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8.10.2.1. 사탄을 심판: 12 기적과 심판
01.3.2.3.8.10.2.1.1. 이집트가 자초한 심판
01.3.2.3.8.10.2.1.1.1. 심판 전 대화와 타협
01.3.2.3.8.10.2.1.1.2. 교만한 대적
01.3.2.3.8.10.2.1.1.3. 모세의 불신앙
우리는 우리 백성, 이스라엘을 놓아주기를 거절하며 내 백성을 종으로 삼고 있는 이집트의 파라오와 거짓신들을 심판할 것이다. 그 일을 위해 모세를 보내려 했다. 그런데 모세는 파라오가 한번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고 우리를 대적한 것을 보고는 또 불신앙에 빠졌다. 그래서 우리가 파라오에게 가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관한 출애굽기의 기록이 있다.
2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 모든 것을 이집트 왕 바로(파라오)에게 말하여라."
30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말하였다.
"보소서, 저는 입술이 둔한 자입니다. 바로가 어찌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으니, 네 형 아론이 네 대언자가 될 것이다. 2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너는 너의 형 아론에게 말하고 아론은 바로에게 말하여,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의 땅에서 내보내게 하여라. 3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이집트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니, 내가 내 손을 이집트에 뻗쳐 큰 재앙들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으로부터 나오게 할 것이다. 5내가 내 손을 이집트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 가운데서 나오게 할 때, 이집트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
6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하였다. 7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다.
(Exodus 6:29-7:7 바른)
이스라엘의 유일무이한 선지자(The prophet)라 알려진 모세지만 그것은 인간들의 허명일 뿐이다. 타락하였다 돌아온 인생들은 모두 하나같다. 모세가 원래 대단한 선지자감으로 태어나서 모세가 된 것이 아니다. 모두 연약한 사람이다. 원래 태어나기를 위대한 자로 태어나서 성경 속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특히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동일하다. 단지 연약한 인간이지만 내가 함께 함으로 그들은 위대한 나의 일들을 이루었다. 내가 그들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하면 그 누구라도 성경에 기록된 역사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에게 집중한 설교와 그 인물들의 탁월함을 설교하는 설교는 사실 성경의 기본도 알지 못하는 거짓 설교다. 인간의 처참한 현실과 그 속에 인간을 구원하는 나의 구원과 우리의 경륜을 알지도 못하는 설교다. 그런 설교는 오히려 인간의 탐욕스런 욕구만이 가득하다. 너희 시대에는 그것을 자아실현이라 하며 자신의 비전이라 한다. 그러나 그런 설교는 단지 타락한 탐욕의 주둥이로 사람들의 영혼을 겁탈하고 강간하는 비열한 종자의 유혹일 뿐이다.
나는 세상에 타고난 기질이 탐욕스럽고 공포스러우며 살인과 방화와 강간을 일삼고도 양심에 가려움조차 없는 냉혈안들을 성경에 등장하는 나의 종들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 냉혈안들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그런 악행의 탑을 모아 나라를 건국하고 제국을 건설한다. 나는 그런 자들을 영웅이나 위대한 정복자라 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악을 행하는 자들이며 자기 탐욕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짓이기는 쉐즈무같은 자들이다. 수많은 사람의 머리를 포도와 같이 포도주틀에 넣고 한꺼번에 짓이기는 무서운 종자들이다. 그들은 수천, 수만, 수억의 인간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탐욕을 이루는 자들이다. 세상은 그런 싸이코패스들과 그들의 하수인들이 이룬 지옥도다. 그 지옥도의 탐욕을 불어넣는 자는 사탄과 그 패거리 타락 천사들이다.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수단이 종교나 사상(이념, 이데올로기)다. 그들의 정교하고도 고도로 발달된 지배 테크놀로지는 모든 사람과 세상을 옥죄어 절대 벗어나지 못하는 노예가 되게 한다. 세상의 지식이 발달하고 착취의 시스템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노예인지 조차 모르게 하여 더 집요한 착취를 단행한다. 그 사람의 기름 한 방울 마지막 생명의 한 방울까지 모두 짜내어 이용하고 결국 너덜너덜한 주검으로 지옥에 들어가게 한다. 지금 너희가 사는 시대는 마지막 시대의 끝에 다다랐다. 거의 끝의 정점에 왔으니 그 속임의 테크놀로지가 교묘하여 거의 아무도 자신들이 속임을 당하여 극한의 착취를 당한다고 지옥에 버려진다는 사실을 모른다.
여기 그런 탐욕의 제왕과 제국이 모세의 시대에도 등장한다. 바로 파라오와 이집트다. 모세의 시대를 잘 관찰해 보고 너희 시대의 탐욕의 왕들과 탐욕의 집단은 무엇인지 분석해 보라. 그래야 너희도 불운한 주검으로 지옥불에 들어가는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희를 노예로 삼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주검으로 쌓은 탑에서 벗어나 트리나 포울러스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 속에 등장하는 노랑나비와 같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모세 시대에 내 백성의 원수들을 심판하고 내 백성을 구원한 기록인 12 심판과 구원의 기적에 대해 이제 이야기하겠다. 이는 역사의 기록임을 명심하고 너희 자신들도 교훈을 얻기 바란다. 타자들의 기록을 보면 너희는 그들과 같은 세뇌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시대의 어리석음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을 타산지석 삼아 너희도 너희 시대의 교묘한 속임수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열두 기적은 믿는 내 백성에게는 구원이 되었다. 그러나 내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에게는 심판이 되었다. 이 심판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재앙부터 일곱째 재앙까지는 고통을 주는 재앙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여덟째 재앙 이후로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재앙이었다. 재앙의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처음에는 말로 타일렀고 그것이 안되자,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도 안되니, 결국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주었다. 그 죽음도 바로 죽음을 주지 않고 죽음에 가까운 우박과 메뚜기와 흑암 재앙을 주었다. 그것도 교만하여 거절하니 어쩔 수 없이 그 생명들을 멸했다. 처음에는 장자만 죽였는데 그래도 내 백성을 죽이겠다고 따라오니 어쩔 수 없이 그 군대 전체를 멸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전에 그들의 인생 전체에서 나는 끊임 없이 그들이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오그도아드와 엔네아드 계보의 신들과 그중 아툼과 아포피스와 와제트와 코브라 여신 레네누테트와 코브라 남신 샤이와 파라오 등)
8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9"바로가 너희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의 이적을 보이라고 하면, 네가 아론에게 말하여 그의 지팡이를 들어 바로 앞에 던지라고 하여라. 그러면 그것이 뱀이 될 것이다."
10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하였다. 아론이 자기의 지팡이를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11바로도 지혜자들과 술객들을 부르니, 그 이집트 마술사들도 그들의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였다. 12그들이 각각 자기 지팡이를 던지므로, 그것들이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 버렸다.
13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바로의 마음이 완고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Exodus 7:8-13 바른)
아론의 지팡이가 파라오의 샤먼들의 지팡이를 삼켰다는 사실은 삽시간에 이집트 전역에 퍼졌다. 이스라엘의 뱀이 이집트의 뱀을 삼켰으므로 이제 이집트는 이스라엘에 의해 삼켜질 것이라고들 했다. 그 소문은 더 멀리 나가기도 했는데 대상들을 통해 도시와 도시를 점으로 이어 퍼져나갔다. 그만큼 이 사건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고대의 모든 것은 신과 연결이 되어있었다. 한 민족의 신이 다른 민족의 신을 이기면 전쟁을 통해 실제로 이긴 민족의 나라가 신들의 전쟁에서 진 나라와 싸워 정복전쟁에서 승리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고 고대의 전쟁들의 기록을 보면 모두 신들의 전쟁임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는 콘스탄틴이 십자가 방패를 들고 싸운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는 태양에 있다고 알려진 삼족오를 깃발로 사용했다. 또한 치우천황은 황소형상의 방패를 사용했다. 전쟁 전에는 신들에게 바치는 거대한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물론 전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먼저 신에게 신탁을 구하여 싸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도가 있는지 물었다. 모든 것은 신들과 신들에게 속한 샤먼들의 조언을 구했다. 신정이 분리가 되어 왕이 따로 있는 나라들이 이러했다면, 이집트와 같이 신정일치의 체제를 가진 국가에서는 종교의 영향력은 실로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 파라오를 상징하고 상하 이집트의 권력을 상징하며 태초의 여덟 신을 상징하며 세계의 창조자 아툼을 상징하는 그 강력한 아바타인 뱀이 이스라엘 민족의 뱀에게 삼켜진 것이다. 이는 이집트 전체가 이미 이스라엘의 강력한 신인 우리(여호와)에게 삼켜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집트인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하고 지혜와 지식도 우월한 민족인 이스라엘이 이집트 안에서 이집트인보다 다수의 인구수를 차지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의 반란을 두려워한 이집트인들 이스라엘인(히브리인)들을 박해했다. 원래 피라미드와 건축물들을 건설하는 인부들에게는 임금이 지급되었고 유급휴가도 있었으며 특식으로 힘을 낼 수 있는 당시의 스테미너 약물이었던 양파와 마늘도 넉넉하게 지급이 되었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에게는 강제 노역을 시켰다. 또 아이를 낳으면 남자아이는 나일강에 던지도록 했다. 당시의 남성 중심의 계보에서 남자가 없으면 여자들은 이집트인들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아이들도 이집트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자연히 부계 혈통을 유지했던 이스라엘은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자녀들은 부계의 성씨를 따르게 된다. 그래서 후손 중에 남자가 없다면 부계의 성씨들이 사라지게 된다. 이와 같은 원리와 같다고 보면 된다.
이런 원리로 인해 민족이 소멸될 위기에 놓였던 자들이 AD 70년 이후 나라를 잃고 떠돌던 유태인들이었다. 소멸의 위기를 타계하기 위하여 이들은 원래 부계혈통을 따르던 사람들이었는데 모계혈통을 따르는 민족이 되었다. 그들은 성경의 전통에서 벗어났다. 또한 전통적인 유목민의 전통에서도 벗어났다. 그렇게 된 원인이 있다.
전 세계에서도 모계사회는 찾아보기 힘든데 아주 척박한 오지에서 한 명의 남자가 한 명의 여자를 부양하기 힘들 때 여러 남자가 한 명의 여자를 부양하고 공동의 아내로 삼는 경우, 그런 사회가 발달한다. 티베트에는 아직 그런 전통을 가진 지역들이 있다. 중국의 장가게도 아주 척박한 오지이므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한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만나 가정을 꾸릴만한 형편들이 안되었다. 그래서 여자들이 공동생황과 공동육아를 하며 생활의 주체가 되었다. 여기서 남자들은 단지 아이를 낳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장가게의 모쏘족은 아버지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로마장군 타이투스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 유태인은 약한 민족으로 결혼에서도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민족을 소멸의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방식은 모계의 혈통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유태인이 아니라도 어머니가 유태인이면 유태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처참한 현실이 있다. 이들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결혼에서도 이방인과의 결혼이 많았다. 유태인 남자와 비유태인 여자, 그리고 비유태인 남자와 유태인 여자가 한 쌍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흩어져 있으니 유태인끼리 짝을 이루기도 힘들었다. 또한 유태인끼리 짝을 이루면 안 그래도 천시와 핍박을 받는데 가정의 반쪽이라도 타국의 백성이어서 변호가 가능한 반쪽짜리 유태인 가정보다 형편이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방인과의 결혼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들은 정상적인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집시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았으며 예수님을 죽인 죄인들이라는 정죄를 받았고 그들은 수전노이며 죄와 병을 퍼뜨리는 저주의 원흉으로 많이 지적되어 한 지역에 적응할 만하면 약탈을 당하고 도망을 다녀야 했다. 여자들은 강간과 성착취의 도구들이 되었다. 그런데 남편이 유태인이고 여자가 이방인이면 이방인에게 강간을 당할 경우 여자의 아이가 완전히 이방인의 혈통이 된다. 여자가 유태인이면 강간을 당해도 여자 자신이 유태인이므로 혈통의 절반은 유태인이 되는데 반해 남자 유태인의 이방인 아내는 온전한 혈통을 보존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멸종을 피해 모계의 혈통으로 전환했다. 사마리아인들이 혼혈이라 하여 개취급을 했던 유태인들의 혈통은 개들인 사마리아인보다 못한 지경이 되었다. 그들은 어리석은 자신들의 선민사상으로 그런 끔찍한 결과를 당하게 되었다. 선민의식에 사로 잡혀 나 예수가 갔는데도 오히려 나를 죽였다. 그들의 비성경적 선민의식은 결국 정죄를 받았다. 그들은 나를 죽이면서도 나의 핏값을 자신들이 받겠다는 교만한 확신에 찼었다. 그들은 그 핏값을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옳고 하나님인 나 예수가 이단이라 생각했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인 나 예수조차 판단해 버리는 교만이었다.
그런데 나를 따랐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 요셉을 통해 구원하고 모세를 통해 구원한 내 백성은 선민의식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역과 고통으로 인해 절박한 속울음을 울었다. 나는 그들을 구원했다. 이집트인들이 남자아이를 죽여 이스라엘인의 수를 감하려 했는데 히브리인들은 점점 그 수가 늘어났고 태어나는 아이들마다 이집트인을 능가하는 신체와 정신을 가졌다. 자신들이 스스로 우리를 찾는 자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극악한 상황에 있든지 우리가 구원한다. 그들이 약하고 힘이 없으며 이방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심지어 노예로 전락했다 해도 우리는 그들을 구원한다. 그들이 군대가 없으면 우리가 그들의 군대가 된다. 그들의 아이를 누가 강에 던져 죽이고 질식사시키려 하면 우리가 그들의 편이 되어 그들의 아이를 구한다. 우리 앞에 울고 우리를 찾는 자는 결코 버림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반드시 그의 편이 되어 그를 구원한다. 우리는 살리는 자다. 우리는 구원하는 자다. 결코 고통의 호소를 멸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에게 호소하는 자가 가난하고 권력이 없으며 무식자라 하여 멸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상장수의 아들을 불러 믿음의 조상으로 만든 자다. 우리는 탐욕에 가득 찼던 자를 불러 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지게 했다. 우리는 가기를 거부하는 불신앙과 절망의 사람 모세를 불러 우리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홍해에서 구했다.
우리는 성경 본문(출 7장)에 기록한 장면에서도 우리를 찾는 자들을 구원한다. 이집트라는 거대한 사탄과 그의 무리들로부터 우리 백성들을 구원한다. 이 세상에 의지할 자 없는 자가 있는가? 그러면 우리의 이름을 부르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라. 우리가 어디서든지 듣고 그에게로 가 그의 친구가 되며 연인이 되며 형제가 되며 아비가 되어 그를 지키리라. 다윗과 같이 부모가 버렸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아비가 되리라. 그래서 우리의 편 팔로 그를 구원하리라.
오늘 우리는 이집트라는 거대제국 앞에 힘없던 포로며 노예며 학살의 피해자였던 한 민족의 부르짖음을 들었다. 그 어미의 속울음과 자식의 주검을 보는 두려움에 질려버린 아비의 피울음을 들었다. 우리(하나님)의 앞에는 거대제국도 천사의 모든 무리도 피조계의 그 어떤 강한 것도 대적할 수 없다. 세상의 슬픔과 눈물을 당한 자여 우리에게 나오라. 구원하리라. 이제 우리는 저 졸렬한 자기 자랑에 가득 차 가난하고 약한 민족을 핍박하는 이집트를 심판할 것이다.
그 시작의 서막이 아론의 지팡이가 파라오의 샤먼들의 지팡이를 삼켜 잡아먹어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그 시대 고대근동을 뒤흔들어 놓았다. 결국 이집트의 최고 신적 존재들의 아바타, 뱀을 삼켜버린 아론의 지팡이는 이집트의 모든 것을 심판하고 모든 것을 황폐화시켰다. 그리고 당시 고대 근동 최강의 군대 중 하나였던 파라오의 군대를 모두 바다에 수장시켰다. 그 속에는 물론 최고권력자였던 파라오도 있었다. 이 위대한 사건은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보낸 후인 40년 후에까지도 고대 근동의 모든 민족들을 떨게 했다. 여호수아서의 역사 기록을 너희는 읽었는가? 그 속에 가나안 족속들의 두려움과 공포의 기록을 읽었는가? 모두 내가 이집트에서 내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였는지 그 소문을 듣고 40년이 지난 후에도 그 공포에 몸을 떨었다.
나는 나를 찾는 자는 반드시 구원하고 나를 찾는 자들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을 심판한다. 세상에서도 세상의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는 모든 자들이 자신들이 공의로 내세우는 이념과 사상의 공교한 어떤 법으로 위장하여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여도 그들의 모든 논리를 파하고 그들을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누구든지 우리(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현재는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 거짓이 승리할 수도 있지만 내가 참고 참고 참은 연후에 심판의 날이 오면 그 어떤 거짓과 힘과 권력으로도 그들은 나의 공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참음은 그 악한 자들도 회개키를 기다림이다. 또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심어졌으니 나는 끝가지 기다려 마지막 알곡까지 추수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까지 참음으로 기다린 마지막 최후의 심판 날에 모든 내 백성의 눈물을 씻어줄 것이다. 내가 그들을 품에 안고 위로하며 그들의 원한을 갚아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모세 시대에도 동일했다. 그 시대의 구원의 기록을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너희는 그 시대의 역사 배경을 알지 못하여 그 시대의 기록을 읽어도 제대로 된 이해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 시대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먼저 설명하려 한다.
먼저 이집트인들의 신화 중 헤르모폴리스[^1]의 오그도아드(8명의 한조, 8명의 태초 신들) 창조 신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집트의 종교와 정치, 사회의 구조를 알려면 이런 내용들을 알아야 한다.
헤르모폴리스는 이집트 중부의 도시로 고대 이집트어로 케메누, 크문(8개의 마을)이라 했다. 이곳에는 지식과 마법과 달의 신 토트의 신전이 있었다. 토트는 그리스의 헤르메스와 동일한 신으로 여겨진다. 그 신전의 이름을 그리스인들이 헤르모폴리스라 했다. 그 뜻은 헤르메스의 도시라는 뜻이다.
헤르모폴리스의 창조신화에서 태초에는 심연만이 있었다. 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바다를 뜻하기도 했다. 그것은 혼돈(chaos) 그 자체였다. 카오스의 심연에는 개구리 넷과 뱀 넷이 있다. 이들은 여덟 명의 태초 신들이었다. 이들은 오그도아드(ogdoad 또는 obdoad)의 8신이라고 불렸다. 이들 중 개구리들은 남신들로 눈, 아문, 헤, 쿡이었다. 뱀들은 여신들로 나우네트, 아무네트, 하우헤트, 카우케트였다. 또한 이들은 각자가 암수의 짝을 이루었다. 눈과 나우네트, 아문과 아무네트, 헤와 하우헤트, 쿡과 카우케트가 서로 짝이었다. 개구리와 뱀이 짝이 된 네 쌍이었다. 이 여덟 명의 신들은 물과 공허, 바람과 공기와 보이지 않는 세상의 힘, 무한한 시간과 공간, 어둠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이들로부터 태양신 라가 나오게 된다. 이들 8명의 신들은 하나로 융합되어 최초의 땅이 되어 솟아올랐다. 그 이름은 벤벤이라 하기도 하면 땅의 모양은 구릉(언덕)이었다 하며 이 모양이 피라미드 모양이라 한다. 그 모양이 나일강이 범람한 후 쌓여있는 퇴적토의 모양이라 하기도 한다. 이 언덕은 처음에는 불타는 화염의 섬이었다. 거위로 변한 누(nu, nun)가 알을 가져다 주었는데 그 알에서 태양신 라가 나왔다. 다른 버전의 라의 탄생은 다음과 같다. 태초의 심연의 물에서 연꽃이 피어났는데 그 연꽃 속에서 풍뎅이가 날아나왔다. 그 풍뎅이가 태양신 라다. 여기서 등장하는 8명의 오그도아드 8 신은 창조이전에 존재한 세상의 재료가 되는 혼돈의 존재들이다. 물과 바람과 공기, 시공간, 그리고 어둠인 것이다. 이들은 물에 사는 개구리였다. 이들이 사는 곳이 심연의 물이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집트에 내려진 첫 심판은 뱀과 관련된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다. 오그도아드 8 신 중 여성형의 신들이 뱀이었다. 이집트의 신들은 암수의 신들이 조화와 결합을 이루었다. 사실 둘이 하나와 같이 작동했다. 그러니 둘 중 하나를 심판하는 것은 나머지도 같이 심판을 받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중 아문과 아무네트의 짝은 숨겨진 자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들은 숨겨진 자로서 강력한 힘을 가진다고 보았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공기나 바람으로 묘사되었으며 오그도아드 중에서도 주신이었다. 둘은 암수를 이룬다. 원래 이 신은 암수를 구별하지 않았는데 여성적인 면과 남성적인 면을 나누어 아무네트와 아문으로 불리게 되었다. 바람이나 대기는 강력한 폭풍이나 토네이도로 몰아칠 때는 무서운 힘을 가진다. 그래서 이들의 힘은 보이지 않는 숨겨진 강력한 힘으로 간주되었다. 모든 세상을 집어삼킬 엄청난 힘을 가졌으므로 태초의 8 신 중 가장 강력한 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또한 이들은 공기이므로 숨겨져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더 신비함을 주고 비밀스러움을 덧입힌다. 이들의 존재는 숨겨져 있으므로 더 두려운 존재다. 원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어떤 은밀한 존재가 덮쳐올 때 인간은 더 큰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이들은 숨겨진 공포의 강력한 존재들이다.
반면 인간은 공기가 있어야 숨을 쉰다. 모든 생물은 공기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생물은 산소를 필요로 한다. 식물들은 이산화탄소로 양분을 만드는 근본을 삼는다. 또는 다른 혐기성의 생물들이 있어 다양한 공기를 사용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숨 자체를 생명으로 보았다. 숨이 멈추면 죽음이고 숨을 쉬면 살아있는 것이 된다. 바람과 대기는 두려운 존재이지만 또 모든 곳에 있어 보이지 않게 생명의 호흡을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 신들의 자비를 호흡하며 이집트인들은 살아간다고 믿었다.
귀신들은 참으로 교묘하다. 인간들을 속이는데 자연의 많은 재료들을 사용하고 그것을 신격화함으로 인간들이 두려움과 감사를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사탄과 귀신들이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라고 불리는 것은 이들이 거짓말에 탁월하기 때문이다. 앞에 종교와 사상을 통한 지배체제를 설명한 이유가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함이었다.
물의 신 눈과 나우네트는 이집트의 풍요의 근원이 되는 나일강과 모든 물을 상징했다. 이들은 모든 물의 근원이며 물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자들이었다. 물도 바람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가진다. 해일이나 홍수로 대지를 덮쳐오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람처럼 지면의 모든 것을 휩쓸지는 못해도 범위가 바람보다는 좁지만 물이 닿는 곳은 바람이 초토화시킬 수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서운 피해를 입는다. 물이 덮쳐오는 순간 이미 모든 생물들은 그 속에서 질식하여 죽게 되고 물의 급류에 쓸려 사라져 버린다. 심지어 강력한 급류에는 땅도 그 힘을 잃고 쓸려나가고 거대한 산도 강한 비와 급류에 산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비옥한 토양을 가져다주는 나일강이라도 더 크게 범람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강 중 하나로 알려진 나일강은 범람의 시기에 상류로부터 엄청난 물을 쏟아내린다. 그 물의 양이 엄청나기에 그것이 평소의 범람의 범위를 넘기면 하류의 삼각주 지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마을은 파괴되고 그것의 모든 가축과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되고 백성들은 모든 터전을 잃게 된다. 특히 하류의 삼각주는 높은 산들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므로 강력한 범람이 일어나면 급하게 피할 곳도 없어진다. 그러니 생각지도 못한 수준의 강력한 범람은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에게 물은 두렵고 강력한 존재였다.
그런 반면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수많은 생명을 자라게 하는 어미가 된다. 물이 있는 곳에는 식물과 동물이 번성을 하고 모든 생물은 물이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물의 범람이 상류의 비옥한 토양을 실어 날라 풍성한 결실을 걷는 농경이 가능하게 했다. 그 풍성함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문명이 이집트 문명이다. 그래서 이집트 문명의 생명력은 나일강의 물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이 물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집트의 모든 풍요와 문명의 발전은 모두 나일의 물이 근원인 것이다. 그러니 물은 또 어머니와 같이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여김을 받는다.
태초의 물을 상징하는 눈과 나우네트는 암수이며 눈은 개구리 남신, 나우네트는 뱀 여신이다. 이집트인에게 개구리와 뱀은 이런 존재들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헤와 하우헤트는 무한한 시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세상의 근원인 시간을 나타내며 이것은 짧고 정해진 시간이 아닌 시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는 끝이 없는 영원으로도 여겨졌다. 그 영원의 시간을 소유한 신적 존재가 헤와 하우헤트이며 이들은 시간의 가장 작은 단위까지도 지배하는 강력한 영원의 힘을 소유한 신들이다. 귀신들은 나의 것을 일부라도 이렇게 집착하고 흉내내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꾸며도 그것이 자신들의 것도 아닌데 속여서라도 그런 척이라도 해보고 싶은 변태적 욕구로 인간들과 자신들을 불지옥으로 던지는 어리석음은 광기를 넘어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런 광기들은 그 광기에 취한 자들에게는 광기가 아닌 정상적인 종교나 이념 또는 사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시스템으로 정착하여 모든 것을 장악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고 일하고 행복을 느끼다, 늙어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 누구도 이 시간을 피해 갈 수 없다. 시간의 지배를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떤 존재도 없다. 그런 시간을 지배하는 자들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모든 존재는 시간의 속박에 있지만 시간을 지배하는 자는 시간의 밖에서 영원불멸을 소유한다.
이렇게 거짓을 말하는 자 개구리 남신 헤와 뱀 여신 하우헤트는 시간뿐 아니라 무한한 공간의 신으로도 여겨졌다. 그 공간은 우주 자체를 말하며 태초의 혼돈의 공간을 말한다. 그 공간 안에서 현재 질서를 가진 세계가 창조되었다. 지금도 질서의 세계 바깥에는 혼돈의 공간이 둘러싸고 있다. 공간이란 모든 것을 담는 그릇으로 무한한 우주의 모든 것이 이 안에 담겨지게 된다. 또한 지구 안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도 이 공간 안에 살게 된다. 공간을 떠나서는 인간은 존재할 수도 호흡할 수도 생활할 수도 없다.
이 중 뱀 여신인 하우헤트는 출산을 돕는 여신으로도 여겨졌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낳는 것을 돕는 여신이었다. 후대에는 다산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여겨졌다. 임신과 출산의 모든 과정을 관장하고 생명의 탄생하는 모든 과정을 보호하는 신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비로운 여신으로 통했다. 그녀의 숭배자들에게 그녀는 출산을 돕는 '조산사'와 아이가 처음 숨을 쉬도록 '숨을 불어넣는 자'로 여겨졌으며 호흡하는 자로 인식되었다. 임신과 출산의 시기에 있던 여성들은 자신과 아이의 안녕을 위해 이 여신에게 웃음으로 경배와 기도를 했는데 이는 하우헤트가 자비로운 여신으로 숭배받았기 때문이다.
개구리 남신 쿡과 뱀 여신 카우케트는 어둠을 상징했다. 이들은 어둠, 모호함, 밤을 상징했으며 이들은 태초에 물인 눈을 둘러싸고 있던 혼돈이었다. 이 어둠은 빛이 없는 공포를 의미하기도 한다. 태초의 창조는 태양의 신이 생기며 낮을 만들며 시작되는 것이다. 이 어둠이 떠나고 빛이 옴으로 창조의 세계가 시작되고 낮의 세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빛이 없는 어둠의 밤은 미지의 공포며 두려움이다. 이러한 신화는 모두 인간의 어둠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원하여 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집트의 창조 신화는 성경에 기록된 창조 신화와 닮아있다. 태초의 창조를 들어 알고 있던 귀신들이 최대한 그것과 비슷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을 그 창조의 주인공들로 꾸민 것이 이집트 신화다. 귀신들의 허탄한 신화는 사기꾼들이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잘 꾸며져 있다. 사탄을 요한복음에서 내가 거짓의 아비라고 했는데 이는 사탄의 이런 특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너희 식으로 표현하면 '귀신들은 거짓말에는 도가 튼' 존재들이다.
내가 왜 뱀과 물과 개구리를 처음 세 심판의 도구로 사용했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려면 이런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이집트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거짓신들의 아바타들을 멸하고 그들을 깨트림으로 그들의 본신인 거짓신들을 심판한 것이다. 자신들의 아바타를 지키기 위해 거짓신들도 싸웠으나 그들은 단지 피조물 중 인간보다도 못한 타락 천사들일 뿐이었다. 그러니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창조주인 우리가 그들에게 가는 자체가 심판이었다. 그들이 하는 모든 거짓 행위와 속임들이 우리가 감으로 다 드러나게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속이는 자 사탄의 무리임을 보였고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존재가 모두 사기임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신이 아니었으므로 우리 앞에서는 자신들이 행하는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뱀은 힘없이 아론의 뱀에게 삼켜졌다. 이로서 거짓이 드러났다. 그들은 신이 아니었으며 창조주가 아니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심판들을 통해 모든 거짓이 드러나고 마지막에는 파라오와 그의 군대가 내가 가른 홍해의 바다에 수장됨으로 나의 전능함을 드러내었다. 나는 바다를 가르며 우주를 움직이는 존재이며 태양을 멈추고 심지어 모든 것을 멸하며 모든 것을 창조하는 자다. 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그 과정의 기록이 이집트에 행해진 12 심판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런 장황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 집을 엮어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이집트 신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알고 이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사실 이 신화들은 수많은 갈래들이 있어 그 긴 이집트의 역사를 통해 확장되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자세한 언급을 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더 분량이 긴 책을 따로 써야 할 정도다. 그래서 여기서는 최소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 정도를 언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요약하여 서술해 갈 것이다. 이 긴 신화들에 등장하는 다양한 귀신들의 이야기는 모든 이집트인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의 세계는 그들이 섬기는 귀신들과 그 종교의 지배하에 만들어진 공교한 시스템이었다. 그 지배테크놀로지는 이집트 전체를 지배하며 한 개인의 생로병사와 모든 것을 지배했다. 이는 종교와 정치와 사회시스템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재정일치 사회 시스템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했다. 사탄과 세상과 육신이 만들어낸 이 종교와 이념의 시스템은 우리 백성의 아이를 강에 빠뜨려 익사시키고 있다. 그리고 내 백성을 노예로 삼아 임금도 없이 채찍과 형벌로 찍어 눌러 말라비틀어져 죽게 하고 있다. 600만이 넘는 아이와 여인과 노인과 그들의 남편이며 아들이며 아비인 자들이 가뭄에 벼가 타들어가듯 말라죽어가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눈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어찌해야 하는가? 그래도 저 파라오와 이집트 백성들을 두고 보아야 하는가?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귀신들을 두고 보아야 하는가? 그들의 경멸스럽고도 악독한 행실을 두고 보아야 하는가? 내 백성을 절구에 넣고 떡 먹듯 짓이겨 먹는 저들의 악행을 두고 보아야 하는가? 내 백성은 이를 대항할 힘도 없다. 600만이 넘는 인구가 있어도 저 무지막지한 메커니즘은 그들을 공포로 억압하며 무력으로 눌러 목에 올가미를 채운 것처럼 목을 조르고 있다. 내 백성이 이렇게 숨을 헐떡거리며 죽어가는데 내가 어찌해야 하랴? 저 이집트의 것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랴? 아니면 내 백성을 구원해야 하랴?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모든 무지막지한 시스템에서 한 민족을 탈출시키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은 내가 일으키는 엄청난 기적과 재앙이 아니면 성취될 수 없는 일이다. 12번의 기회를 주고 아니 정확하게는 그 중간중간에 말로 타일렀으니 그보다 배의 기회는 더 주었다. 그래도 이들은 내 민족을 노예 삼고 때리고 억압하고 유아들을 살해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탄과 세상과 육신의 커넥션은 지독하고 악독하다. 너희가 너희 시대의 시스템을 깨트리고 나오려 해도 이러한 진통을 겪어야 한다. 진정 거듭난 자들은 내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박해와 순교,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대적들의 저항을 당하게 될 것이다. 만약 모든 세상이 너희를 버리고 너희를 박해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너희는 거듭난 자들이 아니다. 너희 시대에는 너희 시대의 사탄과 세상과 육신의 무지막지한 지배테크놀로지가 작동하는데 그것이 사실 모세의 시대의 것보다 더 공교하고 더 강력하다. 때가 되어 돌이켜 회개할 때가 되면 종이 주인보다 낫지 못함을 감사히 여기라. 너희의 그 어떤 박해도 내가 당한 것보다는 못하리라. 그리고 그 모든 박해를 당한 내가 너희 안에서 그 모든 과정을 넉넉히 이겨주리라.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하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가나안)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 중부 이집트의 토트(Thoth) 신전, 이집트어 켐누(Khemnu, 여덟 개의 마을, 도시: 오그도아드 8 신들을 섬기던 8개의 마을, 도시), 고대 그리스어 헤르메스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