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10. 기업을 취한 아들 여호수아39

by 에스겔

01.3.2.3.10.9.6.12.3.4.5.9. 속죄일과 초막절(수장절)




속죄일은 유대인들이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함께 연결하기 좋아하는 절기다.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의 돌판을 받아서 내려온 날이 속죄일이라고 유대교에서는 말한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것이 출애굽 후 50일이 지난 시점이라고 말하고 그 후 40일이 지나 돌판을 들고 내려오다 깨트리고 또 그것을 다시 받으러 올라 40일을 보내고 내려온 날이 7월 10일 속죄일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날짜를 계산해 보면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의 기록과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절기에 인간적인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이다.

사실 성경적으로 가장 근거가 있는 최초의 기록은 레 16장으로 아론의 두 아들이 범죄 하여 성막을 더럽히고 죽은 이후에 성막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전체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 제정된 의식이다. 이는 1년에 한 번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용서받는 날이다. 제사장 자신들도 성막과 그 기구들도 모두 정결하게 해야 한다. 레위기는 우리(하나님)와 이스라엘이 함께 하려면 우리와 같이 거룩해야 하기에 거룩하게 우리에게 나오는 법을 가르친다. 이러한 레위기의 문맥에서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속죄일의 뜻을 밝혀 보겠다.

1-3장은 우리에게 나아올 때의 거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죄가 없을 때에 우리에게 드리는 것에 대한 것이다.

4-6:7은 우리에게 나오지 못할 때의 거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죄가 있어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에 어떻게 그 단절된 관계를 속죄를 통해 해결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6:8-7장은 거룩함을 위해 드리는 제사에 관한 것이다.

8-9장은 거룩함을 위해 섬기는 제사장들에 관한 것이다.

10-15장은 이스라엘의 생활과 관련한 거룩에 관한 것이다. 10장은 음식의 거룩이며 12장은 출생과 관련한 거룩이며 13-14장은 피부병에 관한 거룩이며 15장은 유출병에 관한 거룩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16장은 이스라엘 모든 민족과 성막과 제사장들 즉 이스라엘의 모든 것의 거룩을 위해 드려 지는 속죄일에 관한 것이다.

앞부분들은 거룩에 관한 세세한 것들에 대한 명령들이며 16장부터는 민족 전체의 거룩에 관한 명령들이다. 이러한 문맥을 보면 레 16장의 속죄일은 각자의 삶에서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세세한 죄의 문제들을 해결함(레 1-15장)을 넘어서 민족의 죄를 한 번에 정결하게 하는 날이다.

원수의 나라에서 우리(하나님)의 나라로 옮겼다는 것은 우리에게 속한 거룩한 새로운 법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죄가 있는 자는 우리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늘나라에 속하려면 거룩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다. 우리는 죄가 있는 곳에는 함께 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 죄를 짓는다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이 우리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다. 우리의 임재 속에서 살아가던 자들은 죄로 인해 관계가 단절되면 견딜 수 없다. 이조차도 모르는 자들은 대부분 원래부터 우리와 관계가 없던 종교인들일뿐이다. 저들은 우리의 성령과는 만남조차 없는 이방인들일뿐이다.

나팔절은 속죄일과 수장절로 이어지는 절기의 사이클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 우리가 함께 함을 나타낸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은 거룩해야 한다. 그래서 속죄일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또다시 피로 말미암은 구원으로 얻은 수많은 내 백성들이 돌아오는 부흥이 있다. 이를 의미하는 것이 수장절이며 그 돌아옴의 과정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후의 삶을 기념하여 초막절을 지킨다. 초막이라는 말은 풀로 만든 막사라는 뜻이 있지만 이것이 꼭 풀로 만든 것은 아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자들의 임시 거처를 의미하며 영원한 본향을 향해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처지를 상징한다. 그러나 저들은 이 땅에 나그네이나 영원의 개념에서는 결코 나그네가 아니다. 저들은 하늘나라에 속했으며 저들의 속한 도시는 새 예루살렘이다. 그리고 저들의 거처는 영원한 도성 즉 해가 필요 없이 우리가 모든 곳, 모든 시간에 함께 하는 빛의 도성이다. 저들이 거하는 곳에는 슬픔이 없으며, 눈물이 없으며 아픔이 없다. 저들이 거하는 곳에는 죄가 없으며 속임이 없으며 미움도 살인도 없다. 저들은 세상 가운데서 나에게 추수되어 모아져서 영원히 우리와 낙원에 있게 된다. 이를 세상에서는 낙원, 극락, 천국이라 부른다.




01.3.2.3.10.9.6.12.3.4.5.10. 안식년과 희년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것은 앞에서 이미 많은 부분을 언급했다. 안식년은 땅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주된 의도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안식년은 6년 동안 일한 사람이 7년 되는 해에 쉬는 것이다. 쉬고 일하지 않아도 우리가 휴경 중인 밭에 농작물을 길러서 백성들을 먹인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기적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다.


인간이 원자핵의 극히 일부분의 에너지를 사용한 것이 원자폭탄이다. 그것도 원자의 에너지 자체에 접근한 것도 아니고 그 결합력의 일부를 건드려 안에 있는 힘의 극히 작은 일부를 발산하게 한 것이 원자폭탄이다. 만약 그 근원의 입자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가장 작은 질량의 원소인 수소 원자 하나로도 지구를 파괴할 수 있다. 겉도는 에너지가 원자폭탄이 되는데 그 전체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우리의 창조의 극히 미세한 원자 하나에도 이러한 힘이 담겨 있는데 모든 우주를 창조하고도 그 힘이 무궁한 존재의 어떠함을 너희가 알 수 있겠는가? 전능함이라는 것도 그것을 말하는 존재의 상상의 한계에 갇힌 말이니 내가 무엇을 너희에게 말하랴. 그런 우리가 휴경지에서 이전에 떨어진 씨앗을 길러 백성을 먹이는 것이 어찌 어렵겠는가? 없는 것을 길러 먹이며 죽은 자를 살리는 이가 우리가 아닌가?


이 안식의 비밀은 안식 즉 일(노동)을 쉼에 있다. 인간 스스로 살기 위해 몸무림 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보호 안에서 쉼을 누리는 것이다. 인간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창조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그래서 피조물인 것이다. 피조물이 왜 자신을 피조물이고 창조주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너 스스로가 할 수 있으면 창조주가 되어 보라"이다. 창조주가 아니면서 창조주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은 불가능을 꿈꾸는 어리석은 이카루스의 날개를 단 인간 교만의 극치일 뿐이다. 이는 어리석은 구더기인 사탄의 욕심을 따르는 것으로 존재의 차원이 다른 것을 알지도 못하는 자들의 헛꿈이다. 이러한 자들이 구하는 것은 구더기가 구하는 똥이요, 자신들이 구하는 것이 얼마나 추악한 욕심인지 알지 못하기에 그 추악함을 들이키며 식탐을 더욱 돋우는 어리석은 자들의 혀의 똥독일 뿐이다. 보호받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보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사탄과 그의 종들과 세상의 주인들은 보호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착취를 단행한다. 이러한 거짓 보호를 경험한 자들은 보호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조물주의 보호도 거부한 채 여전히 자신들을 다른 형태로 속이고 있는 도둠 놈 마귀의 아가리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민다. 그 이름은 무신론이며 그 아류 종자로는 사탄숭배가 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보호하고 남편이 아내를 보호하는 것은 진리의 섭리를 따르는 아름다움이다. 우리가 보호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어찌 죄이며 구속이겠는가? 이러한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사악한 세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너희는 지옥의 트라우마를 가진 생물들이구나! 지옥도와 같이 진리와 선과 착함이 어리석음으로 취급되는 너희 세상은 악함으로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러니 어서 돌아와 쉼을 얻으라. 너희가 살아남기 위해 흘린 피와 너희 손의 악업이 세상을 가득 덮었다. 그러니 이제 너희에게 올 것은 물의 종말이 아닌 불의 종말이다. 너희 죄악과 탐욕의 불로 너희 자녀를 밀곰에게 불사르고 너희 부모와 형제 그리고 이웃을 죽인 피로 가득 채워진 땅이 이제 호소하여 너희를 지옥의 마그마로 불사르리라. 이제 나의 앞에 너희 인류 종말의 불이 들이치니 너희는 속히 돌아오라.


내가 안식년의 안식으로 너희를 부르는 것은 구원을 위함이다. 안식년이라는 말은 사실 원어로는 안식일을 뜻하는 말과 같으며 이 단어는 사실 안식이라는 말이다. 안식과 안식일 그리고 안식년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같은 단어다. 나의 의도를 짐작하기를 바란다.


이제 이 모든 안식을 종합하여 완전한 고토로의 회복을 주는 안식이 있다. 비로 희년이다. 희년은 고토로의 회복이며 조상의 기업으로의 회복이다.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에덴으로의 회복이다. 에덴으로의 회복은 참된 회복이며 최종적 회복이다. 이제 계시록에서와 같이 생명수 강가에서 생명수를 마시며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생하며 생명나무의 잎으로 모든 것을 치유하는 완전한 안식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희년이다. 모두 나팔을 불면 이제 죄의 종 되었던 자들이 그 매였던 곳에서 돌아와 참된 고토인 에덴으로 돌아온다. 이 회복을 기다리는 자들은 이 땅 구더기들의 똥을 탐하지 않는다. 너희는 어디에 있기를 원하는가? 교만한 자의 똥 탑인가? 아니면 겸손한 자의 에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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