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의 침노는 아브라함 이후의 모든 구원 역사에서 마지막 완성과도 같다. 여호수아서를 언급하며 계시록을 계속 언급하고 있는 이유도 구원의 역사를 예표하는 면에서 여호수아서의 역할이 마지막 계시록의 역할과도 같기 때문이다. 물론 여호수아서 이후에 언급되는 사사기 이후로의 역사가 있지만 사사기 이후의 역사가 예표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내일의 천국이 어제의 세상을 멸망시키고 새 예루살렘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임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의 예표다. 심지어 그 침노의 완성이 이루어져 안식이 태초의 에덴과 같이 회복되는 것을 보여준다. 여호수아서를 통해 예표된 침노와 그를 통한 안식은 완성되었다.
사사기의 표현을 통해 아직 침노가 완성되지 않았고 또한 안식조차 주어지지 못했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사실 여호수아서의 침노와 안식은 세상에 있는 예표였기에 완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히 4:8). 여호수아서의 안식은 사실 지속적이지 못했다. 사사기의 혼란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는 전략가들의 관점에서 여호수아서의 정복은 완전했다. 여호수가 감당한 전쟁은 국가규모의 전쟁이다. 여호수아는 국가 단위의 전쟁에서는 전쟁을 그치게 했다.
여호수아는 전쟁을 한 달 정도 준비했다. 요단을 도하하고 그 후에는 길갈에 진을 쳤다. 그리고 여리고 정복을 시작으로 수년간 전쟁을 치렀다. 처음에는 가나안 중부지역을 정복했다(수 6-8). 기브온 주민들의 편입으로 인해 벌어진 정복 전을 도화선으로 중부에서 남부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을 점령했다(수 9-10). 그리고 다시 방향을 북부로 돌려 정복을 완성했다(수 11-12). 마지막으로 갈렙이 헤브론을 점령하고 전쟁이 그쳤다(수 14:15). 그 땅에 평강 즉 안식이 임했다.
Joshua 14:13-15 바른
13여호수아가 그를 축복하고,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헤브론을 유업으로 주어, 14헤브론이 지금까지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유업이 되었으니 이것은 그가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기 때문이다. 15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아르바였는데,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치고 평온해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복전쟁의 성격이다. 정복전쟁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세워지는 전쟁이다. 국가 단위의 전쟁은 승패가 명확히 정해져 있다. 군대와 군대가 싸워 승패가 정해진다. 또한 지역의 잔당들도 소탕을 해야 한다. 특히 가나안과 같이 도시단위나 족속 단위의 군벌들이 왕으로 있는 지역에서의 전쟁에서는 잔당을 소탕함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여호수아서에는 잔당까지도 소탕하고 있고 그 소탕한 도시와 국가의 왕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수 11:16-12:24). 일반 역사가들이 보면 이 전쟁의 모습을 신흥 왕국이 나타나 주변의 소국들을 모두 평정하여 왕권체제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도시와 도시들을 다스리던 왕도를 정복한 이스라엘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었다. 전쟁이 종료된 것이다. 최소한 여호수아가 점령한 지역에는 전쟁이 그치고 평안이 왔다.
여호수아서를 집필한 여호수아와 우리(하나님)의 의도는 이를 통해 우리(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세상이 멸망하면 완성된 안식이 임함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이 땅에 전체에 완전한 우리(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세상 모든 곳에 안식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나(예수님)의 나라는 임하여 너희 안에 있다. 또한 너희는 나의 나라에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진정 거듭난 자라면 이미 임한 우리의 나라 안에서 온전한 평강을 얻을 것이다. 이를 얻은 자들은 저 요한 웨슬레가 만났던 모라비안들과 같을 것이다. 저들은 폭풍으로 침몰의 위기에 있던 배 안에서 평안 가운데 찬송을 불렀다. 저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흔들 수 없다. 왜냐하면 저들 안에는 평강이, 평강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부활하여 숨을 불어 저들에게 평강을 말한 것은 저들 안에 완전한 평강을 가져올 성령의 임함을 예언한 것이다. 저들은 사도행전의 불의 혀, 그리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임한 성령을 통해 세상이 흔들 수 없는 평강의 사람들이 된다. 저들에게 임한 은혜는 나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이며 또한 그 십자가를 위해 함께 준비하고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는 성부와 성령의 은혜다. 그 은혜가 있어 진정 거듭난 자는 평강을 누리게 된다. 1세기 교회 안의 유대인들의 서신에서 발견되는 은혜와 평강은 이러한 뜻을 담고 있다. 이 은혜는 1세기나 21세기에나 동일하다. 그러나 너희는 양식이 되지 못할 것을 찾아 그것을 구하는 어리석은 자와 같이 되어 뾰족지붕집에서 아사하여 죽겠구나. 그러니 이제 돌이켜 내가 주는 포도주와 빵을 먹고 죽어 다시 부활하여 진정 새 피와 새 살로, 새 피조물로 나라.
여호수아 14:15절에는 전쟁이 그치고 그 땅에 안식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수 13:1-7절에는 미점령지가 언급되고 있다.[^1] 아직 전쟁이 남아 있는 것이다.
Joshua 13:1-7바른
1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었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이 많아 늙었으나, 점령할 땅은 매우 많이 남아 있다.
2남아 있는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사람의 모든 지역, 3곧 이집트 맞은편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글론 경계까지, 블레셋 다섯 군주의 땅인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사람의 지역과 아위 사람의 지역과, 4또 남쪽으로는 가나안 사람의 모든 땅, 곧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사람의 지역인 아벡까지와, 5그발 사람의 땅과 해 돋는 쪽의 모든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이며, 6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 마임까지의 산지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다.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낼 것이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유업으로 분배하되, 7이제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절반에게 분배하여 유업이 되게 하여라."
또한 사사기 1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싸움을 하고 있다. 또한 아직 점령하지 못한 미점령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여호수아서의 기록에는 전쟁이 그치고 안식이 왔다고 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하는데 다음 성경 기록의 시간적 특성에서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사사기 1:10절을 보면 여호수아서의 기록과 시간적으로 맞지 않는 기록이 나온다.
Judges 1:1-2, 10 바른
1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기를 "우리를 위해 누가 먼저 가나안 사람을 향해 올라가서 그들과 싸워야 하겠습니까?" 하니, 2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유다가 올라가라. 보아라, 내가 그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겠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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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또 유다가 헤브론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가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다. 헤브론의 이전 이름은 기럇아르바였다.
사사기 1:1과 이어지는 이 문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일어난 사건 같다. 그런데 이 사건은 분명 여호수아서 14:15과 15:14에서 언급된 사건을 후에 다시 기록한 것이다.
Joshua 14:13-15 바른
13여호수아가 그를 축복하고,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헤브론을 유업으로 주어, 14헤브론이 지금까지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유업이 되었으니 이것은 그가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기 때문이다. 15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아르바였는데,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치고 평온해졌다.
Joshua 15:13-14 바른
13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유다 자손 가운데서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 성읍을 분깃으로 주었으며,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다. 14갈렙이 거기에서 아낙의 세 아들, 곧 아낙이 낳은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여호수아서에서는 이 사건이 여호수아 생전에 일어난 일 같다. 그런데 사사기의 기록에서는 이 사건이 여호수아 사후의 일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사실 여호수아서에서 가나안 정복의 마지막 성읍이 헤브론인 것처럼 나오고 그 헤브론을 점령하여 전쟁이 그치고 그곳에 쉼 즉 안식이 찾아온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면 큰 문제가 된다.
이는 성경을 집필한 기술 방식의 차이에 그 원인이 있다. 수 14:15절의 문맥과 삿 1장의 문맥을 살피면 그 통시성과 공시성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다. 문학이나 역사 또는 여타 인문학적 저작들에 대해 분석할 때 통시적 관점(diachronic, 通時的)과 공시적 관점(共時的, synchronic)에 대한 언급을 들어보았을 것이다.[^2] 보통은 글을 읽고 해석하는 관점을 언급할 때 이 용어를 쓴다. 그러나 글을 기술할 때 역사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도 통시적이나 공시적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역사 해석에 있어 통시적 관점이라는 말은 시간의 흐름을 고려하여 역사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공시적 관점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역사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여호수아서나 사사기는 역사서이다. 역사의 기술은 그에 앞서 역사분석을 해야 한다. 역사를 해석하는데 역사를 통시적으로 또는 공시적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여 그 해석된 것을 기록한 것이 역사서다.
사사기는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나열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여호수아서도 거의 대부분 그러한 방식으로 기술되었다. 그런데 여호수아 13장 이후부터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기본적인 방식과 시간의 흐름을 무시한 주제별 역사기술이 함께 한다. 이는 지파별 기업의 분배를 중심으로 기술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수 13]]장 이후의 관심은 지파별 기업의 분배와 그 정착에 있다. 이러한 기록에 포함된 것이 갈렙의 헤브론 정복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수 14:6-15이다.
수 14:6-15:63의 기록은 지파별 기업 분배와 정착 과정 중 유다지파의 기업분배와 정착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건을 기록할 때에 시간의 흐름보다는 유다 지파가 점령한 땅을 중심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유다지파의 갈렙이 헤브론을 점령한 시점을 여호수아서의 기록을 중심으로 결정하기는 힘들다. 수 14:6-15의 내용은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할 때에 갈렙이 나와서 내 종 모세를 통해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우리에게 약속받은 것을 근거로 헤브론을 청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45년 전 주어진 약속에는 구체적인 땅이 나오지 않는다. 갈렙이 밟는 땅을 갈렙과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이다. 바로 기업 또는 유업 또는 분깃으로 불리는 가문에 속하여 상속되는 땅이다. 그 땅으로 갈렙은 헤브론을 청구한 것이다. 갈렙이 헤브론을 청구한 의미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다시 다루겠다. 지금은 기록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분석하는데 집중하겠다.
여호수아는 45년 전 주어진 언약을 근거로 갈렙에게 헤브론을 그의 기업으로 분배했다. 그리고 갈렙은 헤브론으로 올라가 그곳을 점령했다. 그런데 유업을 분배받은 시점과 정복의 시점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차이가 있는 이유는 본문을 보면 본문은 결국 정복의 세세한 기록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며 유업의 분배와 그 분배받은 땅을 믿음으로 취하여 점령하고 정착하는 것을 중심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기록의 목적에 따라 남아 있는 기록이 결국 시간 순서와 흐름을 고려한 것이 아닌 중심 주제를 따라 공시적으로 기록된 결과물이다. 수 14:6- 15:63은 유다지파에게 분배된 분깃에 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요셉 자손 즉 에브라임, 므낫세에게 분배된 분깃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들은 지파별 기록이며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이러한 기록들이 여호수아서 13장 이후로는 계속되고 있다. 물론 땅을 분배하고 결국 정복전이 있고 정착하고 하는 과정들은 순서에 맞는데 그것이 지파별로 땅을 중심으로 기술되는 것이다. 또 마지막에 나온 여호수아의 죽음과 사사기 첫 절에서 이어지는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에 유다와 시므온이 올라가 산지를 점령하는 장면은 시간 순서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사실 이것도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사기 1장에서 시작되는 정복의 기록도 사실 지파별로 정복하고 정착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그 내용이 시간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닌 지파별 땅과 관련된 순서를 따라 기록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주 큰 틀의 기록은 시간 순서를 따르지만 기록의 목적이 지파별 정복을 기록하는 것이기에 시간 순서를 따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혼돈스러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없는 것일까? 사실, 성경의 기록 자체로는 해답은 없다. 그렇다면 성경의 기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실 해답은 아주 간단하다. 왜 답이 없는 문제가 되었을까?를 고민해 보면 알 수 있다. 답이 없는 경우는 문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으니 그 답을 도출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던지고 있는 질문은 갈렙의 가나안 정복이 여호수아 사후인지 아니면 여호수아 생시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성경의 관심을 벗어난 것이다. 즉 기록 목적을 벗어난 질문을 했기에 기록자가 제시하는 자료로는 온전한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가나안 정복의 완성과 그에 따르는 안식에 관한 질문을 하면서 여호수아서에서 정복의 완성 시점으로 보이는 갈렙의 헤브론 정복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결론은 갈렙의 헤브론 정복이 시간적으로 가나안 정복의 마지막이며 완성이라는 것을 결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호수아 14:6-15절에서는 헤브론 정복이 여호수아 생전인 것처럼 보이고 삿 1장에서는 헤브론 정복이 여호수아 사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결론이 없는 문제에 대한 반복을 하고 있는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이렇게 심도 있게 살피지 않고는 이해의 빛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어두운 굴을 벗어나 밝은 빛을 찾아보자.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자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여호수아서의 승리는 완전한 승리이며 그 정복으로 인해 찾아온 안식도 완전한 것이다.
블레셋의 군주 중 하나였던 아스글론의 왕 아브멜렉 3세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나는 블레셋의 군주이며 남방의 왕이다. 나는 두려움을 모르는 팔레스타인의 주인으로 나와 함께 한 네 왕과 함께 하면 우리를 대적할 자는 없었다. 그런데 40년 전 애굽을 멸망에 이를 길로 던져버리고 홍해 바다를 가르고 태양을 멈추는 신을 등에 업은 자들이 이 땅에 나타났다. 그들은 심판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심판을 멈출 자는 없었다. 그들은 지옥에서 나온 사자들과 같이 모든 성들을 멸망시켰다. 항복을 위한 공물이나 공녀도 소용이 없었다. 저들은 모든 것을 멸했다. 저들은 여호와 신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했고 지금 우리는 저들에게 멸망당한 수많은 성들과 왕들의 비명에 질려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혹 후에 저들의 신이 저들을 버린다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아직 저들이 우리에게 까지 오지는 못했다. 그러니 후대의 아스글론 왕들이여 이 글을 읽고 두려움을 가지며 경계와 경성함을 잃지 말라.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며 주저하지 말고 이스라엘로 쳐들어가 그들을 멸하라. 혹 저들의 신이 저들을 버린 자리에서 돌이켜 저들에게 돌아온다면 우리는 그날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온다면 모든 힘을 동원하여 저들을 멸하라. 저들의 신이 돌아오기 전에 저들을 멸하여 그 하나라도 남기지 말라."
여호수아의 정복은 국가단위의 정복이었다. 또한 그 정복의 여파는 강력해서 그 어떤 세력도 이스라엘을 침범할 수 없었다. 이집트에 멸망에 가까운 타격을 주고 홍해를 가르고 해를 멈추며 요단의 물이 둑으로 쌓이도록 하여 여리고를 나팔과 함성으로 무너트린 강력한 세력이었다. 고대 근동의 민족들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신이 함께 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또 저들의 진격은 무서워서 그들의 진격을 통해 전 가나안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왕들이 집결하여 대항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항복조차 불가했다. 이스라엘의 정복은 상대를 진멸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가나안 세력들은 자신들의 신체조건이 우수하고 철전차를 가진 자신들의 무기도 더 우수함을 알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강력한 성벽으로도 골리앗과 같은 거인들의 무력으로도 이스라엘을 막을 수 없었다. 엘샤다이라고 부르는 전능한 신이 함께 하는 저들을 대적할 방법은 없었다.
단지 정복하지 않고 남겨 둔 민족들이 있었던 것은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에 언급된 대로 단번에 저들을 멸한다면 이스라엘이 정착하기도 전에 땅이 황폐해질 것이기에 순차적으로 멸한 것이다.[^3] 여호수아와 여호수아 세대의 장로들이 살아 믿음으로 우리와 함께 할 때에는 남아 있는 미개척지의 이민족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죽은 후 이스라엘이 우리를 떠남으로 이스라엘은 우리 없이 원수들과 맞붙게 되었고 결국 패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의 정복이 강력하고 완전했기에 이민족들의 약탈과 수탈이 반복되어도 그 땅의 정권을 전복하여 이스라엘을 몰아내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에는 전열을 갖춘 상비군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저들이 이스라엘을 몰아내지 못한 것은 여호수아의 정복으로 인해 가나안에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대적할 어떤 세력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 남아 있더라고 그 세력이 약해져서 결국 이스라엘에 정복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원수들의 침공에 놀라 잠시라도 회개하면 내가 사사들을 세워 원수들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에 원수들은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단지 일시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지는 매로 사용되고 부러져 버려졌을 뿐이다.
우리와 함께하는 이스라엘에게 원수들은 단지 밥일 뿐이다(민 14:9). 또한 원수들을 정복하고 남은 잔당들은 단지 밥풀일 뿐이다. 그러니 여호수아의 정복은 믿음의 관점에서 완전했다. 또한 그로 인해 주어진 믿음의 정복자들의 안식도 완전했다. 우리를 신뢰함으로 저들은 두려움이 없으며 그 어떤 곳에서도 용맹을 발하리라. 저들은 믿음으로 원수의 담장을 넘으로 우리를 의지하여 적진을 누비리라. 후대의 다윗도 그러한 믿음으로 수많은 전장에서 대적들을 멸하였다. 그러한 자는 천만인이 진 칠지라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평강에 평강을 더하여 안식하리라.
이러한 관점은 이미 신명기와 여호수아서를 통해 많이 이스라엘에게 알려졌고 믿음에 선자들은 이것을 알고 남은 땅들을 점령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믿음의 승리가 갈렙의 헤브론 정복이었다. 아낙 자손이라 불리던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으며 난공불락의 성을 점령했다. 저 셋은 아낙의 아비 아르바의 손자들이었다. 저 혈통은 거인으로 유명하였으며 저들 앞에 어떤 군대도 어떤 병기들도 무용지물이었으나 이스라엘의 믿음의 사람 갈렙은 저들을 쳐부수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본 혈통이 이방인 그니스 족속이라도 믿음으로 유다의 기업을 취하고 우리(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의 기업, 헤브론(히 친구)을 얻었다. 그러므로 믿음은 살아 있으며 그 믿음으로 얻은 정복의 승리와 평강은 그 누구도 무너트릴 수 없다. 후대에 믿음을 잃어 저들이 그것을 잃었으나 그 선조였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정복과 그로 인해 주어진 안식은 영원 변치 않으며 영원히 이어진다.
저들의 승리와 안식은 나의 책에 기록되었으며 영원히 저들의 믿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난다.
[^1]: 그러나 이 부분은 아직 여호수아가 살아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가 노후하였으나 죽기 전에 나머지 땅들을 점령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미 점령지를 정복한 것 같다. 그런데 후대에 기록된 사사기를 보면 그렇지 않다. 사사기의 기록자는 사무엘인데 그의 기록은 여호수아서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듯 보인다. 많은 사람들의 사고가 이에서 머물러 있는데 이는 깊이 사고하지 않은 까닭이다. 성경을 더 자세히 읽으면 이부분들은 모두 해결되게 되어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지형을 살펴보면 더 명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지형에 관해서는 난외주[^3]를 참조하라.
[^2]: 공시적 관점과 통시적 관점은 저자의 관점에서 사용할 때와 독자의 관점에서 사용할 때 그 뜻이 달라진다.
[^3]: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할 때에 남겨둔 땅과 정복한 땅의 지도를 비교하면 그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먼저 지도를 보자.
여호수아의 정복 이후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 지도르 보면 정복한 지역은 황토빛 붉은 색으로, 미정복지는 노란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여기서 붉은 색 부분은 광야로 산악지역이다. 또한 노란 부분은 평야나 산 아래의 앝은 구릉으로 모두 농경지다. 산악지역은 농사와 상관이 없고 단번에 정복하고 땅을 비워주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나 양들의 먹이가 되는 풀과 관목들이 잘자라기에 유목민족인 히브리인들의 삶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노란 부분인 미정복지의 평야들은 농경지로 단번에 점령하고 방치해두면 농경지가 잡초와 관목에 덮여 회복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점령하여 농경을 이스라엘이 배우고 정착하도록 했다. 위의 정복지도와 아래의 지형도를 보면 붉은 부분은 대부분 산악지역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요단 동편의 두지파 반이 점령한 지역은 골란 고원인데 산악이나 초지와 관목지와 나무들이 적절히 어우러진 최고의 목초지다. 그래서 성경에는 길르앗의 향유와 바산의 암소에 관한 언급들이 많다. 이곳이 최고의 목초지이며 이곳에서 향유의 원료가 되는 허브들이 많이 자라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형도에서 요단 동편의 푸른 지역은 농경지가 아닌 비옥한 목초지이므로 그곳은 단번에 점령하여 방치하여되 되는 곳이었다. 점차적인 정복의 필요성이 없었다. 요단 서편의 붉은 지역에 붙어있는 푸른 지역도 산지의 계곡으로 대부분 농경지가 아닌 경사진 목초지였다. 이렇게 계획을 가지고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였는데 그것을 여호수아가 점령하지 못한 지역으로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을 읽지도 않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어리석음이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100년이 넘은 저작권의 구속이 없는 무료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살펴보지 않고 어리석은 말을 하고 심지어 그러한 설교를 하는 것은 무식이 아니라 무책임의 극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