 파라오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음일 것이라 짐작했다. 소식이라도 전했으면 답답하지나 않을 것인데 소식도 없는 것을 보면 분명 대신은 자신의 은혜를 잊고 배신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때 파라오의 부름을 받은 요셉은 이것은 자신이 한 어떤 일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의 주권에 의한 기적임을 느꼈다. 비록 술 맡은 대신을 통해 파라오가 자신을 불렀지만 자신을 부른 것은 우리(하나님)이지 결코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감옥에서 나온 요셉은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코트를 입은 후 처음 좋은 옷을 입어보았다. 노예로 팔려 올 때 형들에 의해 아버지의 코트는 벗겨졌다. 그리고 그 코트는 찢어졌다. 거기다 피까지 묻어서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거짓 증거로 사용되었다. 이집트까지 끌려 올 때 요셉은 옷이 없었다. 겨우 속옷을 입고 있었고 밧줄에 묶인 채로 이집트까지 끌려 왔다. 그 이후 보디발의 노예로 있을 때에는 노예들의 옷을 입었다. 그 노예들 중 가장 신뢰받는 자가 되었지만 그가 입은 옷은 여전히 노예의 옷이었다. 이제 파라오를 만나러 가는데 그는 그에 맞는 옷을 지급받아 입었다. 말끔히 수염도 깎았다. 파라오를 만나 꿈의 해몽을 해주고 그 꿈에 나오는 일들에 대한 대책까지 마련해 주었을 때 요셉은 파라오가 입는 옷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파라오의 마차를 타게 되었다. 파라오는 자신의 옥쇄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고운 린넨으로 만든 고급옷을 입혔다. 그 옷은 귀한 것으로 파라오 자신과 같은 고귀한 자가 입는 것이었다. 이집트와 같이 더운 기후에서 입을 수 있는 최상품의 옷이었다. 파라오가 목에 두르는 금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또 파라오만 쓸 수 있는 파라오의 마차에 태웠다. 마차가 지나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엎드려 요셉에게 절하게 했다.  또 태양신을 섬기는 온 제사장의 딸을 아내로 주었다. 요셉에게 결혼을 통해 권력의 정통성을 부여해 주었다. 신정일치였던 이집트 사회에서 종교권력까지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파라오는 요셉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요셉은 예표[^3]의 사람이다. 요셉의 삶은 다양한 형태로 나를 나타낸다. 요셉의 옷도 예표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요셉은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의 가장 사랑하는 상속자로 대접을 받았다. 그때 입었던 코트는 그것을 상징한다. 이것도 나의 예표다. 나는 원래 하나님의 아들로 성육신 했다. 바로 상속자다.  

요셉은 살해의 위협을 겪고 이집트로 팔려갔다. 나는 헤롯의 살해 위협을 받고 이집트로 피했었다.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했으나 종으로 팔려 아버지에게는 죽은 아들과 같이 되었다. 요셉의 코트는 찢어지고 피가 묻어 죽음의 증거로 사용되었다.  이는 나의 십자가의 예표다. 나는 내 민족, 나의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해 죽었다.  나는 십자가에서 피흘림으로 죽었다. 나의 옷은 병사들에게 빼앗겼고 또 찢어져 나뉘었다.  
  
요셉은 30세에 총리로 세워졌다. 그는 바로의 버금 수레를 타고 왕의 옥쇄반지를 꼈다. 왕과 같은 통치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었다. 이도 나의 예표다. 나는 30에 너희 인간들을 위한 공생애를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너희 앞에 세워졌다. 그리고 죽음을 통과하여 너희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아들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았다. 나는 너희를 구하는 인류의 구원자가 되었다.  



요셉은 꿈의 해몽자요, 꿈의 예언을 따라 미래를 대비하는 비전의 실현자가 되었다. 그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겠다.

요셉은 파라오에게 들어갔다. 파라오는 요셉에게 꿈에 대해 묻고 대답을 들었다. 파라오와 요셉의 대화는 성경에 나온 대로 다음과 같다.

15 파라오가 요셉에게 말하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너에 대하여 들으니, 너는 꿈을 들으면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 하니,

16 요셉이 파라오에게 대답하기를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평안한 답을 주실 것입니다." 하므로,

17파라오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꿈속에서 보니 내가 나일 강 제방에 서 있었는데, 18나일 강으로부터 살이 찌고 보기 좋은 일곱 암소들이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19또 보니 다른 일곱 암소들이 그것들의 뒤를 따라 올라오는데 앙상하고 매우 흉한 모습으로 야위었으며 그것들처럼 흉측한 것들은 이집트 온 땅에서 아직 본 일이 없었다. 20그 야위고 흉측한 암소들이 처음의 살이 찐 일곱 암소들을 먹었다. 21그것들이 먹었으나 먹은 것 같지 않고 그 모습이 전과 같이 흉측하였으며 그리고 나는 깨어났다.

22또 내가 꿈에 보니, 이번에는 일곱 이삭들이 한 줄기로부터 올라오는데 알차고 충실했다. 23그런데 보니 약하고 동풍에 시들고 겉마른 일곱 이삭들이 그것들의 뒤로 나오고 있었고, 24그 겉마른 이삭들은 그 충실한 일곱 이삭들을 삼켜 버렸다. 내가 마술사들에게 말하였으나 내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구나."
(창세기 41:15~24 바른성경)

요셉은 이 꿈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했다.

Genesis 41:25-32 바른

25요셉이 바로에게 말하였다.

"바로의 꿈은 결국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하고자 하시는 일을 바로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26일곱 마리의 보기 좋은 암소들은 곧 일곱 해이며, 일곱 개의 알찬 이삭들도 일곱 해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의 꿈입니다.

27그들 뒤를 따라 올라온 일곱 마리의 흉하고 야윈 암소들은 일곱 해이며, 동풍에 시들고 겉마른 일곱 개의 이삭들도 일곱 해의 흉년입니다.

28이것은 제가 바로에게 말한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하고자 하시는 일을 바로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29보십시오, 온 이집트 땅에 칠 년 동안 큰 풍년이 올 것입니다. 30그 후에 칠 년 동안 흉년이 들어서 이집트 땅의 모든 풍년을 잊어버리고 이 땅이 흉년으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31뒤에 오는 그 흉년이 너무 심하여서 이 땅에서 풍년이 있었던 일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32바로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꾸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결정하시고 그 일을 서둘러 행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이 꿈의 해석 방식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렇다. 숫자와 각각 소와 이삭들의 상태를 흉년과 풍년 그리고 7 년에 대입하여 풀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겠다. 그렇다면 내가 인간들에게 주는 모든 꿈을 이와 같은 법칙을 사용하여 해몽할 수 있는가? 답은 NO다. 요셉이 말한 것과 같이 꿈의 해석은 나에게 있다. 결코 인간이 발견한 어떤 법칙에 의해 꿈이 해석될 수 없다.

만약 인간의 알레고리 한 해석방식에 의해 공통적인 알레고리 한 해석이 가능하다면 이 꿈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알레고리 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 거짓 해석
살진 소 일곱은 7년 동안 바로와 신하들이 건강하여 아프지 않을 징조다. 또 마른 소 일곱이 앞의 살진 소를 잡아먹는 것은 7년이 지난 후의 7년 동안 바로와 신하들이 아플 것인데 그 아픔이 심히 심하여 앞의 건강하였던 시절들을 모두 잊을 만큼 아파진다. 이삭에 관한 것은 농작물의 생장과 병충해와 관련이 있다.

두 번째 거짓 해석
살진 소 일곱은 7년 동안 파라오의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 건장한 노예들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 공사가 순조로울 것이라는 징조다. 마른 소 일곱은 앞의  7년과는 다르게 후의 7년은 약하고 병든 노예들이 투입되어 공사를 망치고 그 망친 공사로 인해 앞에 한 공사조차 보존키 어렵다는 것이다. 이삭에 관한 것은 이 노예들을 먹일 식량인데 앞의 7년은 식량 공급이 원활할 것이라는 징조다. 뒤의 7년에는 먹일 식량이 모자라서 앞에 건장하던 노예들도 모두 병들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종류의 해석들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틀린 해몽이다. 이렇게 꿈의 해몽은 특별한 규칙성에 의해 자동으로 번역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너희들이 사는 세상에 이런 꿈에 관한 해몽집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귀신들이 주는 꿈이 어찌 되었건 그것들로는 내가 내는 수수께끼 같은 꿈들을 해석할 수는 없다. 오직 내가 주는 꿈의 해몽은 오직 나에게만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예언과 말들도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본문의 뜻을 파악하고 문장의 뜻을 파악하는 객관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본문이 전달하려는 원래 의미를 파악하는 석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본문을 통해서 그날 그 시에 모인 자들에게 내가 그 본문을 어떻게 적용하라고 요구할 것인가는 모두 나의 주권에 달려 있다. 그들 각자의 삶에 적용을 하든지 그들의 공통된 하나의 교회에 적용을 하든지 모두 나의 감동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의 내용과 완전히 동떨어진 적용이어서도 안된다.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에 따르는 합리성을 사랑한다. 또한 그에 따르는 일반율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석의학과 석의의 결과로 나온 해석에 따르는 통찰을 가진 올바른 적용을 따른다. 이는 성경의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 문화적, 배경적 차이를 인식함을 포함한다. 그리고 너희가 사는 시대와 나라와 지역적 배경을 인식하고 성경의 근본적인 메시지를 분별 있게 적용한다. 이 모든 단계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되 그 감동을 또 관찰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되 그 모든 과정에서 분별을 거쳐야 한다.


01.3.2.3.7.7. 꿈의 실현자 요셉


요셉은 나의 꿈을 해석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집트에 적용하여 실현하는 역할도 맡게 되었다.


01.3.2.3.7.7.1. 이집트를 위한 꿈의 실현


요셉은 꿈의 내용에 따른 대비를 해야 할 것을 바로에게 건의했다.

"33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 하나를 찾아서 그를 이집트땅 위에 세우십시오. 34바로께서는 이같이 하셔서 이 땅에 관리들을 임명하시고 칠 년 동안 풍년이 들 때 이집트 땅 소출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들이십시오. 35그 관리들은 앞으로 올 그 풍년에 모든 곡물을 거두어들여 바로의 권한 아래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쌓아 두게 하십시오. 36그 식량이 이집트 땅에 있게 될 칠 년의 흉년을 대비한 양식이 되면,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Genesis 41:33-36 바른)

이 말을 들은 바로와 대신들은 모두 요셉을 주목하고 이 역할에 요셉이 가장 적합한 자임을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그리고 바로에 의해 요셉은 이집트의 버금 통치자로 세워졌다. 이집트의 운명이 달린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요셉에게 전권을 주어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다.

요셉은 풍년 기간에 생산된 곡식을 저장고에 저장했다. 곡식을 거둔 것을 더 이상 셀 수 없을 만큼 저장했다. 그 곡물은 7년 풍년의 생산물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 지대는 원래 곡창지대였다. 그런 곳의 풍년이라 오분의 일이라도 그 양은 엄청났다. 이제 이집트는 앞으로 올 7년의 흉년을 견디고도 남을 양식이 생겼다.


01.3.2.3.7.7.2. 이스라엘을 위한 꿈의 실현

01.3.2.3.7.7.2.1. 요셉의 꿈


바로와 이집트를 위한 꿈의 실현자가 된 요셉은 이제 어릴 적 자신의 꿈의 실현자가 되었다. 바로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하고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다.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은 모두 요셉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01.3.2.3.7.7.2.1.1. 요셉의 첫 번째 꿈


요셉의 첫 꿈은 곡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열한 곡식단이 요셉에게 절하는 것이다. 형들이 후에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이집트에 와서 요셉에게 절하게 될 것을 예언 한 꿈이다.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이집트의 7년의 풍년 후 고대 근동 지역 전체에 기근이 들었고 유일하게 양식이 있는 곳은 이집트밖에 없었다. 야곱은 곡식을 구하기 위해 요셉의 형들을 이집트로 보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다. 형들은 요셉이 17세 되던 해에 요셉과 헤어졌다. 그리고 서른일곱이 넘은 요셉을 보았는데 얼굴도 많이 변했고 자신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위치에 있는 요셉을 보았으니 자신들의 동생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야곱과 형의 모든 가족은 이집트로 왔고 대 기근에서 구원을 받았다. 형들은 자신들이 한 짓 때문에 요셉을 두려워했지만 요셉은 마지막까지 형들을 보살펴주었다.


01.3.2.3.7.7.2.1.2. 요셉의 두 번째 꿈

해, 달, 별과 관련된 것은 주로 권세와 관련된 것이다. 하늘의 천체들이 절을 하는 것은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권력자가 아니라 하늘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요셉이 사는 고대 근동에서 당시 가장 큰 나라는 이집트인데 그 이집트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요셉은 이집트의 파라오의 버금 통치자가 되었다. 바로가 자신의 자리 외에는 모든 권한을 요셉에게 일임했을 정도였다. 요셉은 바로와 같이 이집트를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가 되었다.

01.3.2.3.7.7.2.1.3. 이스라엘의 구원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함이었다. 기근에서 구원하고 이집트에서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들었다. 사실 가나안에서 그렇게 거대한 민족이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민족의 수가 늘어나면 땅을 차지하게 되고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가나안 민족들과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혼혈이 생기고 가나안 민족들의 우상과 악습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들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한 파라오의 보호 가운데 거대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요셉을 통한 비전의 실현이었다.

01.3.2.3.7.7.2.1.3.1. 파라오의 절대권력을 통한 보호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안전하게 성장하려면 파라오의 보호가 필요했다. 파라오는 요셉에 의해 이집트가 구원받는 것을 보고 요셉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고 자신들을 구원해 준 요셉의 식구들을 이집트로 받아들여 보호했다. 효과적인 보호를 우해 파라오에게 강한 절대왕권이 필요했다.  
  
이전에 이집트는 신정일치제도로 운영되었다. 이런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권력의 발달 단계상 부족연맹체에 가까운 국가의 형태를 지니게 된다. 부족별로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이 있고 그 신들의 권력 투쟁에 의해 가장 강한 부족이 파라오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파라오의 권력은 절대적이 지를 못하고 연맹체의 연맹장 수준의 권력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런 권력구도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인물이 나타나는데 바로 요셉이었다.  
  
요셉은 7년의 풍년이 지나자 7년의 흉년 동안에 곡식을 이집트와 주변국에 제공했다. 무상으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팔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돈으로 곡식을 샀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자신들의 가축을 팔아 곡식을 샀다. 그다음에는 땅을 팔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들 스스로를 팔아 곡식을 샀다. 그들은 스스로 파라오의 노예들이 되었다. 그렇게 이집트의 모든 것은 파라오의 소유가 되었다. 이전까지 파라오의 권한은 약했다. 파라오의 부족이 섬기던 신의 권한도 절대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여러 신을 섬기던 모든 부족들은 하나로 통합되었고 그들은 과거와 같이 여러 신을 섬겼지만 그들은 한 신을 절대적인 주신으로 섬겼다. 그 신은 창조 신으로 너희 일반인들에게 잘 아려진 이름은 바로 '라'다. 태양신은 정오에는 '라'라고 불린다. 동틀 녁에는 '케프리', 해 질 녘에는 '아툼'이라 불린다. 태양신의 숭배 지는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와 멤피스다. 멤피스(놉)는 한 때 고이집트의 파라오가 다스리는 수도이고 다른 시대에도 주요한 도시였다. 헬리오폴리스(온)는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장이 있는 종교적 성지였다. 이집트 왕조에 이와 같은 종교적 세력의 구도가 결정된 것은 요셉에 의한 것이다. 요셉에 의해 파라오의 권력이 절대적이 되고 이집트의 모든 부족과 백성이 파라오의 노예가 되면서 이집트의 신들의 세력 구도도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 이전에도 파라오가 믿는 태양신이 주신이었지만 그렇게 강력한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태양신은 완전한 권력을 장악하고 창조의 신이며 모든 세계의 질서를 관장하는 절대신이 되었다. 심지어 테베 출신의 이 왕조에서는 아문-라라고 해서 아문과도 합쳐져 더 큰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종교적인 부분은 뒤에 두고 먼저 정치적인 부분을 살펴보겠다. 요셉에 의해 파라오는 절대권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절대권력을 가져다준 요셉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파라오들은 대대로 자신들에게 그런 권력을 준 요셉을 기억하고 선대왕들의 유훈을 따라 이스라엘백성들을 선대 했다. 그러한 보호가운데 한 가족 단위였던 이스라엘은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거대한 인구로 성장했다. 이스라엘 인구의 성장은 인류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폭풍성장을 기록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요셉에게 은혜를 입어 절대권력을 소유한 파라오들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01.3.2.3.7.7.2.1.3.2. 고센 땅의 유목민
이집트의 주신인 태양신은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며 이집트의 백성들에게 나일강을 통해 그 신비적 윤회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질서에 의하면 농업만이 가장 신성한 삶의 길이었다. 그들은 목축을 가증히 여겼다. 나일강의 범람을 통해 신의 축복을 받아 농업에 종사하고 그 질서에 복종하는 것만이 신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의 길이었다. 그래서 다른 문명들과는 다르게 이집트에서 홍수는 심판이 아닌 축복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나일강의 범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농업은 신의 질서를 따라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것이었다. 이를 거부하는 삶을 그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것은 신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축을 기를 수는 있으나 나일강 주변의 범람 지와 사막의 경계지들에서 완전히 목축만을 하는 것은 그들이 가증히 여기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래서 상업도, 심지어 군인으로 복무하는 것도 농사를 등한시하는 것이어서 거부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주변국에서 용병을 사 와서 군대를 유지했다.

이에 따라 이집트인들은 목축을 경멸했다. 그리고 그것을 악으로 보았다. 그런데 요셉은 그러한 이집트인들에게 자신의 민족을 목축을 하는 유목민으로 소개한다. 분명 야곱이 거주하던 가나안은 반농 반유목의 문화를 소유했음에도 그중 절반을 차지했던 농경을 삭제해 버리고 자신의 민족을 목축만을 하는 민족으로 소개했다. 사실 이집트에는 비옥한 나일강 하구의 삼각주가 있기 때문에 농업을 하는 것이 살아가기에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민족이 경멸을 받게 될 목축을 선택하여 파라오에게 자신의 민족을 이집트인과 차별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여기에도 요셉의 정교한 계획이 숨어있었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이집트로 부른 것은 가나안에서 성장하면서 이방민족들과 혼혈이 되고 종교적으로도 혼잡케 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이집트민족과 이스라엘이 섞여 살게 되면 이집트민족과 혼혈이 되고 종교적으로도 혼합종교가 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분리정책을 썼다. 이스라엘을 완전히 이집트 민족과 분리하여 고립되게 했다. 가장 쉬운 길이 바로 이집트인들이 가증히 여기는 불가촉민으로 만드는 것이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는 이집트에서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이스라엘은 가증히 여겨져서 이집트인들의 거주지에 같이 거주할 수가 없다. 따로 떨어진 고립된 곳인 고센에 거주해야 한다. 이 지역은 나일강 하류의 동편에 위치한 사막과 나일강의 경계지에 해당하는 거대한 평야 지역이다. 나일강 하류 삼각지의 동편이 고센이다. 여기에는 헬리오폴리스도 포함된다. 그리고 멤피스도 포함된다. 사실 현재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로는 정확한 고센땅을 파악할 수 없다. 사실 고센땅의 정확한 위치가 설정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은 유목을 하였기 때문에 거대한 지역들을 떠돌아다녔다. 그래서 그들이 거주했던 고센은 거대한 지역의 명칭이었다. 정확한 도시를 뜻하는 지명이 아니었다.이집트인들이 가증히 여기는 목축을 했던 이스라엘 민족들이나 거주하는 그 지역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사라진 이집트인들의 역사에서는 금방 잊혀졌다. 이집트 역사에서 300~400 년은 상당히 짧은 기간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가증히 여기던 목축을 하던 이방인들의 역사는 더욱 기록에 남길 이유가 없다. 그것도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고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출애굽의 역사를 이집트인들은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들의 주신인 태양신의 아들이며 호루스의 아들인 파라오와 그의 군대가 홍해의 바다에 수장되어 버린 사건을 어떻게 순순히 인정할 수 있는가? 그들이 그것을 인정하여 기록하면 자신들의 모든 신들은 패배자가 되면 오직 나 여호와만이 참 신인 것이 그들의 모든 후손에게 알려질 것인데 그들이 그것을 기록했겠는가? 그래서 고센과 그곳에 거주했던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집트에서 삭제되었다.

어찌 되었건 요셉은 파라오에게 고센땅을 얻음으로  자신의 민족이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는 광활한 목초지를 얻었다. 또 그 목초지에는 나일강의 하부 지류가 흘러 언제든지 가축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가나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축복된 곳이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거대한 나라로 만드는 것은 내가 오기 위한 준비였다. 이들이 나라를 이루고 율법을 통해 나의 피와 나의 구원에 대해 미리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또 이들의 역사를 통해 인류는 그 누구라도 심지어 나의 택한 백성이라도 자신들의 죄성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어 멸망에 이르는 절대절망의 족속임을 깨달아야 했다. 그래야 나의 구원이 진정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계획의 서정에서 요셉의 역할은 지대했다. 처음 여정을 시작했던 아브라함의 연단이 가장 길었다. 그는 100세가 되어서야 언약의 아들을 얻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그렇게 출발한 믿음의 민족은 아직 민족이라 일컬을 수도 없는 겨우 70인정도 되는 대가족이었을 뿐이었다. 이를 민족으로 성장하게 하는 모든 기틀을 마련할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다. 그래서 요셉의 연단은 길었다. 그 긴 연단을 통해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절대절망을 경험하고 절대신앙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을 통해 나는 이집트에 나의 민족의 요람을 건설했다. 그리고 340년 후 그 요람에서 나온 나의 민족은 600만이 넘는 대 인구였다. 고대 바벨론의 인구가 200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였다. 성경에 기록된 수는 20살이 넘어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남자들이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 모두 603,550명(민수기 1:45-46)이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일부다처제였고 노비나 여자 아이들은 인구에서 제외되었음을 생각하면 이것이 실제적인 이스라엘의 인구였음을 너희도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요셉을 통해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하고 나는 이 민족에게 율법을 주고 나의 백성으로 나의 나라를 이루게 할 것이다. 신약의 교회와 같은 역할을 할 구약의 교회로 이들을 만들어 나의 올 길을 예비하는 민족으로 사용할 것이다.


01.3.2.3.7.7.2.1.4. 열방의 구원

요셉이 고대근동의 기근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구원한 것은 열방의 구원의 출발이었다. 나는 이 민족을 부를 때부터 열방의 구원을 계획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열방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축복을 했다.

이제 그 구원의 계획은 한 단계 진보하기 시작했다. 아브라함 가족에서 이스라엘 민족으로의 진보가 일어난다. 그 발걸음은 이제 내가 세상으로 오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직 그 길이 많이 남아있고 아직 천년 이상의 기간이 걸리겠지만 이 구원의 역사는 내가 반드시 이룰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이미 그 구원이 이루어진 것을 보았다. 너희에게는 그 구원의 가장 강력한 역사였던 십자가의 사건이 2000년 전의 일이었지만 요셉에게는 2000(1800) 여년 후의 일이다. 이 거대한 역사를 이룬 것이 우리다. 우리는 오직 너희의 구원을 위해 이 일들을 했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들이 모두 그 구원의 거대한 장정에 대한 일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의 역사에서도 핵심적인 자리에 있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연대기를 언급하고 있다. 오늘 나는 너희에게 그중 요셉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 중 하나였다. 나는 그가 흘린 눈물을 기억한다. 그가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노예가 되어 흘렸던 눈물을 기억한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어 억울함에 잠못이루던 그 밤들을 기억한다. 그의 눈물이 너희의 구원을 이루었다. 누군가의 구원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들의 수고가 없다면 구원과 부흥의 열매는 맺힐 수 없다.


01.3.2.3.7.8. 요셉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너희는 요셉의 눈물을 이해하는가? 그의 마음의 무너지는 고통을 이해하는가? 요셉은 나의 거룩한 영을 받은 자임에도 형들보다 더 짧은 생을 살고 죽었다. 그의 삶이 얼마나 모질고 고통스러운 생이었는지 알겠는가? 그는 형들보다 먼저 기운이 진하여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자신의 민족의 구원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어 불타오르는 불꽃처럼 살다. 짧은 생을 마감했다. 모진 고생을 했던 그 나그네의 길로 인해 험악했던 자신의 아버지 야곱의 생보다 더 짧은 생을 살았다. 그 당시의 평균 수명으로 보면 요셉이 자신의 아버지 야곱의 147년 생보다 짧은 110년을 산 것은 상당히 단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삭은 180세를 살았는데 그와 비교해 147년과 110년이라는 인생은 단명한 것이다. 너희 시대의 나이로 보면 40살도 못되어 죽은 것이다.

너희는 요셉이 한 행동들 중 이집트로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에 대한 태도에 대해 많이 비판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이상한 요셉의 행동이 있다.

요셉이 총리가 되자마자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을 찾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요셉은 7년의 풍년 기간에도 아버지와 형제들을 찾지 않았다. 형들은 그렇다 쳐도 자신의 동생 베냐민을 찾지 않은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이 권력자가 되었으므로 형들이 자신을 죽일 수도 없는데 왜 이렇게 했는지 너희는 이해할 수 있는가? 요셉은 원한에 사무쳐 자신의 가족을 버린 매정한 자였을까? 그래서 형들이 찾아왔을 때도 모른 척하고 형들을 함정에 빠트리고 아버지의 심정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했을까? 너희는 요셉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요셉은 너희들이 짐작하고 상상하는 그러한 자가 아니다. 너희는 각 사람의 기질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관찰하고 그것을 파악하기도 전에 자신들의 섣부른 판단으로 다른 이를 정죄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 가지고 있는 기질에 따라 쓰는 말과 행동의 언어가 다르다. 감정적인 기질의 사람의 언어와 행동이 다르고 지배적인 기질의 사람의 언어와 행동이 다르다. 또한 이성적인 기질의 사람의 언어와 행동이 다르다. 요셉은 지극히 이성적인 기질의 사람이다. 만약 요셉이 감정적이거나 지배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면 세겜에서 형들을 멀리서 보고 도망갔을 것이다. 형들의 감정 상태나 그들이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분노를 느끼고 피해서 달아났을 것이다. 그러데 요셉은 그렇지 못했다. 이성적인 기질의 사람들은 상대의 감정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특히 어린 시절이라면 더욱 그렇다. 만약 요셉이 지극히 이성적인 기질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형들을 처음 보았을 때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억누르고 뒤에 나와 홀로 울고 다시 포커페이스로 형들 앞에 선 것을 너희는 보았는가? 이것이 가능한 기질은 이성적인 기질들의 분류에서도 딱 하나의 기질밖에 없다.

이러한 기질들의 사람들은 직접적인 분쟁이나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 특히 가족 안에서의 갈등을 보면 그냥 움츠려 들어 숨어버린다. 대화를 중단하고 상대방의 감정이 파악이 되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또 그 자체가 안 되는 엄청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는 그냥 방구석에 틀어박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폐인이 된다. 그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으므로 밖으로 나와 생활을 하더라도 그 문제 만은 저 깊숙한 곳에 파묻어 놓는다. 더 이상 꺼내거나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른 주제와 관심들에 에너지를 쏟으며 최대한 그 문제 근처로 가지 않기를 선택한다. 너무 큰 고통이기에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형들은 자신을 왜 죽이려 했는지, 그리고 아버지는 왜 살아있는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유목민들의 특성상 추적술에 능하므로 찾으려 했다면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을 찾아 노예에서 벗어나게 했겠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찾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억울함이 몰려왔을 때 요셉은 회피를 선택했다. 그렇게 회피하다 보면 많은 세월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문제에서만은 지극히 수동적이 된다. 이 기질의 사람들은 평소에는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대비하는 철저한 전략의 사람이지만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만나면 움츠려 들어 그 모든 것에서 자신을 망각시키는 대책 없는 멍청이가 되기도 한다. 요셉의 상태가 그랬다. 그래서 수동적으로 형들을 만났을 때에야 자신의 감정을 일깨웠고 보고 싶은 동생 베냐민을 데려오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워 형들이 움직이게 했다. 또 자신이 죽이지 않을 것을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므로 베냐민을 볼모로 삼아 아버지와 온 가족이 이집트로 오게 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형들에 대한 복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 형들과 형들의 가족을 보살폈고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그들이 번성하여 거대한 민족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안배를 다 마련해 놓고 자신은 그 모진 세월에 진이 빠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삭의 수명이 180이므로 요셉이 110세에 죽은 것은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희 중 요셉과 같이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 속에 살다가 몸도 병들고 마음에 모든 힘을 잃어버린 자들이 있다면 요셉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리고 역사 속에 살다 간 수많은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기 바란다. 돌에 맞아 죽어간 스데반을 기억하기 바란다. 나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인생을 항상 마주하고 그 고통을 그들과 동일하게 느끼는 자다. 그런 인생의 고통이 그들에게 없기를 바라지만 자신들의 통치권을 사용해 스스로 자멸에 이르고 타인의 인생을 파멸에 떨어트리는 악마와 같은 자들의 행위를 볼 때마다 나는 분노한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의 불행을 당한 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을 돕기 원한다. 그들이 나의 손을 잡고 나와 함께 한다면 나는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할 것이다. 그래서 요셉의 삶과 같이 아브라함의 삶과 같이 심지어 자신의 악에 의해 스스로 자신과 타인을 괴롭게 한 야곱의 삶과 같이 그들의 삶이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할 것이다. 너희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나는 너희의 구원자다. 너희가 진흙탕과 같은 늪에 빠져 있어도 나는 너희의 모든 것을 변화시켜 너희를 구원할 자다. 심지어 너희 생이 죽음에 이르렀다 해도 그 모든 상황에서 나는 너희를 구원할 수 있는 자다. 너희가 죄로 인해 죽든 아니면 나를 따르다 순교하든 그 순간에라도 너희가 나를 선택하면 나는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나의 십자가 오른 편의 강도에게 한 약속을 나는 너에게 할 것이다.

만약 너희가 나와 나의 복음과 나의 십자가를 받아들인다면 오늘 나는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비록 그가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그는 그 시로 모든 고통과 저주에서 승리하고 영원히 나와 함께 낙원에 있었다. 너희도 이와 같이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와 같이 죽음의 상황에서 절대절망을 맞이하고 나에게 항복하는 것도 좋겠지만 할 수 있다면 그전에 나를 선택하고 나와 함께 이 땅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주는 완전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누구든지 인생의 짐이 무겁거든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나와 함께 나의 멍에를 메고 나와 함께 하자. 내가 너희의 모든 짐을 지고 너희의 멍에를 이끌 것이다. 네 힘이 부족하면 내가 전능의 힘으로 너를 도울 것이다. 네가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없으면 너는 나와 멍에를 같이 함으로 내가 그 죄를 이겨 너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와 함께 가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멍에는 가볍다. 너희가 율법을 따라 끝없이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그런 무거운 삶이 아니라 나와 함께 쉽고 가벼운 멍에를 매기를 원한다.

이제 너희는 율법주의와 인본주의와 기복주의와 신비주의를 벗어나 나의 멍에를 메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태초의 안식으로 너희를 이끌고 마지막 생명수의 강가로 이끌어 영원히 생명나무의 열매와 잎을 누리게 하리라. 아이야 이제 나의 손을 잡고 가자. 이제 스스로 길을 잃어 무서운 짐승들에게 늑탈당하는 삶에서 헤어 나와 이제 나의 손을 잡자. 나는 강한 자이니 내가 너를 지켜 그 어떤 무서운 짐승에게서도 너를 건질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태초의 요람으로 그리고 새하늘과 새땅이 있는 곳 새예루살렘의 영원한 안식처로 너를 이끌어 영원히 빛만 가득한 곳으로 너를 이끌 것이다. 이제 어둠과 짐승들에게서 벗어나 빛과 생명으로 가득한 곳으로 나의 손을 잡고 가자.






[^1] 너희는 사탄과 그 아래의 귀신들은 나의 제어를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들은 지금도 내가 명령하면 그 명령을 따라야 한다. 단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듯이 그들에게 내가 태초부터 법으로 허락한 자유 안에서 그들은 자유의지를 사용할 뿐이다. 그 의지를 반역에 투자하는 것도 그들의 자유이지만 그 결과도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 결과는 실로 무섭다. 그러므로 너희는 저 타락한 어리석은 천사 무리와 함께 그들에게 부어지는 심판의 길로 들어서지 않기를 바란다.  
  
[^2] 나의 감동은 이렇게 주어지기도 한다. 사탄의 감동도 그렇게 생각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너희 인간들은 그것이 감동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영감은 이렇게 주어진다.  
  
[^3] 예표  
예언은 말씀으로 주어진다. 구약에는 나에 대한 예언이 많이 있다. 예언 외에도 그 삶의 형태를 통해서도 나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예표라 한다. 이해하기 편하게 풀어쓰면 예언적 표라고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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