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배식원이 커튼을 열어젖혔다. 테이블 위에 식판을 재빨리 올려놓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평소에는 건너뛰기 일쑤였던 아침 식사인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뱃속이 요란했다.
시간 맞춰 딱딱 나오는 밥에 빠르게 적응한 몸만큼 회복도 잘 되어가고 있었나 보다. 식사 후엔 복도를 어슬렁 거리며 소화도 시킬 겸 운동을 했다. 병원 건물 옥상에 작은 정원이 있었지만 거의 흡연자들이 점령했던 터. 비흡연자인 나는 복도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간호사에게 눈짓으로 허락을 구한 뒤 병원 근처 공원에서 콧바람 정도는 쐴 수 있었으니까. 돌아오는 길엔 커피숍에 들러 시원하게 아아 한 잔 마실수도 있고,오히려 나에게는 그 편이 더 나았다.
오전이나 오후에는 한 번씩 물리치료를 받았고 일주일 혹은 이주 간격으로 줄줄이 잡혀있는 예약 스케줄에 맞춰 대학 병원으로 통원 치료를 오갔다. 그러던 중 그병원 안과에 복시를 검사할 수 있는 기기가 없어 타 병원으로 갈 일이 생겼다. 걱정할 것 없이 한방 병원에서 차량 지원을 해주어 편히 다녀올 수 있었다.
아픈 몸도 점차 나아져 가고 삼시 세끼 맛난 식사에 편안한 서비스까지 부족할 것 없는 병원 생활이었다. 은팔찌 할머니, 다른 환자와 소통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꿀 같은 휴식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집과 아이들이 신경 쓰였다. 심하게 아플 땐 내 몸에 신경이 곤두섰는데, 몸이 나아지니 온 정신이 아이들에게로 쏠렸다. 봄엔 학교에서 하는 행사들이 많아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곧 있을 학부모 공개수업. 거기 못 간다면 어린 둘째가 얼마나 상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궁금해할 것 같아서 보내.]
현장 체험 학습이 있던 날, 동네 엄마가 아이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똑같은 하늘색 반티를 입은 아이들 가운데서 내 아이만 유난히 꼬질해 보였다. 사이즈가 큰 옷 때문인지, 어쩐지어깨도 축 쳐진 것 같았다. 엄마의 부재는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언니, xx이 너무 씩씩하게 걸어가던데? 애들 걱정 말고 몸 잘 추슬러.]
어리광 피우고도 남을 나이에 의연한 척 감정을 숨기는 둘째였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그것 때문에 항상 고민이었다. 꾹꾹 눌러 참아오던 감정이 한 번에 터졌던 날, 아이는 내가 집에 없었던 날들을 기억해 내며 서럽게 울었다. 할머니가 채울 수 없는 그 무언가. 내 욕심에서 오는 거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게 유난히도 거슬렸다.
"저... 선생님! 아이 학교에 볼일이 있어서요. 몇 시간만 다녀와도 될까요?"
그렇게한방 병원의 특혜를 받아 통원 치료가 아닌 개인 사유로 외출을 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학교. 복시 때문에 4층까지 계단을 오르는 게 힘들었다. 왼눈을 감고 난간에 의지했다. 학부모 공개 수업이 막 시작하려는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 눈이 휘어지며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