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눈꽃 04화

은방울꽃

언젠가 맞이할 행복

by 서율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 뒤로, 서서히 붉은 하늘이 일렁이며 해가 밝았다. 남자는 어제처럼 첫차가 지나갈 무렵 아침 거리에 나왔다. 또 다른 비슷한 차림새의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둔 채로 걷고 있었다. 어제와 달리 피어난 웃음이 그의 내면 속 횡야를 푸른 숲으로 가꾸어주는 듯했다.
-눈꽃의 향기가 좋은 결과를 가져다줬네.
옆에 있던 작은 눈송이는 말을 꺼냈다. 하룻밤을 더 보내고 나니 부드러웠던 눈은 서서히 얼어서 딱딱해졌다.


-그러게, 이렇게 효과가 빠를 줄 몰랐어.
그저 봄을 기다렸을 뿐이다.
-봐봐, 행복해 보이잖아. 이게 우리가 할 일이야.


나는 긍정의 표시로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보랏빛 꽃의 향기가 맴돈다. 남자와 그의 친구 사이에 시들어가던 우정의 꽃이 개화할 시기가 다시 찾아왔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눈 온다던데?”
선물 가게에서 나오고 있는 두 여성의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이제 4일밖에 안 남았어. 진짜 연말 느낌 난다.”
한 손에 가득 쥔 열쇠고리들을 가방에 넣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솔크네.”
“그래, 나는 언제 여친 생기냐.”
여성과 반대쪽에서 걷고 있던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들은 장난기 가득한 말들로 호탕하게 웃어 보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면 좋겠다.”
길을 지나는 어린 여학생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같이 쿠키 만들래?”
벌써 크리스마스 계획을 상상하는 아이들도 걸어간다.


-크리스마스는 그들에게 무슨 존재인데?
-그러게, 행복을 추구하는 날 정도겠지.
작은 눈송이의 무관심한 듯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난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졌다. 모두가 기다리는 순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볼 수 있을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우리를 녹아버리면 그만이니까.


눈은 첫날보다 조금 더 얼어붙어 얼음이 되어갔다. 바닥에 길을 미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찬 공기 때문에 아직은 녹아버릴 것 같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러 트리를 설치하고 거리를 비춘다. 그날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나날을 보낸다. 나도 보고 싶다, 그날의 풍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해 본다.


“수능이 끝났는데 아직도 학교를 가야 해.”
“방학은 언제 하냐, 진짜.”
오후가 되니 교복 또는 체육복을 입은 고교생들이 몰려와 카페로 향했다.
“대학 원서 접수 언제 시작한대?”
“몰라, 12월 말이라 한 것 같은데.”
불확실한 남학생의 답변에 옆에 있던 여학생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학생이 카페에 들어가려 문을 여니 맑은 종소리가 짧게 울렸다.
고등학생들이 몰려든 후 눈에는 더 짙은 발자국들이 남아있었고, 그들은 거의 비어 있던 카페를 가득 채웠다.
뒤이어 거리에 발을 들인 여학생은 버스정류장에 앉았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자리 잡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등 빛이 끊임없이 바뀌어도 그녀는 계속 자리를 지켰다. 카페에 있던 고교생들이 나와 집으로 향해도 그녀는 계속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버스가 여러 차례 지나가도 말이다.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과 얼핏 봐도 마른 체형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쟤 설하 아니야?”
“뭐 해, 저기서.”
“야, 그냥 가자. 쟤 수능 망쳤다잖아.”
분명히 설하라는 여자애도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자리 그대로다.
-설하래. 저 여자애가.
멍한 나에게 말을 건넨 건 뻔하게도 작은 눈송이였다.
-뭐 하는 걸까, 버스도 안 타고 움직이지도 않는데.
-나도 몰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지.
늘 작은 눈송이의 태연한 어투는 도무지 달가워지지 않는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 건 해가 벌써 져갈 무렵이다.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힘없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나 지쳐 보였다. 잠시나마 바라봤던 그녀의 손은 하얀 피부를 넘어 창백해 보였다. 분명히 차가울 것 같았다.

***

잠깐 분홍빛 담아놓던 하늘이 완전히 어둡게 물들어버리는 건 한순간이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설하는 조금 걷다 마주한 전광판 문구에 반항적인 질문이 튀어나온다.
‘행복이 뭔데?’
다들 아무렇지 않게 행복을 말하는데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누구도 답을 모르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병원 건물로 발걸음을 돌렸다. 1층이 약국이었기에 굳이 간호사들을 만나지 않고도 계단에 갈 수 있었다. 7층 정도 건물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생각보다 울림이 커서 작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설하는 더 이상 올라갈 계단이 없을 때야 멈췄다. 출입 금지 안내지가 붙어있는 옥상 문을 바라보며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이 잠겨 있지는 않다.


그대로 설하는 계단에 앉았다. 조금 숨이 찼다. 건물에 들어온 뒤로 흐른 시간이 짧지 않았지만 이미 추위에 한 번 절여진 손은 온기 따위 잊어버린 듯했다. 찬 공기에 손끝이 퍼렇게 물들어 온통 죽은 손이나 다름없었다. 정신 차려보니 여기에 있었다. 아까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을 때 가장 노선이 긴 버스의 종착점에 가서 길을 잃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설하는 어쩌다 자신이 이 지경이 되어버렸는지 지난날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11월의 중순, 설하는 수능을 완전히 망쳤고 그녀마저 망가져 버린 날이었다.

“설하는 공부 잘한다며?”
허구한 날 끊임없이 들어왔다.
“설하는 공부 잘해서 좋겠다.”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설하는 나중에 큰 사람 되겠네.”
고작 성적표만 보고 주변 어른들이 말했다.
“늘 지금처럼만 해.”
언젠가부터 압박이 되었던 한마디였다.
약간의 경쟁을 즐기던 성격 때문이었는지 어릴 때까진 공부에 흥미를 가졌었다. ‘학업 성취와 자기 학습 관리가 우수하다’ 초등학교를 다닌 6년 내내 생활기록부에 쓰여있던 문구였다. 주변 어른들이 해주는 칭찬, 그런 것에 괜한 우월감을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 설하는 잘할 수 있을 거니까.”
첫 중간고사 때 부모님이 설하에게 했던 말이었다. 설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집을 나섰었다. 그리고 첫날 시험 본 두 과목에서 객관식 백 점짜리 가채점 시험지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주변에서의 기대감이 점점 커져갔던 건지, 그저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것에 대한 강박이 커져갔던 것인지 모든 게 감당하기 버거워져 갔다. 설하는 자신에게 모진 말을 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자신은 천재가 아닌 평범한 학생이었기에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도 아니었다. 목표치는 높고 출발지는 남들과 같았다.


조금 떨어진 성적이 설하에게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당하는 느낌을 주었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예민해진 설하는 친구의 장난스러운 한마디를 ‘고민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여겨버렸다. ‘공감도 위로도 없는 관계를 만들 필요 없다’ 학업에 지쳐버린 설하가 무의식 중에 내린 결론이다.


찰나의 결정으로 설하는 고등학교 생활 3년 내내 혼자 생활했다. 모든 쉬는 시간과 남는 시간을 공부에 투자할 정도로 말이다. 의외로 관계를 끊어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설하는 어느 순간 혼자가 되어있었다.
그게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설하는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기 시작했던 이후 본 기말고사에서 1등급 과목은 단 하나뿐이었다.
“시험 잘 봤어?”
“나 절반이 1등급이야! 성적 엄청 올랐어.”
아이들의 말소리와 자신의 2등급과 3등급을 왔다 갔다 하는 성적을 비교하며 설하는 불안해했다. 수시를 목표로 했지만 한 번의 실수가 실패를 만들었다.


설하는 그날 밤 방문을 굳게 잠그고 주저앉았다. 뭐가 그렇게 힘들고 슬픈지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조금 멈춰갈 때 온몸이 떨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리엔 힘이 다 빠져버려 움직이기도 어렵고, 불규칙한 호흡이 가슴을 점차 조여 오는 괴로운 느낌에 울부짖었다. 정말 다 망가져버린 듯이.


유독 추웠던 수능 날에 설하는 급체를 했다. 설하는 점심을 먹은 이후에 본 시험을 모두 망쳤다. 얼마 뒤 나온 수학능력시험 성적표에는 영어 4등급, 한국사 5등급이라는 성적이 찍혀있었다. 설하가 본 적 없던 가장 낮은 등급이었다.
설하의 방문은 주말 동안 굳게 닫혀있었다. 쉽게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싸늘한 공기가 맴돌았다.


“쟤 수능 망쳤다며.”
“수능 망쳤다잖아.”
“이번에 물수능이었다는데.”
이후 학교에서 설하의 모습은 피폐했다.
여기가 사람의 나락이구나.
대학 원서를 쓰지 않았지만 이미 재수를 고민하고 있을 성적이었다.
이런 삶을 1년 더 살 수 없을 것 같아.
다 그만하고 싶은 게 그저 바람이었다. 목표는 수능이었고 애초에 그 이후에 목표는 없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설하는 좋지 않은 수능 성적을 모든 것의 결과로 단정 지으며 생각했다. 가파른 산을 힘겹게 올라왔지만 절벽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설하에게는 고작 추락을 위해 올라가는 꼴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다. 수업 시간을 흘려보내는 애들이 대부분이고 하교 후에 웃음 지으며 놀고 있다.
부러워.
설하는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은 설하의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다. 찬란한 미래 같은 거 없으니까.
“행복 같은 거 추구해 봐도 가치가 없으니까.”
설하는 옥상 문을 열었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고요한 밤이 옥상을 가득 채워 적막을 만들어냈다.
그저 망친 수능이 미래를 암흑으로 뒤덮여버렸다. 건물 아래에 보이는 거리에 불빛이 아른거리고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소음이 조금 들려왔다.
추락을 위해 올라왔으니 이제는 추락을 결심할 때라 느꼈다.


무섭다.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버거운 기대감에 성숙한 아이처럼 견뎌온 설하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고 느꼈을 것이다. 코가 찡해지는 느낌과 함께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려져 갔다. 설하는 목 놓아 울어도 되는데도 끅끅거리며 소리를 최대한 참아냈다. 눈물을 참아낼 때 느껴지는 심장이 터지려는 느낌, 그것도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설하의 앳된 얼굴이 눈물로 지저분해졌다. 설하에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위로는 통하지 않았다. 수능을 망치고 받은 위로가 일절 와닿지 않았다.
설하는 자기를 끊임없이 탓했다. 시간이 계속 지나도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은 없어”
설하가 자신에게 했던 모진 말들 중 하나였다. 자신이 한심하고, 찌질하다. 우울할 자격조차 없는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고 그만하고 싶은데, 그럴 용기마저 없는 것 같다.
그 어린아이는 정말 그냥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제는 자신을 얽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편해지고 싶을 뿐이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설하는 옥상 문을 열고서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설하는 눈이 부은 채로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향해 무릎에 머리를 파묻고 앉았다. 모두가 잠들 시간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후회만 남은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기는 싫은 날이다. 잠시 후에 막차가 지나가고 버스가 끊겼다. 그런 생각이었다, 이제는 오늘을 보내고 싶은데 또다시 내일이 오는 게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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