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침노당한다. 구약에는 이것이 적용된 사례가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이 침노한 것이다. 그렇게 천국이 될 땅은 침노를 당했다. 그곳은 태초의 에덴이 위치한 곳이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태초 에덴의 안식을 얻었다. 그곳에서 전쟁이 그쳤다. 구약은 이러한 형태로 회복될 계시록의 안식을 예표했다.
계시록의 안식은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있는 태초 에덴으로의 회복이다. 사람들은 구약의 에덴과 비슷하게 계시록의 천국이 회복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구약의 에덴이 다시 계시록에 그대로 재현되는 것일까? 이제 부활한 몸을 입은 인간들은 과연 다시 구약의 에덴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것일까? 부활한 육신을 보여주신 예수님은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과연 육신으로 난 첫 번째 아담과 같이 두 번째 아담도 같은 삶을 살 것인가? 미래에 회복될 낙원을 왜 과거의 에덴을 가져와 설명할까? 왜 육신으로 난 첫 아담의 과거로 설명하는 것일까? 이는 육신을 가진 인생들에게 천국을 육신의 형태로 설명한 것이다. 거듭난 육신을 가진 천사와 같은 영적인 몸을 가진 두 번째 아담이 첫 아담과 같은 육신의 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 또한 구약의 이스라엘과 같이 예루살렘에서 살 필요도 없다. 예루살렘은 이미 지나간 것이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이 계시록에 다시 등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단지 육신을 가진 인간들에게 천국의 이미지를 그들이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한 것이다. 1C의 소아시아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설명한 것이 계시록이다. 바로 순교를 앞두고 있던 저들에게 무언가 계획적이고 구체적이고 계산적이며 미래적인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저들에게 구체적인 것이 아닌 결과적인 최종적 승리와 최종적 안식을 설명한 것이다. 단지 저들에게는 십자가 상의 강도와 같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는 그 말이 필요한 것이다. 십자가 상의 강도에게 미래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을까? 에 대한 답은 필요 없다. "순교를 선택하라. 그러면 그 후에 너의 영은 나 예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며 또 최종적으로 너의 죽은 몸도 내가 살릴 것이다. 그리고 너를 죽인 세상에 대한 원한은 내가 세상을 심판함으로 갚아 줄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나를 따라 담대히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단지 이 말이 저들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 이미 이루어진 일들을 예로 들어 그렇게 반드시 순교 후에 반드시 나 예수와 함께 이기고 이기고 이길 것을 약속한 것이다. 저들에게 가장 쉬운 말로 가장 간단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저들에게 승리를 약속한 것이다. 구약의 소제들을 가지고 동화와 같이 잘 때 어렴풋이 흘려 들어도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말한 것이다. 심지어 전체를 듣지 않고 7개의 플롯 중 하나의 플롯의 절반만 들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언제나 몇 문장 안에는 원수에 대한 심판을 말한다. 그리고 언제나 나 예수가 심판의 주로 임할 것을 말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저들에게는 언제나 최종적 승리를 약속한다. 하늘에 올라 환란을 이기고 승리하는 자들의 모습의 그림자만 보여도 저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나를 따랐다. 어린아이도 동화와 같은 글을 읽고 용기를 얻어 부모나 이웃의 손을 잡고 사자의 스타디움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저들이 눈을 감고 떴을 때 저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고 저들의 마음에서 아픔을 씻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승리를 확정했다. 저들은 승리의 면류관을 쓴 이기고 이기고 이기는 그리스도의 승리하는 교회였다. 이 이야기는 먼 미래의 일을 그린 것이 아니다. 단지 1세기의 순교의 현장에 놓인 순교자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을 그린 구약의 색채를 입은 순교사의 그림책이다.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스펙터클한 판타지다. 또한 그 결말이 낙원을 그리는 가장 긍정적인 동화다. 가장 어두운 시절에 가장 밝은 빛을 조사하여 순교의 현장을 빛으로 가득 차게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강력한 광원의 자이며, 태초의 빛이며 인류의 빛인 내가 비추는 소망의 탐조등이다.
침노와 그 결과로 주어지는 안식에 대해 말하며 계시록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계시록의 소아시아 7 교회 성도들은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자들이었다. 저들은 이 땅을 침노한 천국의 백성이었다. 구약은 최종적 천국의 승리까지 보여주기에 땅을 점령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이 땅의 왕국과는 다른 형태를 가졌다. 저들은 땅에 있으나 땅에 속하지 않은 왕국의 백성이었다. 이 땅의 나라들과 달리 천국은 이 땅의 왕국들과 육신의 싸움을 벌이지 않았다. 하늘나라는 모든 것을 초월해 존재했으며 지상의 왕국과 같이 영토에 매이지도 않았다. 세상의 모든 곳에 침투하며 세상의 모든 곳을 점령하지만 또 세상을 억압하거나 세상과 그 영역을 두고 다툼하지 않았다. 또한 세상이 핍박해도 세상과 싸우지 않았다.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핍박하는 세상 왕국과 대적하기 위한 어떤 조직도 만들지 않았다. 저들은 자신들의 그리스도인 나를 따라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위해 피를 흘리며 세상을 위해 기도했다. 저들은 자신들의 그리스도인 나와 같이 세상을 위해 중보 했다.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너무 진부하고 많이들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자들은 없는 바로 그 사랑을 행했다. 저들의 안에는 안식(평안, 평강)이 있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저들 안에 있었다.
너무 진부한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이미 너희는 저러한 것들과는 상관이 없는 세상에 속한 신앙고백자들의 교회에 속한 거짓 신앙인이기 때문이다. 그냥 그런 일은 자신과는 상관도 없으며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은데 그냥 입에 담기 좋은 소리로 남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뽐내기 위해서나 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 행위를 심판하겠다. 내가 가서 내 입의 검으로 너희를 치겠다. 그리고 너희 입을 치며 너희 입을 막아 더 이상 악행의 더러운 오물을 토하지 못하게 만들겠다. 너희 역겨운 모든 자랑의 소리를 지옥 불에 던져 고통의 통곡으로 만들겠다. 이제라도 돌이켜 너희 입의 말이 아닌 너희 마음으로 회개하라. 돌이키면 살 길을 열어주리라.
계시록의 7 교회는 침노하는 자들이나 그들의 침노는 폭력과 억압이 아닌 사랑이었다. 또한 저들 안에는 진정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안식)이 있었다. 저들은 나 예수의 왕국의 진정한 침노를 당하였으며 또 나에게 항복한 이후에는 진정한 침노자들이 되었다. 저들의 침노는 사랑이었으며 그 결과는 평안이었다. 또한 저들의 침노와 정죄와 심판은 현재적이었다. 복음의 침노와 그것에 대한 항복이나 거절로 인한 정죄와 그로 인한 심판은 현재였다. 저들의 복음을 거절한 자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자들이었다. 미래의 일이나 이미 현재적으로 그 심판은 믿지 않음에 대한 결론으로 임했다.
너희에게 임하는 침노는 먼저 진정한 침노를 받은 자들에 의해 임한다. 너희가 전도라는 것을 하지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을 어찌 전할 수 있겠는가? 전도하여 영혼이 거듭나는 것은 전도하는 자에게 우리가 함께 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거듭나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하나님)의 역사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는 결코 거듭날 수 없다. 때로는 인간을 통하지 않고 개인에게 주어진 성경이나 신앙의 선배들의 글을 통해 성령이 역사하여 거듭나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거듭난 사람에게 우리가 함께 하여 영혼을 거듭나게 한다. 이렇게 한 영혼의 바운더리(영역)에 우리가 침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침노는 원수의 입장에서는 침노이지만 영혼의 입장에서는 구원이다. 사악한 마귀에게 잡혀 고난당하는 삶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다. 그 순간 그와 우리(하나님)는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그 영혼은 더 이상 어둠에게 속박당할 필요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전능자인 우리가 원수를 이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한 자는 이기고 이기고 이기는 교회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 스스로의 어떠함이 아닌 우리의 전능함을 인해 그는 이기게 된다. 그는 모든 삶의 고난과 핍박을 이기고 승리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죄악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며 슬픔과 눈물을 이기고 결국 승리한다. 그 능력은 성령 안에서 그 영혼에게 부어져 그 영혼을 지상의 최강자로 만든다.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는 강력한 생명이 임하여 그 영혼을 영원히 만유 위의 통치자로 만든다. 지상과 영계에서 우리를 제외하고는 최강자가 되지만 그 영혼은 그 누구도 억압하거나 착취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는 자도 사랑한다. 그는 우리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하나님)는 사랑이다. 그러니 우리의 아들은 사랑하는 자다. 그 무엇도 그 사랑을 이길 수 없다. 그 어떤 괴롭힘과 모욕도 그 사랑을 이길 수 없다. 그렇게 사랑으로 이기고 이기고 이기는 그가 지상 최강자다. 원수와 같이 착취하고 빼앗고 도둑질하며 죽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하나님)와 같이 사랑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은 결코 도둑놈들의 본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지상의 모든 원수의 자식들, 도둑의 자식들은 꿈꿀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하나님)의 아들들은 능히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함은 그 마음에 우리가 주는 평강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세상의 어떤 영화를 누려도 쉼이 없었지만 이제는 어떠한 핍박이 와도 언제나 마음에 쉼이 있다. 저들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원수의 모든 괴롭힘을 이기며 최종적 승리를 확신하고 일어서 이기고 이기고 이긴다. 전능자가 함께 하는데 그 누가 괴롭힐 수 있는가? 그러나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들의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지기로 한 저들은 모든 세상의 핍박을 감내하며 그 와중에도 함께 하는 우리로 인하여 평강을 누린다. 바로 안식이다. 그 모든 것을 이길 넉넉한 능력을 내가 붓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집은 가벼움이다. 저들의 멍에가 쉽고 짐이 가벼운 것은 그 짐을 우리(하나님)가 대신 지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여 그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은 우리다. 결코 그 자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능력이 아닌 전능자의 능력으로 능히 이긴다.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와 같은 것이 이 때문이다. 순교자들이 능히 순교의 고통을 이기고 나(예수님)의 품에 안기어 숨을 거두는 것은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다. 내가 오순절에 부어준 능력은 이러한 것이다. 결코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며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는 고린도의 육에 속한 자들의 것과 같지 않다. 저들은 능력을 부음 받아 세상의 악함과 착취와 도둑질을, 그 중독적 마약을 끊는다. 그리고 세상과는 반대되는 사랑의 삶을 살고 그 사랑으로 영혼들을 다시 전도하여 구원해 낸다. 그 도구로 저들은 사용되며 그 능력으로 세상을 침노해 간다. 저들이 침노한 그곳은 원래 우리(하나님)의 것이었던 것으로 다시 우리에게 회복되어 낙원이 된다. 한 심령, 한 심령, 그 심령에 낙원이 임하여 결국 모두의 가슴에 진정한 안식 즉 평강이 가득하게 된다. 사랑하라! 그리하면 평강 하리라. 그리고 진정한 쉼을 누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