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겔 Mar 30. 2024

3.1.3. 인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다 -1


예수님께서 회복시키심으로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예수님과 함께 앉아 통치한다. 이것이 상당히 낯설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경은 이것을 말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성도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사실을 듣는 순간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다고 바로 이단적 주장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예수님은 인자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리고 인자로서 스데반의 죽음을 보좌에서 일어나 보셨다. 그래서 스데반은 순교의 순간에 이런 고백을 한다. ‘보라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다’ 그가 본 것은 바로 인자였다. 예수님이신데 그분은 인자이신 것이다. 이 호칭을 사용하신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자리로 회복되신 자리에 앉으신 것이면 인자라는 칭호는 쓸 수가 없다. 여기서 인자라고 한 것은 아담의 후손이요 결국 인간을 뜻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신 분께 인자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인가?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성육신 하셨지만 그렇다고 인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시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물론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이심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시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다라는 말씀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뒤의 긴 여정을 통해 성경을 살펴볼 것이다. 예수님은 인자로서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우편의 만물의 통치자로 서신 것이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님 우편의 자리는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가 될 수 없다. 어떻게 유일무이한 왕이 계시는데 그 옆에 동등한 왕이 있다는 말인가? [1]


구약과 신약 그리고 성경 외적인 증거로도 왕의 우편은 왕과 동등한 자리가 아니다. 왕의 아래의 강력한 권력자의 자리다. 요셉과 같이 왕의 버금수레를 타는 왕의 신하인 것이다. 그런데 그 신하는 왕과 같이 모든 것을 다스린다. 인간은 만물 위의 통치자다. 그리고 인간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머리가 되시는 것은 인간으로서 되신 것이다. 결코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머리가 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 둘째 아담이다. 첫 아담이 인류의 머리가 되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 되어 인류(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생소하겠지만 성경을 통해 이를 살펴보자. 이를 살펴보고자 함도 인간의 권세나 권력을 강조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인간은 권세가 아무리 뛰어나도 한낱 피조물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좀 더 잘 이해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을 잘 순종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권세가 있는데도 그 권세를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권세를 얻으려고 머리를 들이밀고 안수를 받고 돈을 바친다면 어리석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종하고 순종하며 섬겨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예수님 외에는 우리의 머리가 될 대상은 없다. 우리에게 주권적으로 권세를 부으시는 분도 오직 삼위 하나님밖에는 없다. 성경 안에서 문맥을 따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려고 하시는지 살펴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


          

[1]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하나님이라 표현할 때는 이를 염두에 두고 한다. 하나님께서 유일무이한 보좌에 앉으시고 그 옆에 예수님께서 인자로서 계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삼위하나님께 대한 표현이었다면 예수님이 우편에 계시면 좌편에는 성령님이 계셔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 그런 장면을 묘사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의도가 그것이 아닌 것이다.



이전 08화 3.1.2. 에덴으로의 회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